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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 멘델스존(Mendelssohn) - 무언가(無言歌) 中 가장조, 봄의 노래

Classic Music

by tl3659\0\0 2019. 10. 21. 1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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펠릭스 멘델스존(Felix Mendelssohn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멘델스존(Mendelssohn- 무언가(無言歌) 中 가장조, 봄의 노래

Felix Mendelssohn - Song without Words No 30

in A major, Op 62 - 6 · Spring Song




故 멘델스존, 무언가


바로 이 봄의 노래는, 펠릭스 멘델스존(Felix Mendelssohn · 1,8

09 ~ 1,848 · 독일)의 ‘ 무언가 ’ 中의  5(작품 62)의 

6곡인 알레그렛토 · 그라찌오소 A장조 · 2/4박자

곡인데, 그는 49곡의 무언가를 작곡했었다.


무언가(無言歌)란, 가사가 없는 음악으로써 어떤 사물과 기분을 표현하는 노래라 할 수 있다.

사물을 표현하는데, 가사 없이도 음의 소재만으로도 충분한 것이다.


故 멘델스존은 1,830, 36때까지 틈틈이 작곡한

가들을 각 여섯 곡씩 전 8집으로 묶어 출판했었다.


각 곡들은, 故 프란츠 페터 슈베르트(Franz Peter Schubert · 1,797 ~ 1,82

8 · 오스트리아)의 소품들보다 더욱 짧아서 연주에 불과 5분 정도밖에 걸

지 않는 소곡들 뿐이며, 그 대부분을 3부 가요 형식으로 썼었다.


그리고 ‘ 무언가집 ’ 은, 처음에는 네 곡에만 표제가 붙어 있었다.

그가 처음부터 표제를 붙인 것은, 6 ·12 ·29 등 세 곡의 ‘

니스 곤돌라의 노래 ’ 와 제 18곡의 ‘ 2중창 ’ 뿐이었었.


훗날, 가곡 마다의 내용에 따라 거의 전곡에 표제가 붙고, 그대로 일반화됐었다.

그리고 낭만주의 음악의 특징은, 주관적이며 · 서정적인 점에 있다.

해서 故 멘델스존의 ‘ 무언가집 ’ 은, 그러한 음악의 대표적인 기악곡으로서 귀중하다.


수록된 곡은, Op 19b(6개의 작품) · Op 19b Nr 4 · Op 30(6개의 작품) · Op 38(6

개의 작품) · Op 53(6개의 작품) · Op 53 Nr 1 · Op 62(6개의 작품)이다.


‘ 무언가 ’ 는, 소품들로 이루어져 있지만 시정이 풍부하고 낭만적

멜로디의 흐름이 넘치는 참으로 매력적인 작품들이다.


그런 곡들 중에서도 바로 이 ‘ 봄의 노래 ’ 는, 동서고금을 통한 명곡으로 손꼽히며 피아노

아니라 바이올린 · 클라리넷 등 다양한 악기들로 편곡돼 독주곡으로도 인기가 높다.

그 중에서도, 특히 하프 반주가 받쳐주는 플루트 연주는 일품이다.


즉 흐르는 듯한 낭만적인 선율과, 매우 유괘한 분위기의 조성과 선율은 단순하지만 반주

양식 등에서 천분(天分)을 유감없이 발휘했으며, 또한 꾸밈을 교묘하게 사용

마치 동면에서 깨어나 봄의 환희를 느끼는 듯한 정취를 표현했었다.


지휘자, 다니엘 바렌보임


지휘자이자 피아니스트로, 지금도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는 그는 1,

942아르헨티나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태어났었다.






그는, 가족 모두가 이스라엘로 이주하면서 미국과 이스라엘에서 장학금을 받아,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의 모차르테움에서 피아노와 지휘를 공부했었다.


 이후의 그는 파리와 로마에서 수학했었고, 16세 때엔 故 레오폴드 스토코프스키(Leopo

ld Stokowski · 1,882 ~ 1,977 · 영국 태생 미국의 지휘자)의 지휘로 미국에 데

뷔한 이후 10대 중반의 나이에 천재 피아니스트로 세계적 명성을 얻었.




