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 시벨리우스(Sibelius) - 교향곡 7번 다장조, 작품번호 105
故 Jean Sibelius - Symphony No 7 in C major, Op 105
지휘자 : 다니엘 하딩(Daniel Harding · 1,975 ~ )
故 시벨리우스, 교향곡 7번
바로 이 故 시벨리우스, 교향곡 7번 C장조 Op. 105는 1,924年에 완성됐었다.
작곡 시작은, 교향곡 제 6번과 거의 같은 시기인 1,910年代로 돼 있다.
1,924年 3月 25日 스톡홀름 악우협회 연주회에서, 작곡자 자신의 지휘로 초연됐었다.
초연 때는 ‘ 교향적 환상곡 ’ 라고 명명하고, 교향곡으로 번호가 주어진 것은 이듬해 출판 때였었다.
교향곡이란 이름을 붙이고는 있지만, 단일 악장이며 속도 지시는 다음과 같다.
Adagio(서주) - Vivacissimo - Adagio - Allegro molto moderato - Allegro
moderato - Presto - Adagio - Largamente molto - Affettuoso.
교향곡으로서는, 드문 단일 악장의 구성을 취했었다.
이것은, 처음부터 교향곡으로 의도하여 작곡되지 않은 때문이지만,
전체를 하나의 확대된 소나타 형식으로 간주할 수도 있다.
팀파니의 G음에 이어, 땅 속에서 솟구치는 현의 음계에 따라 느긋하게 음악을 시작한다.
잠시 엄숙한 악상이 계속된 후, 첫 번째 고조로 제 1주제라고 할 수 있는 트롬본 선율이 울려 퍼진다.
이 트롬본의 선율은, 중간부에서 약간 형태가 바뀐 형태로 나타
나 종결부에서 다시 거의 그대로의 모습으로 재현된다.
이에 동행 선율로, 플루트의 상승 하강을 반복하는 맹아적인 구절이
있는데, 이는 종결부에서 가장 긴 완성된 형태로 제공된다.
이 곡의 의의는, 유기적으로 융합한 교향곡의 각 요소를 응축된 소리 속에서 표현한 것이다.
연주 시간은, 평균적으로 22분 정도이다.
지휘자, 다니엘 하딩
故 구스타프 말러(Gustav Mahler · 1,860 ~ 1,911 · 보헤미아)의, 스페셜 리스트로
서 열정과 실력을 인정받은, 차세대 지휘자인 다니엘 하딩은 1,975年 8月 31
日 영국에서 태어나, 비교적 젊은 나이부터 지휘자로 주목을 받았었다.
그는 13세부터 트럼펫을 시작했고, 맨체스터 음악학교에 다니던 17세에 동료들
과 함께 한 오케스트라에서 故 아르놀트 쇤베르크(Arnold Schoenberg
· 1,874 ~ 1,951 · 오스트리아에서 태어나 미국으로 귀화한 작
곡가)의 ‘ 달에 홀린 피에로 ’ 를 처음으로 지휘했었다.
그리고 이 실황을 녹음한 테이프를 들은, 버밍엄 시립 교향악단의 지휘자인 사이먼 래
틀(Simon Rattle · 1,955 · 영국의 리버풀)에 의해 발탁돼 1年여의 훈련을
거친 끝에, 버밍엄 시립 교향악단을 지휘하면서 정식으로 데뷔 했었다.
1,994年, 스무 살도 안된 젊은 마에스트로의 탄생을 알린 다니엘 하딩은, 이후 베
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를 이끄는 故 클라우디오 아바도(Claudio A
bbado · 1,933 ~ 2,014 · 이탈리아)와도 인연을 맺게 됐었다.
하딩의 재능을 눈여겨 본 故 아바도는, 그를 자신의 조수로 삼곤
1,996年 베를린 필을 지휘할 수 있는 기회도 주었었다.
1,996年 21세의 나이로 지휘봉을 잡은 하딩은, 베를린 필 역사상 최연소 지휘자라는 기록도 세웠었다.
故 아바도의 전폭적인 신임을 받은 하딩은 2,003年, 말러 체임버 오케스트라의 지휘봉도 이어받았었다.
1,997年, 故 아바도가 직접 창단한 악단을 이어받으며 故 아바도의 후계자임을 확고히 알린 하
딩은, 말러 체임버 오케스트라와 열린 마음으로 소통하면서 오케스트라를 이끌어갔었다.
한편, 20代의 젊은 지휘자를 곱지 않은 시선으로 보는 오케스트라와의 마찰도 있었다.
2,005年의 그는, 파리 국립 오케스트라와 故 모짜르트의 오페라인 ‘ 코지 판 투테 ’ 를 연주하기
로 했으나, 단원들의 비협조적인 태도 때문에 결국 연주를 포기해야 하는 상황도 있었다.
그런 아픔을 겪으면서 한 단계 성장한 하딩은, 그해 겨울 밀라노 라 스칼라 극장에서 故 모짜
르트의 또 다른 오페라인 ‘ 이도메네오 ’ 를 성공적으로 공연하면서 리카르도 무티(
Riccardo Muti · 1,941 ~ 이탈리아의 지휘자)의 공백을 완벽히 채웠고
, 언론에서는 그를 향해 ‘ 밀라노의 기적 ’ 이라는 찬사를 보냈었다.
이후 하딩은, 잘츠부르크 페스티벌과 런던 코벤트 가든 · 로열 오페라 하우스 등의 무
대에 올라 故 모짜르트에서 故 브리튼(Edward-Benjamin Britten · 1,913
~ 1,976 · 영국)과 故 베르크(Alban Berg · 1,885 ~ 1,935 · 오스
트리아)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시대의 작품들을 연주했었다.
영국 출신인 하딩은, 음악만큼이나 축구를 좋아해서 연주가 없는 날은 늘 축구장을 찾곤 한다.
또한 지휘를 하는 틈틈이, 카퓌송(Capuçon) 형제들과 바이올리니스
트인 율리아 피셔(Julia Fischer · 1,983 ~ 독일) 등 젊은 연
주자들과 호흡을 맞춰 음반 녹음도 이어가고 있다.
말러 체임버 오케스트라의 상임 지휘와, 스웨덴 방송 교향악단의 음악 감독을 병행하고 있
는 다니엘 하딩은,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수석 객원 지휘자로도 활동하고 있다.
지휘, 故 레나드 번스타인(Leonard Bernstein · 1,918 ~ 1,990 · 미국)
악단,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Wiener Philharmoniker)
지휘, 다니엘 하딩(Daniel Harding · 1,975 ~ 영국의 옥스퍼드)
악단, 말러 챔버 오케스트라(Mahler Chamber Orchestr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