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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 비탈리(Vitali) - 샤콘느, 사단조

Classic Music

by tl3659\0\0 2019. 6. 18. 0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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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 비탈리(T. A. Vitali) - 샤콘느, 사단조

Tommaso Antonio Vitali - Chaconne in G minor

바이올리니스트 : 지노 프란체스카티




작곡가, 故 비탈리


이탈리아의 작곡가이자 바이올리니스트인, 故 토마소 안토니오 비탈리(Tommas

o Antonio Vitali · 1,663 ~ 1,745)는, 아버지 · 할아버지가 모두 명성

은 현악기 연주자였던 유서 깊은 음악 가문에서 태어났었다.


그의 아버지인, 故 조바니 바티스타 비탈리(Giovanni Battista Vitali · 1,632 ~ 1,6

92)는 모데나(Modena)의 프란체스코 공작의 궁정악단에서 작곡가이자 첼리스

· 바올리니스트로 활동했었고, 故 토마스 안토니오 비탈리 역시 부친

의 뒤를 이어 12세부터 궁정악단의 바이올린 연주자가 됐었다.


궁정악단에서, 故 Antonio Maria Pa - cchioni로부터 작곡을 배운

그는 1,693 Trio Sonata 모음곡집을 첫 출판한 이후, 작곡

에 힘을 기울여 작곡가로서도 명성을 얻었었다.


그는, 평생을 모데나의 궁정악단에서 보냈으며, 장년에

는 악장으로 궁정 오케스트라를 이끌었었다.


그의 작품 중 가장 유명한 것은, 흔히 故 비탈리의 샤콘느라 불리는 ‘ 바이올린과 통주저음을 위한 샤

G단조(Chaconne for Violin and basso continuo in G minor로 1,867年 

바이올리니스트였던 故 페르디난드 다비드(Ferdinand David · 1,810  ~ 1,873)

바이과 피아노를 위한 연주곡집을 출할 때 이 실어 개한 이,

이탈리아의 작곡가였던 故 오토리 레스피기(Ottorino Respig

hi)가 오르간 반주로 편곡하면서 잘 알려지게 됐었다.


故 비탈리, 샤콘느


샤콘느 (Chaconne)는, 바로크 시대의 변주 형식으로 16세기 라틴 아메리카에

러온 무곡을 바탕으로, 17세기 스페인에서 유행한 느린 템포의 진행을 기본

로 하는 무곡으로통상 3/4박자이고 조성은 장조이며, 이를

기본으로 음형을 변주곡 형태로 연주하는 곡이다.


샤콘느는, 스페인에서 발생해 이탈리아 · 프랑스에 전해져 기악곡으로 발달했고,

사 칼리아와 함께 바로크 시대의 대표적 기악 변주곡으로 발전됐었다.

그러나 18세기에는, 샤콘느와 파사 칼리아의 구별이 없어졌다.


故 바흐의 샤콘느는, 그의 ‘ 무반주 바이올린 소나타와 파르

’ 에서 4파르티 BWV 1,004의 마지막 곡이다.


조성은 D단조이고 가장 중요한 것은 무반주, 즉 피아노와 오케스트라의 반

주없이 네줄짜리 바이올린 하나만 가지고 연주해야 하기 때문에 

러개의 성부를 동시에 연주하려면 상당한 기교가 요구된다.


들어보면, 마치 2 ~ 3 대의 바이올린이 함께 연주하는 것처럼 들린다.

후에 이탈리아의 피아니스트였던, 故 부조니가 이 곡을 피아노 용으

편곡했었기 때문에, 피아노로도 가끔 연주되기도 한다.


반면,비탈리의 샤콘느는 조성이 G단조이고, 바이올린 독주에 오케스트라나 오르

· 피아노 등으로 반주를 할 수 있게 후대의 많은 음악가들이 편곡을 했었다.


故 바흐의 샤콘느는, 남성적이며 ‘ 영원으로의 끝없는 비상 이라는

을 가지고 있는 반면, 故 탈리의 샤콘느는 여성적

‘ 지상에서, 제일 슬픈 곡 ’ 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바이올리니스트, 故 지노 프란체스카티


故 지노 프란체스카티(Zino Francescatti · 1,902 ~ 1,991)는, 프랑스에서 태어나 프랑

스에서 바이올린을 배웠지만, 연주 활동의 전성기는 미국에서 보낸 연주가였었다.


