故 멘델스존 - 교향곡 4번 가장조, 작품번호 90 · 이탈리아
故 Mendelssohn, Symphony No 4 in A major Op 90, Italian
지휘자 : 파보 예르비(Paavo Järvi · 1,962 ~ 미국)
故 멘델스존, 이탈리아
음악사에 길이 남는 명곡들 중에는, 여행을 통해 영감을 받은 작품들이 꽤 있다.
도시나 나라의 이름이 부제로 붙은 작품들은, 대부분 작곡가의 여행과 관련되는 경우가 많은데
, 바로 이 故 펠릭스 멘델스존(Felix Mendelssohn · 1,809 ~ 1,848 · 독일)의 교향
곡 4번인 ‘ 이탈리아 ’ 도 작곡가의 이탈리아 여행으로부터 시작된 작품이다.
故 멘델스존은, 여행을 좋아했던 음악가였었다.
게다가 그의 아버지는 부유한 은행가여서, 마음껏 여행을 다닐 수 있
었기에 그는 일생 동안 세계 각지의 많은 곳에 가 볼 수 있었다.
그가, 특히 마음에 들어 했던 곳은 이탈리아에서도 로마였다고 하는데
, 그의 대표작 中 하나인 이 ‘ 이탈리아 교향곡 ’ 역시 그가 로
마에 머물고 있었을 당시에 착수된 작품이라고 한다.
그가, 이탈리아 여행 중에 가족들에게 보낸 편지를 보면, 그
가 이탈리아에 얼마나 매혹돼 있었는지 알 수 있다.
‘ 나는, 지금 새로운 힘을 얻어 작곡에 몰두하고 있습니다. 이탈리아 교향곡의 많
은 부분의 작곡이 완성됐는데, 아마 이 작품은 내가 작곡한 작품들 중에서
가장 성숙한 작품이 될 것입니다 ’ 라고 씌여져 있었다고 한다.
이탈리아의 밝은 태양을 연상시키는, 찬란함의 영감에 가득 찬 상태에서 작곡된
이 ‘ 이탈리아 교향곡 ’ 은, 故 멘델스존의 성숙기 교향곡들 中 네 번째로
출판돼 4번이란 번호를 얻게 됐으나, 작곡 순서로는 세 번째다.
故 멘델스존의 성숙기 교향곡 다섯 곡 중에서도, 오늘날 가장 잘 알려져 있는 이 ‘ 이탈리아
교향곡 ’ 은 1,833年 5月 13日에 작곡가 자신의 지휘로 런던에서 초연될 당시에도,
영국 언론으로부터 ‘ 영감이 번뜩이는 찬란한 작품 ’ 이라는 극찬을 받았었다.
밝고 · 찬란하게 시작되는 1악장의 도입부와, 13세기 이탈리아의 나폴리 춤인 ‘ 살타렐로 ’ 의
리듬이 소용돌이치는 4악장을 들으면, 절로 이탈리아의 밝은 태양을 떠올리게 된다.
그러나 정작 故 멘델스존 자신은, 이탈리아의 음악 자체는 별로 좋아하진 않았었다고 한다.
독일 음악에 비해 지나치게 밝고, 논리성이 부족한 이탈
리아 음악이 그의 성향엔 맞지 않았던 모양이다.
게다가 그는 이탈리아 음악가들이, 故 하이든이나 故 베토벤 등 독일 관현악 명
곡들을 별로 연주하지 않는 것에 대해서도 불만스러워 했었다고 한다.
그래서 그는 이탈리아의 오케스트라와 함께, 故 하이든의 오라토리오인 ‘ 천지창조
’ 를 연습해 독일 음악을 이탈리아에 전파하려 시도하기도 했으나, 그에게 돌
아온 것은 음악이 너무 어렵다는 단원들의 불평 뿐이었었다고 한다.
이탈리아인들은, 독일 음악을 어렵게 생각했고, 故 멘델스존
은 이탈리아의 음악이 잡다하다고 느꼈던 거였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故 멘델스존이 걸작인 이 ‘ 이탈리아 교향곡 ’ 을 작곡할 수 있
었던 것은, 이탈리아의 아름다운 경치와 찬란한 날씨 덕분이었다고 한다.
그는, 이렇게 말했었다.
‘ 나는, 이탈리아의 예술 그 자체가 아니라 폐허나 경치 그
리고 자연의 화려함 속에서 음악을 찾아냈다 ’ 라고.
