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 시벨리우스(Sibelius) - 바이올린 협주곡 라단조, 작품 47
故 Jean Sibelius - Violin Concerto In D Minor, Op 47
바이올리니스트 : 장영주(Sarah Chang)
故 시벨리우스, 바이올린 협주곡 라단조
바로 이 곡은, 핀란드의 국민 작곡가로 명성을 누리던 故 요한 율리우스 크리스티안 시
벨리우스(Johan Julius Christian Sibelius · 1,865 ~ 1,957 · 스웨덴계
핀란드)가 작곡한 유일한 협주곡으로, 북유럽 특유의 서늘한 정취와
함께 낭만적 열정을 토로하는 오케스트라와 독주 바이올
린의 앙상블이 특징이며, 3악장으로 구성돼 있다.
이 故 시벨리우스의 바이올린 협주곡은, 주제를 사용한 발전 방법으
로 보았을 때에 유럽음악의 유산 중에 그의 이름을 새길 정
도의 훌륭한 심포닉 스타일의 곡이라고 할 수 있다.
아마도, 그의 조국의 광대함과 외로움 · 침울함과 기쁨이, 이 위
대한 핀란드 작곡가의 음악에 스며든것이 아닐지 … .
故 시벨리우스는, 그가 가지고 있는 영감을 사용해 소리로 형상화시켰
으며, 그느 단순히 묘사를 한 것이 아니라 창조해냈기 때문에,
이 음악은 바깥 세계에도 영향을 미치게 됐다고 본다.
그리고 이 곡은, 전체적으로 북구적 무드가 넘쳐 흐르는 가운
데, 바이올린의 기능이 맘껏 발휘되도록 쓰여 있다.
故 베토벤 이후의, 최고의 교향곡 작곡가라는 말을 들었을 정도인 故 시벨리우스
는, 훌륭한 교향곡 작곡가로서 오케스트라 부분을 아주 충실히 다뤘었다.
아니 교향곡적인 규모에 심포닉한 울림이 주는, 이러한 요소는 故
베토벤이나 故 브람스의 작품을 연상시키기까지 한다.
차가운 대기와, 짙은 안개 너머 널려있는 호수들 … .
그것들을 둘러싸고 있는 울창한 숲과, 초록빛 목장의 언덕 … .
백야의 여름밤과, 황량한 벌판의 겨울 풍경 … .
자연스럽게 민족색이 짙은 표현을 지닌 이 바이올린 협주곡은, 故 시벨리우스의 뿌리 깊
은 조국애와 함께, 이러한 자연의 시정과 우울함을 환상적으로 펼쳐낸다고 본다.
그리고 故 시벨리우스가, 이 ‘ 바이올린 협주곡 D단조 ’ 를 작곡한 것은 3
0代 후반의 일인데, 당시 그는 여러 모로 난관에 봉착해 있었다.
그 자신의 건강에 이상이 생겼고, 가족은 경제난에 시달렸으며, 그에
따라 창작을 위한 시간을 충분히 가질 수 없어 고심했었다.
무엇보다 ‘ 교향곡, 제 2번 ’ 의 대성공에 즈음해, 찾아든 불청
객인 귀의 통증은 4年 동안이나 그를 괴롭혔었다.
해서 그 동안의 그는, 혹시 故 베토벤처럼 청력을 상실할
지도 모른다는 불안과 공포에 시달렸었다 한다.
해서 어쩌면, 이 협주곡에 투영된 고뇌 어린 표정과 고통스런
몸부림은, 그 암울했던 시절의 반향인 지도 모른다.
그러다 이 협주곡은 1,903年 가을에 완성됐었고, 초연은 그 이듬해인
2月 헬싱키에서 故 시벨리우스 자신의 지휘로 이루어졌었다.
하지만 그 초연은, 독주자의 능력 부족 탓에 실패로 돌아갔었다.
그러나 이 곡은, 고금의 바이올린 협주곡들 중에서도 특히 바이올
린다운 기능과 미감을 잘 살린 수작으로 평가받고 있다.
