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 슈트라우스(Strauss) -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故 Richard Strauss - Also Sprach Zarathustra, Op 30
지휘 : 구스타보 두다멜(Gustavo Dudamel)
작곡가, 故 슈트라우스
故 리하르트 슈트라우스(Richard Georg Strauss · 1,864 ~ 1,949)는, 독일 뮌헨에서 태어났었다.
그의 아버지는, 뮌헨 궁정 교향악단의 수석 호른 주자였었다.
그는, 4살 때부터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시작했으며, 11살 때부터 궁정 악장이었던 故 프리
드리히 빌헬름 마이어로부터 화성학 · 대위법 · 형식론 · 관현악법 등을 배웠었다.
故 슈트라우스의 아버지는, 매우 보수적인 음악관을 가진 사람이었다.
당시 젊은 작곡가들 사이에선, 故 리스트나 故 바그너의 음악이 널리 인기를 끌었지만,
그의 아버지는 故 모짜르트 · 故 베토벤의 음악만이 음악이라고 생각했었다.
해서 그의 아버지는, 뛰어난 호른 주자로 ‘ 트리스탄과 이졸데 ’ 를 비롯한
故 바그너 음악극의 초연에 직접 참여했음에도, 故 바그너 음악
을 반대하는 자신의 신조를 바꾸진 않았었다고 한다.
故 슈트라우스는 16살까지, 그런 아버지의 엄격한 비호를 받으
며 고전 음악만이 유일한 음악이라고 생각하며 자랐었다.
그러다 1,882年 7月, 故 슈트라우스는 아버지를 따라 바이로이트로 가서
故 바그너의 ‘ 파르지팔 ’ 초연을 듣곤 신선한 충격을 받았었다.
해서 그 이후의 그는, 故 바그너의 음악극에 대해 집중적으
로 연구하며 故 바그너의 열렬한 신봉자가 됐었다.
1,885年부터의 故 슈트라우스는, 마이닝엔 궁정 악단의 지휘자였던 故 한스 폰 뷜
로의 보조 지휘자로 일하며, 지휘자에게 필요한 지식과 기술을 습득했었다.
그리고 이 악단의 바이올리니스트였던 故 리터로부터, 故 리스트와
故 바그너의 음악이 갖는 시대적 의미에 대해 들었었다.
故 리터는, 소나타 형식은 故 베토벤에 의해 극한까지 확장돼 더 이상 나아갈
길을 잃었기 때문에, 이제는 교향시 같은 양식으로 방향을 돌려야 한
다고 주장했으며, 故 슈트라우스는 이에 전적으로 동의했었다.
그의 교향시인 ‘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 는 1,896年, 그가 독일의 실존주의 철학자였
던 故 니체의 ‘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 를 읽은 느낌을 음악으로 옮긴 것이다.
헌데 이 곡은, 매우 강렬한 인상의 ‘ 서주 ’ 로 시작한다.
팀파니와 트럼펫이 태초의 어두움을 뚫고, 하늘 높이 떠오르는 초인의 모습을 보여준다.
제 1곡인, 저 세상 사람에 대하여에서 ‘ 저 세상 사람 ’ 이란 우리 인류에
게 부과된 문제를, 종교적으로 해결하려는 사람들을 말한다.
제 2곡인 ‘ 시와 음악이라는, 위대한 동경에 대하여 ’ 에서는, 첼
로와 파곳이 동경 어린 선율을 아름답게 연주한다.
제 3곡인 ‘ 행복과 불행에 대하여 ’ 는, 사색적이고 명상적인 멜로디를, 제 4곡인
‘ 무덤의 노래 ’ 는 죽어서 돌아오지 않는 청춘에 대한 회상을 노래한다.
제 5곡인 ‘ 학문에 대하여 ’ 에서는, 제목에 충실하기 위해 매
우 수학적이고 · 계산적인 작곡 기법이 사용됐었다.
제 6곡인 ‘ 평온한 자 ’ 에서는, 젊음의 기운이 완연하게 드러나며, 제 7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