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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 라흐마니노프(Rachmaninov) - 보칼리제, 작품 34 中 14

Classic Music

by tl3659\0\0 2019. 10. 10. 1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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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흐마니노프(Rachmaninov) - 보칼리제, 작품 34 14

Sergei Rachmaninov - Vocalise Op.34, No.14

소프라노, 르네 플레밍(Renée Fleming)




라흐마니노프, 보칼리제


故 세르게이 바실리예비치 라흐마니노프(Sergei Vasilevich Rachmaninov · 1,87

3 ~ 1,943 · 러시아계 미국인)가 쓴 가곡은, 작품번호가 없는 것까지 포

80여곡 정도되는데, 이 곡은 연습이나 연주를 위한 사 

는 성악곡으로, 전편에 흐르는 우수에 젖은 선율이 

하면서 러시아의 민요적 분위기를 느끼게 한다.


보칼리제(Vocalise)란우리 말로는 ‘ 무언가(無言歌) ’ 정도로 로

, 단어 그대로 그냥 의미없이 하나의 모음(아 ~ · ~

·  ~ 등)으로만 노래하는 형식을 말한다고 한다.


이 곡은, 소프라노 가수였던 故 안토니나 네츠다노바에게 헌정됐었다.

초연은 1,916, 모스코바에서 故 쿠셰비츠키의 지휘로 이루

, 노래는 故 안토니나 네츠다노바가 불렀었다.


그리고 우리가 흔히 보칼리제로 부르는 이 곡은, 그의 첼로와 피아노를 위한 소나타

전집의 34 - 14번으로 ‘ 사랑의 슬픔 ’ 이라는 부제를 가지고 있는 곡이다.


현악에 관련된 각종 콘서트에서 빠지지 않는 레파토리가 된 이 곡은,

애절한 선율의 흐름이 한국적 한을 느끼게 해 주기도 한다.


이 곡의 인기는, 故 라흐마니노프의 여타 앨범에도 영향을 미쳐 그의

범 판매량이 故 바흐나 故 모짜르트와 견줄 정도에 이르렀었다.


그리고 이 곡은, 국내 전통음악과의 접목으로 가야금과 해금 합

도 드물게 꾸준히 연주되고 있기도 한데, 첼로를 하나의 맥으로

어가며, 피아노를 통해 대사를 전달하고 있는 듯하다.


작곡가,라흐마니노프


러시아 태생인, 故 세르게이 바실리예비치 라흐마니노프(Sergei Vasilevich Rachmanino

v · 1,873 ~ 1,943 · 러시아계 미국인), 세계 일류의 피아니스트 겸 작곡가였었다.


그는, 5세 때에 어머니에게 피아노를 공부했는데, 이 때부터 음악적인 천품이 나타났었었다 한다.

해서 그는 1,888, 모스크바 음악원에 전학해 7간 피아노와 이론을 공부했었다.

1,892 그는, 오페라와 교향곡 등을 썼으며, 피아노 전주곡은 런던에서 소개됐었다.


그 때문에 1,899의 그는, 런던 필하모니 협회의 초청을 받아 영

에서 작곡 · 피아니스트 · 지휘자로서 이름을 떨쳤었다.

그리고 1,895 그는, 영국에서 피아노 협주곡을 위촉받았

는데, 그것을 페테르스부르크에서 초연하기도 했었다.


그 후의 그는, 모스크바 · 드레스덴 · 미국 등지를 여행해 절찬을 받았으며,

년에는 주로 미국에 정주해 작곡과 연주자로 크게 활약했었다.


그의 작품은, 3개의 교향곡 · 교향시 · 관현악곡 그리고 피

노곡 분야에서 우수한 작품들을 많이 남겼었다.

더구나 피아노에 있어서의 그는, 그 악기의 극한까지 특성을 발휘했다고 하겠으며,

표현양식은 고전적인 기교와 낭만적인 선율을 효과적으로 전개시켰었다.


따라서 그의 작품에서는, 러시아의 국민성을 반영했으며 슬라브적인 색채가 농후했었다.

그는, 소박하고 · 솔직하며 · 어두운 성격의 소유자였지만, 진지한 인격을 겸비한 예술가였었다.


그는, 러시아 육군장교였던 아버지인 故 바실리(Vasily)와 황실 장군의 딸이었던 어머니 故 루보

(Lubov) 사이에서 태어난 러시아 귀족 집안의 아들이었지만, 그러나 삶은 궁핍했었다.

그의 아버지의, 방탕한 생활 때문이었었다.


故 라흐마니노프가 태어날 무렵부터, 여자와 도박에 빠진 故 바실리는 드넓은 영

지와 수많은 가산을 모두 탕진한 채, 가족을 버리곤 야반도주해 버렸었다.

큰 빚만 안겨주고 떠난, 그의 아버지로 인해 남겨진 가족의 삶은 말이 아니였었다.


그의 어머니는 그의 아버지와 이혼하곤살고 있던 노브

로드를 떠나 상트페테르부르크로 이주했었다.

故 라흐마니노프는, 그 곳에서 음악원을 다녔으나 성적은 좋질 않았었다.

해서 그는, 급기야 전과목 낙제점을 받곤, 음악원에서 퇴학당하는 일까지 벌어졌었다.




악단, 영국 실내 관현악단(English Chamber Orchestra · 1,997)

소프라노, 르네 플레밍(Renée Fleming · 1,959 ~ 미국)

지휘, 제프리 테이트(Jeffrey Tate · 1,943 ~ 영국)



공연장, 모스크바음악원(The Moscow Conservatory · 2,008)

첼로, 미샤 마이스키(Mischa Maisky · 1,948 ~ 라트비아)

피아노, 릴리 마이스키(Lily Maisky)


피아노, 故 에밀 길렐스(Emil Gilels · 1,916 ~ 1,985 · 우크라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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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곡가, 라흐마니노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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