제 1 악장 : 알레그로 비바체
느린 서주 없이, 곧바로 빠르고 · 화려한 음악으로 시작하는 이탈
리아 교향곡 1악장은, 환한 태양의 이미지를 연상시킨다.
대개의 교향곡 1악장이, 4분의 4박자나 4분의 2박자로 된 것과는 달리,
이 곡은 빠른 8분의 6박자로 돼 있어서 마치 춤곡같은 느낌이 드
는데, 이는 故 베토벤의 교향곡 7번의 분위기와 흡사하다.
故 베토벤 역시, 그의 교향곡 7번의 1악장을 8분의 6박자로 설정하고, 경쾌한 리듬감
을 강조해 마치 영국의 옛 시골 춤곡인 ‘ 지그 ’ 와 비슷한 분위기를 살려냈다.
故 멘델스존도, 이 ‘ 이탈리아 교향곡 ’ 1악장에서 교향곡이 춤곡이 될 수도 있음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故 멘델스존이, 이 ‘ 이탈리아 교향곡 ’ 1악장에서 선보인 춤곡은 故 베토벤의 음악보
다는 좀 더 빠르고 · 발랄하며, 故 멘델스존 음악 특유의 화창함과 활기로 가득하다.
제 2 악장 : 안단테 콘 모토
2악장은, 영국 초연 당시에도 독창적인 작품이라는 평가를 받았을 만큼 독특한 점이 많다.
이 곡은, 故 베토벤의 교향곡 7번의 2악장처럼 느린 행진곡 풍이지만,
그 느낌이 마치 찬송가 같아서 엄숙한 종교의식을 연상시킨다.
작곡가였던, 故 이그나쯔 모셀레스(Ignaz Moscheles · 1,794 ~ 1,870)에
의하면, 이 선율은 집시 순례의 노래에서 힌트를 얻은 것이라고 한다.
순례자의 행진곡과도 같은 이 선율은, 오보에와 바순 · 비올라로 연주하게 돼 있는
데, 특이한 악기 배합으로 고풍스런 선율에는 이국적인 색채마저 느껴진다.
제 3 악장 : 콘 모토 모데라토
3악장에서 故 멘델스존은, 스케르초인지 · 미뉴에트인지 애매모호한 음악을 제시한다.
3악장은, 보통 빠르기의 미뉴에트나 빠른 스케르초로 작곡되는 것이 보통이지만, 故 멘
델스존은 이 ‘ 이탈리아 교향곡 ’ 3악장에서 스케르초도 · 미뉴에트도 아닌 어
중간한 템포로 유연한 멜로디를 선보이며, 낭만적인 정서를 강조했다.
‘ 트리오 ’ 라고 불리는 중간 부분에서는, 호른이 경쾌한 리
듬을 선보이면서, 목가적인 분위기를 전해준다.
제 4 악장 : 살타렐로 · 프레스토
4악장은, 故 멘델스존이 작곡한 음악 중에서는 꽤 격하고 · 긴박감에 넘치는 음악이다.
故 멘델스존의 작품들은, 대개 지나치게 극단으로 흐르는 일이 드문데 이 ‘
이탈리아 교향곡 ’ 4악장에서 만큼은 ‘ 리듬의 신격화 ’ 라고 불리는,
故 베토벤 교향곡 7번의 격렬함에 가까이 다가서고 있다.
故 멘델스존은, 4악장 악보에 ‘ 살타렐로 ’ 라고 적어 놓았는데, 이
것은 13세기 이탈리아의 나폴리에서 추던 빠른 춤곡이다.
‘ 살타렐로 ’ 는, 공중으로 빠르게 도약하면서 추는 춤이니만큼, 이 ‘ 이탈리아 교향곡 ’
4악장 앞부분을 들어보면, 사람들이 펄쩍펄쩍 뛰면서 춤을 추는 느낌이 든다.
이 ‘ 이탈리아 교향곡 ’ 의 2 · 3 · 4악장은, 후에 개정이 됐기 때문에 두 가지 판본이 존재한다.
故 멘델스존은 1,833年에, 이 ‘ 이탈리아 교향곡 ’ 을 완성하고 런던
에서 초연한 후에, 갑자기 이 작품이 완벽하지 않다고 느꼈는
지 이듬해인 1,834年에 개정 작업에 들어갔었다.
이때 그는, 2악장과 3악장 · 4악장을 수정했었다.
그 때문에, 이 ‘ 이탈리아 교향곡 ’ 의 2 · 3 · 4악장은 1,833年의 오리지
널 판본 뿐 아니라 1,834年의 개정판의 악보도 전해지고 있다.
