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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계한, 일본 종군 강제 위안부 피해자들의 사진 모음 7

타계한 위안부들

by tl3659\0\0 2017. 6. 29. 0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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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군의 종군 강제 위안부 피해자인, 故 문필기 할머님

 

타계한, 일본 종군 강제 위안부 피해자들의 사진 모음 7 

 

 

 

 

 

故 이양근 할머님

 

2,010年 12月 11日, 전북 익산에서 거주하시던 이양근 할머님께서도 운명하셨었다.

 

1,923, 전북 익산에서 출생하신 故 이양근 할머님은 1,942방직공장

취직시켜 준다는 말에 꾀여 싱가폴에서 해방될 때까지 지속적

으로 일본군의 ‘ 성노예 ’ 로 힘겨운 날들을 보내셨었다.

 

이양근 할머님은, 해방 후 귀항하셨으나 어렵게 생활을 이어가셨었다고 한다.

이양근 할머님은, 노인성 질환으로 힘겨워 하시다가, 갑작스런 뇌경색으로

쓰러지신 후 하루를 넘기시지 못하고 그만 눈을 감으셨었다고 한다. 

 

 

 

故 유희남 할머님

 

일본군의 종군 강제 위안부 피해자인 故 유희남 할머님이, 향년 90세로 2,016

7 10오전 8 24분 국립 중앙 의료원에서 영면하셨었다.

 

故 유희남 할머님은, 1,928충남 아산군 선장면에서 출생하셨었.

故 유희남 할머님은, 15살에 강제로 끌려가는 것을 피하려고 60리가

는 곳으로 도망 다니다가 붙잡혀 1,943에 시모노세키에서

1년 동안 일본군의 ‘ 성노예 ’ 로 피해를 당했었.

 

그리고 오사카에서 싱가폴로 이동 중, 원자폭탄이 떨어져 돌아오다가

오사카 주민 할아버지의 도움으로 한국으로 귀환하게 됐었다.

 

 

한국에 도착 후에도 계속 도망을 다니다가, 절에 들어가 생활을 하기도 했

· 해방 후 보따리 장사를 하며 생계를 유지하다가, 지난

2,012 6月부터 나눔의 집에서 생활을 해 왔었.

 

또한 故 유희남 할머님은, 폐암으로 투병 중에도 반인권적이고 · 반역사적인 책으

로 할머님들의 명예를 실추시킨 박유하 교수 재판에도 참여하셨었다.

 

그리고 故 유희남 할머님은, 다시는, 이러한 아픈 역사가 반복되서는 안된

말씀하시면서 일본의 만행은, 전 세계인이 알아야 한다.래서 피해

사를 유네스코에 반드시 등록해야 한다 ” 라고도 강조하셨었다.

 

그리고 또 유희남 할머님은, 후유장애로 인한 불면증과 심장질환 · 폐암으로 고통을 받으셨지

, 본의 공식 사죄와 법적 배상 · 피해자 명예 회복을 위해 애쓰시다 훌훌 떠나셨었다.

 

그러나 故 유희남 할머님의 영결식은, 유가족들의 요청으로 언론

에 공개되지 않은 채 조용히 진행됐었다고 한다.

 

 

 

故 김경순 할머님

 

2,0162月 20日, 한국 정신대 문제 대책 협의회에 따르면 서울 강서구에 거주

시던 일본군의 종군 강제 위안부 피해자인 故 김경순 할머님이 향년

 90오후 12시쯤 지병으로 눈을 감으셨다고 발표했었다.

 

故 김경순 할머님은, 일제 강점기 일본 히로시마 위안소로 강제

동원됐으, 이때 병을 얻어 한국으로 돌아왔었다.

 

김경순 할머님은, 1,992年 정대협에 위안부 피해 사실을 신고하고 · 활동해 왔었다.

또 故 김 할머님은, 1,9937月 말 일본 정부 조사단에 직접 피해 사실을 증언했었다.

 

故 김경순 할머님 등 16명이 참여한 이 증언은, 같은 해 84

일본이 ‘ 고노담화 ’ 를 발표하는 근거가 됐었다.

고노담화에는, 일본이 위안부 피해자의 강제동원 사실을 인정하는 내용이 담겼었다.

 

그리고 故 김경순 할머님은, 7다른 위안부 피해자인 故 유희남 할머님과

함께 아키히토 일왕과 아베 신조 총리를 비롯한 일본 정부 주요 인사와 미

쓰비시 · 도요타 · 산케이 신문 등 20여개 기업을 상대로 강제동원

피해와 명예훼손의 민사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었다.

 

그러나 김경순 할머님은, 그간 지병을 앓으며 입원 · 수술 · 퇴원을 반복하셨었다 한다.

그리고 故 김경순 할머님은, 눈을 감기 며칠 전부터 다른 위안부 할머님들과 정대협

관계자들에게 “ 보고 싶다 ” 라며 전화를 걸었던 것으로 전해졌었다.

 

 

故 박위남 할머님

 

2,015年 1 31, 일본군의 종군 강제 위안부 피해자인 故 박위남 할머님

도 향년 93세로 병원에서 지병으로 운명하셨었다고 한다.

 

여성부 등에 따르면,박위남 할머님은 16 ~ 17무렵 만주 군수공장에

가면 돈을 많이 벌 수 있다는 동네 사람의 말에 속위안소로

끌려가 7년간 위안부 생활을 강요당했었다 한다.

 

광복 후 귀국했었지만, 정신적 후유증 등으로 힘들게 사시다 겨우 작고 6개월 전

에서야 정부에 일본군의 종군 강제 위안부 피해자로 등록되셨었다.

 

그러나 유족들의 뜻에 따라, 장례는 외부에 별도로

알리지 않고 2일장으로 치렀었다고 한다.

그리고 고인의 유골, 망향의 동산에 안치됐었다 한.

 

 

권태임 할머님

 

2,00537, 일본군의 종군 강제 위안부 피해

자인 故 권태임 할머님도 별세하셨었다.

 

故 권태임 할머님은, 1,9141214日에 대구 계산동에서 출생

하신 것으로 추정되며, 효성초등학교를 다녀셨었다.

 

그리고 故 권태임 할머님은, 나가사끼 · 사이공 · 싱가폴을 경유해 인도

네시아의 수마트라 섬에서 성노예 생활을 강요받으셨었다.

   

일본군의 종군 강제 위안부 피해자인, 김순악 할머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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