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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 시벨리우스(Sibelius) - 교향곡 7번 다장조, 작품번호 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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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l3659\0\0 2019. 10. 28. 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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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벨리우스(Sibelius) - 교향곡 7번 다, 작품번호 105

Jean Sibelius - Symphony No 7 in C major, Op 105

지휘자다니엘 하딩(Daniel Harding · 1,975 ~ )




故 시벨리우스, 교향곡 7


바로 이 故 시벨리우스, 교향곡 7C장조 Op. 105는 1,924에 완성됐었다.

작곡 시작은, 교향곡 제 6번과 거의 같은 시기인 1,910年代로 돼 있다.


1,924 3 25스톡홀름 악우협회 연주회에서, 작곡자 자신의 지휘로 초연됐었다.
초연 때는 ‘ 교향적 환상곡 ’ 라고 명명하고, 교향곡으로 번호가 주어진 것은 이듬해 출판 때였었다.


교향곡이란 이름을 붙이고는 있지만, 단일 악장이며 속도 지시는 다음과 같다.
Adagio(서주) - Vivacissimo - Adagio - Allegro molto moderato - Allegro

moderato - Presto - Adagio - Largamente molto - Affettuoso.
교향곡으로서는, 드문 단일 악장의 구성을 취했었다.


이것은, 처음부터 교향곡으로 의도하여 작곡되지 않은 때문이지만,

 전체를 하나의 확대된 소나타 형식으로 간주할 수도 있다.


팀파니의 G음에 이어, 땅 속에서 솟구치는 현의 음계에 따라 느긋하게 음악을 시작한다.

잠시 엄숙한 악상이 계속된 후, 첫 번째 고조로 제 1주제라고 할 수 있는 트롬본 선율이 울려 퍼진다.

이 트롬본의 선율은, 중간부에서 약간 형태가 바뀐 형태로 나타

나 종결부에서 다시 거의 그대로의 모습으로 재현된다.


이에 동행 선율로, 플루트의 상승 하강을 반복하는 맹아적인 구절

 있는, 이는 종결부에서 가장 긴 완성된 형태로 제공된다.


이 곡의 의의는, 유기적으로 융합한 교향곡의 각 요소를 응축된 소리 속에서 표현한 것이다.
연주 시간은, 평균적으로 22분 정도이다.


지휘자, 다니엘 하딩


구스타프 말러(Gustav Mahler · 1,860 ~ 1,911 · 보헤미아)의, 스페셜 리스트로

서 열정과 실력을 인정받은, 차세대 지휘자인 다니엘 하딩은 1,975 831

영국에서 태어나, 비교적 젊은 나이부터 지휘자로 주목을 받았었다.


그는 13세부터 트럼펫을 시작했고, 맨체스터 음악학교에 다니던 17세에 동료들

과 함께 한 오케스트라에서 故 아르놀트 쇤베르크(Arnold Schoenberg

· 1,874 ~ 1,951 · 오스트리아에서 태어나 미국으로 귀화한 

가)의 ‘ 달에 홀린 피에로 ’ 를 처음으로 지휘했었다.


그리고 이 실황을 녹음한 테이프를 들은, 버밍엄 시립 교향악단의 지휘자인 사이먼

틀(Simon Rattle · 1,955 · 영국의 리버풀)에 의해 발탁돼 1여의 훈

친 끝에, 버밍엄 시립 교향악단을 지휘하면서 정식으로 데뷔 했었다.


1,994, 스무 살도 안된 젊은 마에스트로의 탄생을 알린 다니엘 하딩은, 이후

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를 이끄는 故 클라우디오 아바도(Claudio A

bbado · 1,933 ~ 2,014 · 이탈리아)와도 인연을 맺게 됐었다.


하딩의 재능을 눈여겨 본 故 아바도는, 그를 자신의 조수로 삼곤

1,996 베를린 필을 지휘할 수 있는 기회도 주었었다.

1,996 21세의 나이로 지휘봉을 잡은 하딩은, 베를린 필 역사상 최연소 지휘자라는 기록도 세웠었다.

故 아바도의 전폭적인 신임을 받은 하딩은 2,003, 말러 체임버 오케스트라의 지휘봉도 이어받았었다.

1,997, 故 아바도가 직접 창단한 악단을 이어받으며 故 아바도의 후계자임을 확고히 알린 하

딩은, 말러 체임버 오케스트라와 열린 마음으로 소통하면서 오케스트라를 이끌어갔었다.


한편, 20代의 젊은 지휘자를 곱지 않은 시선으로 보는 오케스트라와의 마찰도 있었다.

2,005年의 그, 파리 국립 오케스트라와 故 모짜르트의 오페라인 ‘ 코지 판 투테 ’ 를 연주하기

로 했으, 단원들의 비협조적인 태도 때문에 결국 연주를 포기해야 하는 상황도 있었다.


그런 아픔을 겪으면서 한 단계 성장한 하딩은, 그해 겨울 밀라노 라 스칼라 극장에서 故

르트의 또 다른 오페라인 ‘ 이도메네오 ’ 를 성공적으로 공연하면서 리카도 무(

Riccardo Muti · 1,941 ~ 이탈리아의 지휘자)의 공백을 완벽히 채웠

언론에서는 그를 향해 ‘ 밀라노의 기적 ’ 이라는 찬사를 보냈었다.


이후 하딩은, 잘츠부르크 페스티벌과 런던 코벤트 가든 · 로열 오페라 하우스 등의

에 올라 故 모짜르트에서 故 브리튼(Edward-Benjamin Britten · 1,913

~ 1,976 · 영국)과 故 베르크(Alban Berg · 1,885 ~ 1,935 ·

트리아)이르기까지 폭넓은 시대의 작품들을 연주했었다.


영국 출신인 하딩은, 음악만큼이나 축구를 좋아해서 연주가 없는 날은 늘 축구장을 찾곤 한다.

또한 지휘를 하는 틈틈이, 카퓌송(Capuçon) 형제들과 바이올리니스

인 리아 피셔(Julia Fischer · 1,983 ~ 독일) 등 젊은 

자들과 호흡을 맞춰 음반 녹음도 이어가고 있다.


말러 체임버 오케스트라의 상임 지휘와, 스웨덴 방송 교향악단의 음악 감독을 병행하고 있

는 다니엘 하딩은,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수석 객원 지휘자로도 활동하고 있다.

 







지휘, 故 레나드 번스타인(Leonard Bernstein · 1,918 ~ 1,990 · 미국)

악단, 필하모닉 오케스트라(Wiener Philharmoniker)


지휘다니엘 하딩(Daniel Harding · 1,975 ~ 영국의 옥스퍼드)

악단, 말러 챔버 오케스트라(Mahler Chamber Orchest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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