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 라흐마니노프 - 피아노 협주곡 2번 다단조 1악장, 작품 18
故 Rachmaninov - Concerto for Piano No 2 in C minor Op 18
피아노 : 블라디미르 아쉬케나지(Vladimir Ashkenazy)
故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2번
바로 이 곡은 1,899年부터 1,901年에 걸쳐 작곡된 명작으로, 故 세르게이 바실리예비치
라흐마니노프(Sergei Vasil’evich Rachmaninov · 1,873 ~ 1,943 · 러시
아계 미국인)의 피아노 협주곡 중 가장 걸작으로 널리 연주되고 있다.
그는 4곡의 피아노 협주곡을 썼는데, 2번과 3번이 주로 연주되고 있다.
그는 26세 때부터, 얼마동안 신경쇠약에 걸려 모든 것에 흥미를 잃곤,
고통스런 생활을 했는데 친구의 권고에 따라 故 다알 박사
의 이른바 암시요법으로 회복할 수 있었다고 한다.
그러니까 박사는, 매일 그를 자기의 진료소에서 어떤 암시를 주는 거였었다고 한다.
즉 ‘ 당신은, 이제 좋은 작품을 쓸 수 있다. 그것은 대단히 훌륭한 것이 될
것이다 ’ 라는 암시 덕분에, 故 라흐마니노프는 다시 펜을 들어
, 바로 이 피아노 협주곡 2번을 완성했었다고 한다.
해서 그는, 이 작품을 故 다알 박사에게 감사하는 뜻으로 바쳤었다.
헌데 그는 1,901年 10月 27日 모스크바에서, 자신의 피아노 독주로 초연했었는데 1,90
4年에 이 작품으로 글린카 상을 받게 돼, 500루우불을 수상금으로 타게 됐었다.
이 작품은, 일반인들에겐 친숙하기 쉬운 통속성을 지니고 있으며,
긴장되고 힘찬 그러나 시적인 정서가 풍부한 협주곡이다.
피아노, 블라디미르 아쉬케나지(Vladimir Ashkenazy · 1,937 ~ 舊 소련의 고리키)
전 악장, 이어 듣기
제 1 악장 : Moderato · C단조 · 2/2박자 · 소나타 형식
피아노가, 어두운 화음을 장중하게 연타하면서 시작된다.
뒤이어 오케스트라가, 정열적이고 · 몽환적인 선율로 제 1테마를 유도한다.
제 2테마는 비올라에 이어 독주 피아노의 연주로 전개되는데, 故 라흐마니노프적인 풍부한
감미로움이 보드라운 물결처럼 전신을 휘감는 느낌을 주어 대단히 감각적이다.
강렬한 정열과, 섬세한 감미로움을 담은 선율의 대조가 일품이다.
변형적인 발전부와 재현부가, 여러 갈래로 펼쳐지면서 완
숙한 젊음이 넘쳐흐르는 듯한 희열을 안겨준다.
마지막은, 힘찬 행진곡 풍의 빠른 템포로 극적으로 끝난다.
제 2 악장 : Adagio sostenuto E장조 · 4/4박자 · 세도막 형식
故 라흐마니노프의 서정성이, 가장 잘 나타나 있는 악장이다.
극히 느린 템포의 아름다운 이 악장은, 꿈을 꾸는 듯한 자유로운 형식의 환상곡이라 하겠다.
말하자면 그의 다성부의 음악에 대한 역량과, 오케스트
라를 다루는 천재적인 재능을 과시한 악장이다.
제 3 악장 : Allegro scherzando C단조 · 2/2박자
경쾌하고 · 생동감이 넘치는 악장으로, 두 개의 테마가 변화무쌍하게 나타난다.
살아 움직이는 듯한 오케스트라의 서주에 이어, 피아노가 중심 주제를 화려하게 연주한다.
열정적인 사랑이 폭발하는 느낌을 주는가 하면, 고요한 정적의
심연으로 끝없이 가라앉는 듯한 느낌을 주기도 한다.
제 1테마와 대조적인 제 2테마는, 오보에와 비올라에 의해 우아하고 ·
아름답게 반복적으로 나타나는데, 솔로 피아노가 이를 반복한다.
발전부를 중심으로, 한 개의 선율이 몇 개의 다른 악기로 뒤쫓아 얽혀지는 푸가
를 거쳐 재현부를 지나며, 마지막은 급속한 템포속에 대미를 장식한다.