한 때 바이올리니스트를 지망했던 故 시벨리우스였기에, 악기에 대한 확
실한 이해와 다각적인 고찰을 토대로 오직 바이올린을 통해서
만 의미를 가질 수 있는 음악을 탄생시켰던 거였었다.
제 1 악장 : 알레그로 모데라토 · D단조 · 2/2박자
이 악장은, 내용적으로 가장 심오할 뿐 아니라, 전곡의 절반
을 점유하는 장대한 규모로도 돋보이는 악장이다.
독주 바이올린과, 관현악이 유기적인 조화를 이루며 구축해
가는, 이 교향악적 악장의 구조는 상당히 독특하다.
전체의 구도는, 일종의 자유로운 소나타 형식으로 파악할 수 있는데, 특히 제시부 직
후에 놓인 대규모의 카덴차(독주 바이올린의 기량 과시를 위한 무반주 부분)
가, 마치 발전부와도 같은 역할을 감당하고 있는 모습이 이채롭다.
바이올린, 故 지네트 느뵈(Ginette Neveu · 1,919 ~ 1,949 · France)
악단,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Philharmonia Orchestra)
지휘, 발터 주스킨트(Walter Susskind)
아래는, 성공의 절정에서 비행기 추락사고로, 서른에 생을 마감한, 바이올린 연주자
였던 故 지네트 느뵈(Ginette Neveu)의 노트에 쓰여 있었다는 글귀다.
‘ 고독없이, 이룰 수 있는 위대한 일은 없다.
진정한 위대함은, 아마 눈부시게 빛나는 고독이리라.
사람들은, 죽음을 두려워하기에 소심해지곤 한다.
그러나 죽음은, 사람 안에 깃든 생명과 이상에 따라 받아들여야 할 숭고한 그 무엇이다.
지구에 머무는 우리의 이 슬픈 체류는, 사람들이 받아들이
기를 원하지 않는 커다란 고뇌의 시기일 뿐이다. ’
제 2 악장 : 아다지오 디 몰토 · B♭장조 · 4/4박자
이 악장은, 마치 ‘ 숲과 호수의 나라 ’ 인, 핀란드의 울창한 침엽수림을 펼쳐
보이는 듯한, 목관 파트의 앙상블로 시작되는 아다지오 악장이다.
전편에 걸쳐 면면히 흐르는 바이올린 독주의 서정적 선율선에는, 인간 영
혼의 진솔한 고백과 깊숙한 내면의 토로가 서려 있는 듯하다.
그리고 중간부의 클라이맥스에서는, 이제까지의 응어리를 일
거에 터트리는 듯한 카타르시스를 맛볼 수 있다.
제 3 악장 : 알레그로 마 논 트로포 · D장조 · 3/4박자
이 악장은, 기묘한 느낌으로 가득한 스케르초 풍의 춤곡 악장이다.
다소 묵직한 리듬 위에서, 사뭇 정열적인 춤곡이 현란하게 펼쳐진다.
故 베버나 · 故 멘델스존의 요정음악을 연상시키는, 독주 바이올린의 경묘
한 움직임 위로 북유럽의 환상이 아련히 떠오르는 느낌이랄까?
그러면서도, 북유럽적인 음산한 기운이 서려 있어,
신비롭고 · 마력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작곡가, 故 시벨리우스
바로 이 곡을 작곡한, 故 요한 율리우스 크리스티안 시벨리우스(Johan Ju
lius Christian Sibelius · 1,865 ~ 1,957 · 스웨덴계 핀란드
)는 1,865年, 핀란드의 타바스테후스에서 태어났었다.
그의 아버지는, 핀란드계 군의관이었고 · 어머니는 스웨덴계였는데, 2살
때 아버지가 돌아가셨어, 그는 어려운 가정환경에서 자랐었다.
그는, 피아노와 작곡을 배워 9살 때부터 작곡을 시작
했으나, 특별한 두각을 드러내진 못했었다.
그러나 그 이후, 그가 바이올린을 배우면서 작곡에 소질을 보이기 시
작했지만, 가족들의 반대로 음대 대신 법대에 입학했었다.
