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 본 윌리암스(Williams) - 푸른 옷소매 주제에 의한 환상곡
故 Ralph Vaughan Williams - Fantasia on Greensleeves
지휘 : 제임스 저드(James Judd · 1,949 ~ 영국)
故 본 윌리암스, 푸른 옷소매 주제에 의한 환상곡
바로 이 푸른 옷소매 환상곡(Fantasia on Green sleeves)은, 영국의 국민주의 작
곡가인 故 랄프 본 윌리엄스(Ralph Vaughan Williams · 1,872 ~ 1,95
8 · 영국)의 작품으로, 옛날부터 영국에서 널리 불려진 민요인 ‘ 그
린 슬리브스 ’ 의 주제를 사용한 관현악을 위한 환상이다.
푸른 옷소매의 선율은, 16세기 말경 푸른소매의 옷을 입은 바람둥이 여인이 있었는데
‘ 그린 슬리브 ’ 라는 이름으로 불려지게 되었고, 그것이 노래로 불려지게 돼 지
금의 민요로 되었다고 하며, 엘리자베드 시대에 금광을 찾아 다니던 사람
들 사이에 생겨났고, 당시엔 무곡 등으로 사용됐었다고 한다.
故 본 윌리엄즈는, 故 윌리엄 셰익스피어(Willam Shakespeare · 1,564 ~ 1,61
6 · 영국)의 희곡 윈저인 ‘ 유쾌한 아낙네들 ’ 을 바탕으로 한, 전 4막 오페라
인 ‘ 사랑의 존 ’ 의 제 3막에 이 선율을 사용하였고, 이것을 관현악
으로 편곡한 것이 바로 이 ‘ 푸른 옷소매 ’ 의 환상곡이다.
초연(1,934年) 이래, 아련한 향수를 느끼게 하는 선율미로 인해
, 합창 및 독창 등 다양한 연주로 편곡돼 사랑을 받고 있다.
영화인 ‘ 서부 개척사 ’ 의 영화음악으로 사용되기도 했던, 이 ‘ 푸른
옷소매 ’ 는 클래식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도 귀에 익을 뿐만
아니라, 전원풍의 목가적인 분위기가 나는 곡이다.
작곡가, 故 본 윌리암스
故 랄프 본 윌리엄스(Ralph Vaughan Williams · 1,872 ~ 1,958)는, 영국의 작곡가이다.
그는, 낭만주의 작곡가로서 故 홀스트와 함께 故 엘가의 대를 이었고, 19세기 후반과 20
세기 전반의 중요한 영국의 작곡가이자 · 교사이며, 저술가이자 · 지휘자였었다.
그는, 같은 시기의 영국 작곡가 중 가장 중요한 인물로서 20
세기 영국 음악의 부흥 크게 이바지한 사람이다.
또한 그는, 낭만주의 음악의 마지막 작곡가라고도 할 수 있다.
故 본 윌리엄스는 1,872年 10月 12日, 영국 서남부 글로스터
셔 주에서 태어났으나, 그는 런던 사람임을 자처했었다.
그가 3세 나던 해인 1,875年에, 아버지인 故 아서 본 윌리엄스(Arthur Vaughan William
s)가 세상을 떠나자, 그는 어머니의 가족들과 함께 생활하며 그들의 손에 양육됐었다.
그의 아버지 가계는 탁월한 법률가 집안이었으며, 어머니의 가계는 영국 도자기 산업의
아버지인 故 조지아 웨지우드와 진화론을 주창했던 故 찰스 로버트 다윈(Cha
rles Robert Darwin · 1,809 ~ 1,882 · 영국)과 연결되는 등, 故
본 윌리엄스는 상당히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났었던 것이다.
그는 6세 때, 일찍부터 음악에 흥미를 보여 이모로부터 처음
으로 피아노와 통주저음 및 화성법을 배웠었다.
이 무렵의 그는, 로팅던(Rottingdean)에 있는 예비학교에 다니면서 피아
노 뿐 아니라 7세 때 바이올린과 오르간에도 친숙해지게 되었다.
그 후 14세 때의 그는, 차터하우스(Charterhouse) 공립학교에 들어가 학교 관현악
단에서 비올라를 연주했으며, 다시 런던의 왕립음악대학(RCM)에서 2年, 그
후 케임프리지의 트리니티 대학에서 3年간 수학해 학위를 받았었다.
그는, 그 후 다시 왕립음악대학에 가서 몇 년을 더 수학했었다.
그동안 그는, 작곡을 故 페리(Parry) · 故 헨리 우드(Sir Henry J - oseph Wood ·
1,869 ~ 1,944 · 영국) 그리고 故 스탠퍼드(Sir Charles Villiers Stanfo
rd · 1,852 ~ 1,924 · 아일랜드 태생의 영국) 등에게서 배웠었다.
故 본 윌리엄스는, 학창 시절부터 작곡에 점점 더 열의를 보였으나, 진보가 더딘 편이라서 그
를 가르쳤던 故 우드는 故 본 윌리엄스가 작곡가가 되리라고는 믿지도 않았었다 한다.
심지어 그의 이종사촌인 故 웬 레이브라트(Gwen Raverat)는, 그녀의 케임브리지 시절
을 회상하면서 ‘ 그 어리석은 젊은 친구, 랄프 본 윌리엄스는 그토록 희망이 없
으리만치 못하면서도, 음악을 계속해나가려고 했다 ’ 라고 썼었다.
나중에 故 본 윌리엄스는, 자신도 ‘ 아마추어적 테그닉 ’ 밖에 가지지 못했음을 시인한 바 있다.
그러나 그가 젊은 시절에, 그렇게 암중모색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은, 그
의 능력의 부족 때문이 아니라, 영국의 음악 풍토에 대한 불만
과 그 자신의 길을 빨리 찾지 못했던 까닭이다.
남성 아카펠라, 킹스 싱어스
악단, 뉴질랜드 교향악단(New Zealand Symphony Orchestra)
지휘, 제임스 저드(James Judd · 1,949 ~ 영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