작곡가, 故 라흐마니노프
겨우 열 살이던, 故 세르게이 바실리예비치 라흐마니노프(Sergei Vasil’evich Rac
hmaninov · 1,873 ~ 1,943 · 러시아계 미국인)는, 부모의 이혼으로 아버
지의 부재도 견디기 힘든 고통이었는데, 그에게 힘이 되어주던 누나
마저 디프테리아로 사망하면서 큰 충격에 빠졌었다고 한다.
그런데도 교육열이 높았던 그의 어머니는, 故 라흐마니노프를 포기하진 않았었다고 한다.
그에게 음악적 재능이 있음을 알곤, 그의 어머니는 슬픈 추억이 깃든 고향에
서도 멀리 떨어진 모스크바 음악원으로 그를 유학 보냈었다고 한다.
헌데 그 곳엔, 그의 아버지의 사촌인 故 실로티(Siloti
)가 있었기에, 그는 많은 의지가 됐었다 한다.
해서 그는, 그 집에 머물면서 음악공부를 시작하게 됐는데, 그때 나중에 그의 아내가 되는 6촌
동생인 故 나탈리아 사티나(Natalia Satina · 1,877 ~ 1,951)을 만나게 됐었다.
해서 이들은, 함께 휴가를 보내거나 · 농사일을 거들면서 친분을 유지했었다.
하지만 이 당시엔, 두 사람은 먼 친척 관계로만 지냈었다.
그렇게 모스크바에서 정신적인 안정을 찾은 故 라흐마니노프는, 숨겨진 재능을 세상에 드러내기 시작했었다.
이때 그가 작곡해, 육촌 형제들에게 하나씩 헌정한 것이 ‘ 여섯 노래(six songs) ’ 이다.
그리고 No. 4인, ‘ 내게, 노래 부르지 마세요(Sing not, To me
Beautiful Maiden) ’ 는 故 나탈리아에게 헌정됐었다.
잃어버린 사랑에 대한 그리움을 노래하고 있는, ‘ 내게, 노래 부르지 마세요 ’ 를
통해 故 라흐마니노프는, 떠나버린 아버지와 죽은 누이를 그리워했었다.
또한 이 무렵, 그의 음악적 재능을 살려줌은 물론 정신적으
로도 큰 의지가 되는 한 사람을 더 만나게 됐었다.
그러니까 모스크바 음악원 교수인, 故 니콜라이 즈베레프(Nikolai Zverev)였었다.
누구보다 故 라흐마니노프의 처지를 깊게 이해했던 故 즈베레프는, 개인 레
슨비도 완전히 면제해 주면서까지 故 라흐마니노프를 가르쳤었다.
하지만 그런 스승도, 그의 곁에 오래 있지는 않았었다.
1,893年 故 즈베레프가 죽고, 연이어 그가 가장 존경했던 음악가인 故 차이콥스키
(Chaikovskii)까지 사망하자, 그에겐 또다시 상실의 고통이 찾아왔었다.
그러나 참 다행스러웠던 것은, 그때 모스크바 음악원을 후원하던 귀
족 미망녀 덕분에, 그의 상실감은 쉽게 극복될 수 있었다.
故 리쉬코바 부인은 1,893年 5月, 자신이 후원하던 음악원
을 방문하던 중에 故 라흐마니노프를 보게 됐었다.
그녀는, 훤칠한 키에 음악에 대한 재능이 남달랐던 그에게서, 어린
나이에 세상을 떠난 자신의 아들 모습을 발견했었다 한다.
해서 故 리쉬코바 부인은, 졸업을 앞둔 그를 자신의 별장에 초대했었다.
그리고 자신의 영지에 머물면서, 그에게 작품을 만
들어보라며, 그녀의 별장을 빌려줬었다.
피아노, 안나 페도로바(Anna Fedorova · 우크라이나)
피아노, 데니스 레오니도비치 마추예프(Дени́с Леони́дович Мацу́ев · 1,975 · 러시아의 이르쿠츠크)
악단, 카타르 필하모닉 오케스트라(Qatar Philharmonic Orchestra)
지휘, 장한나(Han na Chang · 1,982 ~ 대한민국의 수원)
피아노, 故 알렉시스 바이센베르크(Alexis Weissenberg · 1,929 ~ 2,012 · 불가리아의 수도 소피아)
악단, 베를린 필하모니 오케스트라(Berliner Philharmonisches Orchester)
지휘, 故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Herbert von Karaj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