그리고 1,892年에 고국으로 돌아온 그는, 헬싱키 음악원의 교수로 취임하고 · 결혼도 하게 됐었다.
같은 해, 쿨레르보 교향곡 3을 완성 · 초연해 인정을 받기 시작한 후의 그는, 연달아 교향시인
‘ 엔 사가(전설) · 카렐리아 모음곡 · 네 개의 전설 ’ 을 발표 · 명성을 쌓아갔고 1,8
99年, 그의 작품 中 가장 유명한 교향시인 ‘ 핀란디아 ’ 를 발표하게 됐었다.
핀란디아의 성공으로 그는, 국민 작곡가의 자리에 오
르게 돼, 국가로부터 연금도 지급받게 됐었다.
그리하여 그의 생활이 안정되자, 교수직에서 물러나 창작활동에만 전념해 교
향곡 1 · 2번의 완성으로, 자신만의 음악세계를 만들기 시작했었다.
그러나 그는 갑작스레 귓병을 앓았고, 그 귓병은 4年간이나 지속됐었다.
그리고 1,904年의 그는, 헬싱키 교외인 얘르벤패로 집을 옮긴 후, 저택의 이름
을 그의 아내인 ‘ 아이노(Aino) ’ 의 이름을 따 ‘ 아이놀라 ’ 라 했었다.
그 이후의 그는, 핀란드 국민들의 존경을 한 몸에 받으면서 꾸준히 교향
곡 3 · 4번과 현악 사중주 D단조 등을 작곡하곤, 영국 · 미국으
로 연주여행을 다니며, 전세계로 이름을 알렸었다.
그리고 1,915年, 그의 50세 생일을 맞아 핀란드 전국의 축
하를 받았고, 연금도 50,000마르카로 증액됐었다.
또한 교향곡 5번도 완성돼, 탄생 축하 공연에서 초연됐었다.
그러나 그는, 기존 교향곡 형식을 벗어나 새로운 형식을
지향하였고, 5번 교향곡도 개정을 거듭했었다.
한편 교향곡 6 · 7번 역시, 구상 단계에 접어들고 있었다.
그러다 1,917年, 러시아 혁명으로 핀란드가 독립을 하게 되고, 이 때
의 혼란 속에서 그는 잠시 창작을 중단할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얼마 안가 생활이 안정돼, 다시 창작 활동을 시작해
1,923年 교향곡 6 · 7번을 잇달아 완성했었다.
특히 7번은, 기존의 교향곡 형식을 탈피해 故 시벨리우스만의
형식으로, 그의 모든 것을 쏟아부은 걸작으로 불려진다.
그리고 1,925年, 그의 나이 60세를 기념해 연금이 다시 증액됐
고, 국민들의 모금으로도 27만 마르카가 모아졌었다.
그 뿐만 아니라 훈장도 받았고, 전 세계로부터 축하 메세지도 받았었다.
그리고 1,930年, 그의 나이 65세에 마지막 교향시인 ‘ 타피올라
’ 를 끝으로, 그는 이후 27年간의 창작활동을 중단했었다.
그러나 30年代 중반까지도, 故 시벨리우스가 교향곡 8
번을 만들려고 시도했다는 증거가 있긴 하다.
그 이후에도 그의 인기는 식지 않아, 70세 · 80세 생일에도 큰 환영을 받았으
며 1,957年, 그의 자택에서 92세의 장수를 누리다 숨을 거두었었다.
그의 장례는 국장으로 치뤄졌으며, 성대한 장례식
을 치룬 후 그의 자택 앞뜰에 묻혔었다.
지휘, 다니엘 바렌보임(Daniel Barenboim · 1,942 ~ 아르헨티나의 부에노스 아이레스)
바이올린, 막심 벤게로프(Maxim Vengerov · 1,974 ~ 러시아)
악단, 시카고 심포니(Chicago Symphony Orchestra)
악단, 노르웨이의 오슬로 필하모닉 오케스트라(Oslo Filharmoniske Orkester)
바이올린, 조슈아 벨(Joshua Bell · 1,967 ~ 미국의 인디애나 주)
지휘, 바실리 페트렌코(Vasily Petrenk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