바렌보임은, 20세 때 본격적으로 지휘를 시작했.

그는, 영국 실내관현악단을 시작으로 세계적 오케스트라를 객원 지휘

, 피아니스트 뿐만 아니라 지휘자로도 국제적 명성을 얻었.


그는, 파리 관현악단 · 시카고 심포니 오케스트라 그리고 베를린 슈타츠카펠레까

지 세계 최고 오케스트라들의 음악감독으로 최소 10 이상 장기 집

면서, 자신의 확고한 음악세계를 풍부하게 펼쳐나가고 있다.


특히 그는 2,000부터, 베를린 슈타츠카펠레의 종신 수석지휘자로 임명됐었다.

그의 음악은, 어떻게 보면 매우 독일적이고 또 가끔은 러시아적 투박한 면모를 보일 때가 있다.

일단 그의 부모는, 러시아에서 동유럽권 유태인 박해를 피해 남미로 이주해 온 음악인 출신이었.


또 최고의 지휘 클래스였던, 구 소련 키에프 출신의 지휘자인 ‘ 故 이고르

르케비치(Игорь Борисович Маркевич · 1,912 ~ 1,983 ·

크라이나의 키에프’ 의 클래스에서 처음 지휘를 배웠.

 

그리고 그는, 故 카라얀 전의 베를린 필 수석지휘자이자 · 독일 최고의 지

로 손꼽히는 ‘ 故 빌헬름 푸르트벵글러(Wilhelm Furtwängler

· 1,886 1,954 · 독일) ’ 의 영향도 매우 많이 받았.


보통 피아니스트로 시작해, 오페라 극장에 취직한 뒤 지휘자가 되는 것이 정통 독일 지휘자들이 밟는 코스다.

헌데 바렌보임은, 비록 지휘 초창기 시절 극장에서 피아니스트나 음악코치 활동을 하

았지만, 피아니스트와 실내악 주자로 왕성하게 활동하다 지휘자가 됐었,

교향곡 뿐 아니라 오페라 지휘자로서도 최고의 성공을 거뒀기 때문에

, 그의 음악에 마치 오페라처럼 극적 요소가 많이 배어 있다.








물론 교향곡과 오페라, 이 두 분야에서 동시에 최고의 성공을 거둔 지휘자는 그리 많진 않다.

그리고 이렇게 지휘의 모든 분야에서, 다 성공을 거둔 지휘자들을 우리는 마에스트로라고 부른다.


그리고 다니엘 바렌보임 하면, 떠오르는 한 인물이 있다.

즉 바렌보임의 전 부인이었던, 당대 최고의 여류 첼리스트였던 故 재클린 뒤 프레이다.

그녀가 남긴 에드워드 엘가(Sir Edward Elgar · 1,857 ~ 1,934 ·

)의 첼로 협주곡 음반은 더 이상의 설명이 필요없을 정도였었다.


마치 마리오 델 모나코의 오텔로처럼, 명문가에서 태어났던 그녀는 부모들의 반대를 무릅

쓰고당시 조금씩 유명세를 떨치고 있던 젊은 지휘자인 바렌보임과 결혼했었다.


아예 유대교로 개종까지 해 버린 그녀는, 남편을 위해 열심히 내조했었다.

그러나 그녀는, 세계적 첼리스트로써 승승장구하던 25세의 나이에 다발성

경화증이라는 희귀병에 걸려 28세의 나이에 공식적으로 은퇴하고,

오랜 투병생활 끝에 결국 42세의 나이로 숨을 거뒀었다.


그러나 바렌보임은, 투병 중인 그녀와 이혼한 후 러시아 피아니스트와 재혼

했으며, 그녀의 임종이나 장례식장에도 모습을 드러내진 않았었다.









피아노, 다니엘 바렌보임(Daniel Barenboim · 1,942 ~ 아르헨티나 부에노스 아이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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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니스트 겸 지휘자인, 다니엘 바렌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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