그는 LP 초기부터 활약한 연주가로, LP 시절 故 야샤 하이페츠(Jascha Heifetz · 1,901 ~

1,987) · 故 아이작 스턴(Isaac Stern · 1,920 ~ 2,001) · 故 나탄 밀스타인(Nath

aMilstein · 1,904 ~ 1,992)함께 미국 바이올린계를 이끈 인물이었다.


그는 1,902, 프랑스의 마르세이유(Marseilles)에서 태어났었다.

그의 아버지는, 이탈리아인으로 故 파가니니(N. Paganini · 1,782 ~ 1,840)에게 사사한 故 시

보리(C. Sivori · 1,815 ~ 1,894)의 제자로서 마르세이유 가극장의 바이올린 주자였는

, 프랑스 시민권을 얻어 역시 바이올리니스트였던 프랑스 여인과 결혼했었다.


계보상으로 보면, 故 프란체스카티는 故 파가니니의 손자 제자뻘이 된다.

그는 3살 때부터, 부친에게서 바이올린을 배워 5세 때 공개석상에서 연주했었다.

10세 때의 그는, 오케스트라와 협연하여 故 베토벤의 ‘ 바이올린 협주곡 ’ 을 연주했었다.


그 후의 그는, 파리로 가서 파리 고등 음악학교에 입학해 당대의 명수였던 故 자크 티보(Jacques

Thibaud · 1,880 ~ 1,953)를 사사했고, 22세의 나이로 故 티보의 오디션에 합격했었다.

그는, 프랑스의 바이올리니스트로서 프랑스 음악원에 다니지 않은 오직 하나뿐인 인물이었다.


1,939의 그는, 미국으로 건너가 뉴욕 필하모닉과 故 파가니니(Niccolò Paganini · 1,

782 1,840)의 ‘ 바이올린 협주곡 제 1번 ’ 을 연주하여 큰 성공을 거두었었다.

그 때부터 故 프란체스카티는, 미국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고 2차 세계대전 후에

미국에 정착해 뉴욕을 중심으로 구미 각국에서 연주활동을 했었다.


그는 故 파가니니의 손자 제자뻘이 되는데, 그래서인지

故 파가니니의 스페셜 리스트로 잘 알려져 있다.


해서 그는, 감미로운 음색으로 그 어떤 난곡(難曲)도 더듬지 않는다.

스케일이 크지는 않지만, 무리가 없는 아주 깔끔한 음색을 지니고 있다.

해서 그는, 엘러건트(Elegant)한 스타일의 바이올리니스트였었다.


故 프란체스카티와, 피아니스트였던 故 로베르 카자드쉬(Robert Casadesus · 1,

899 ~ 1,972)의 이중주는 일세를 풍미한 콤비로 알려졌으며, 故 카자드쉬

(Robert Casadesus · 1,899 ~ 1,972)와 협연한 故 베토벤의

이올린 소나타 제 5 · 9번 ’ 등은 명연주로 평가받는다.


특히, 故 아서 발삼(Artur Balsam)과 故 막스 란너(Max Lanner)의 피아노 반주로 함께 한 그의

, 故 부르너 발터(Bruno Walter · 1,876 ~ 1,962)가 지휘한 콜럼비아 오케스트라의 故 브람스

의 ‘ 바이올린과 첼로을 위한 이중협주곡 ’ 과 전설적인 첼리니트인 故 피에푸르니에(P

ierre Fournier · 1,906 ~ 1,986)와 함께 한 음반 리고 악 매니아들로부터 최

고의 인기 음반이었던, 바로 이 탈리의 샤콘느 ’ 와 故 파가니니의 ‘ I

Palpiti ’ 와 故 주세페 타르티(Giuseppe Tartini · 1,692 ~  1,7

70)의 ‘ 바이올린 협주곡 ’ 은 아직도 심금을 울려주고 있다.


그의 음반은, 콜럼비아 레코드사(CBS)에서 출반했으며,

기는 1,727산 ‘ 스트라디바리우스 ’ 를 애용했었다.

그러다 1,991의 그는, 프랑스의 라 시오타(La Ciotat)에서 89세에 세상을 떠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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