그의 개정판을 들어보면, 독일적인 진지함이 더 강하게 느껴져 흥미롭다.
故 멘델스존은, 본래 이탈리아의 아름다운 경치와 이국적인 매력에 영감을 받아 이 ‘
이탈리아 교향곡 ’ 을 밝게 작곡했으나, 교향곡 초연 후에는 좀 더 독일적인
진지함을 가미해 작곡가 자신의 개성을 더 표현하고자 했던 것 같다.
지휘자, 파보 예르비
지휘자인, 파보 예르비는 1,962年 12月 30日 에스토니아에서 태어났었다.
그는, 유명한 지휘자인 그의 아버지인 네메 예르비(Neeme Järv
i · 1937 ~ )의 영향으로 어려서부터 음악을 배웠었다.
1979年 그의 아버지인 네메 예르비가 에스토니아에서, 정부에서 금기시하는 성서 내
용을 포함한 아르보 패르트(Arvo Pärt · 1,935 ~ 에스토니아)의 신작인 ‘ 크
레도 ’ 를 초연한 이후, 사회주의 정부와 음악계의 공식적인 비판을 받
자 1,980年부터 고국을 떠나 미국으로 망명 · 정착했었다.
미국에서 정착한 후, 자유로운 분위기의 신대륙에서 다양한 음악을 접한 예르비는, 커티스
음악원에 진학해 막스 루돌프(Max Rudolf · 1,967 ~ )와 오토 베르너 묄로(O
tto Werner Mueller) 교수를 사사했으며, 로스앤젤레스 필하모닉 음
악원에서 故 레너드 번스타인(Leonard Bernstein · 1,918
~ 1,990 · 미국)을 만나 가르침을 받기도 했었다.
1,994年부터 본격적인 지휘 활동을 시작한 예르비는, 말뫼 심포니 오케스트라에
서 처음 상임 지휘를 맡았고 1,995年부턴 앤드류 데이비스(Andrew Dav
is)와 공동으로 로열 스톡홀름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를 이끌었었다.
파보 예르비의 경력은 2,001年, 미국 신시내티 심포니 오케스트라
의 음악감독으로 부임하면서 전성기를 맞이하기 시작했었다.
신시내티 심포니를 맡은 후 그는, 개인 사무실의 문을 열곤 단원
들과 격의 없이 대화하면서 인간적인 소통을 이어갔었다.
민주적인 리더십을 발휘한 결과, 신시내티 심포니의 실력은 눈에 띄게 향상되었고, 텔락(Telarc)
레이블과 함께 故 이고르 스트라빈스키(Igor Stravinsky · 1,882 ~ 1,971 · 러시아의
상트페테르부르크) · 故 장 시벨리우스(Jean Sibelius · 1,865 ~ 1,957 · 스웨
덴계 핀란드) · 故 베를리오즈(Louis-Hector Berlioz · 1,803 ~ 1,86
9 · 프랑스) 등 다양한 레퍼토리를 녹음하면서 호평을 받았었다.
신시내티 심포니는 2,009年에는, 미국 일간지인 ‘ 뉴욕 선 ’ 에서 선
정한 미국 5대 오케스트라에 당당히 이름을 올리기도 했었다.
2,010年의 예르비는, 신시내티를 떠나 2,011年부터 파리 오케스트라의 지휘봉을 잡았었다.
프랑스 출신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정통 프랑스 음악으로 승부
를 걸겠다는 정면돌파 작전을 내세웠고,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그는 파리 오케스트라를 이끌면서, 독일 프랑크푸르트 방송 교향악단과 브레멘
도이치 캄머 필하모닉의 감독을 겸하고, 고국인 에스토니아 국립 관현
악단의 자문위원을 맡는 등 바쁜 활동을 지속해 나가고 있다.
이런 바쁜 활동 속에서도 그는, 가족들과 지속적인 교류를 이어가고 있다.
그의 아버지인 네메 예르비는, 여전히 건재함속에 활동을 이어가고 있고, 동생인 크리
스티안 예르비(Kristjan Järvi)는 클래식 뿐 아니라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연
주하는 크로스오버 앙상블을 이끌며, 개성적인 행보를 보여주고 있다.
각기 다른 오케스트라를 맡으면서도, 불화 없는 리더십을 보여 주고 있는, 유연하
고 · 융통성 있는 지휘자 파보 예르비는 2,015年부터 일본 NHK 심포니
수석 지휘자를 맡아, 다시 한 번 의욕적인 활동을 재개하고 있다.
2,012. 06. 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