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 프란시스코 타레가(F. Tarrega) - 알람브라 궁전의 추억
故 Francisco Tarrega - Recuerdos de la Alhambra
기타 연주 : 줄리안 브림(Julian Bream)
부제 : 기도
알람브라 궁전
알람브라 궁전은, 스페인의 남부인 안달루시아 지방의 그라나다를 한 눈으
로 바라보는 구릉 위에 세운 주위 3.5 km의 이슬람 시대의 성보
(城堡) 가운데 130 × 182 Km의 좁은 부지에 세워졌었다.
알람브라 궁전은, 에스파냐의 마지막 이슬람 왕조인 나스르 왕조의 무하마드 1세
인 故 알 갈리브가 13세기 후반에 창립하기 시작해 역대의 증축과 개수를
거쳐 완성됐으며, 현재 이 궁전의 대부분은 14세기 때의 것이다.
알람브라 궁전은, 대리석 · 타일 · 채색 옻칠로 이루어진 아름다운 장식의
방이 2개의 커다란 파티오(중정 · 中庭)를 중심으로 구성돼 있다.
하나는 유수프 1세(재위 1331 ~ 59)가 건조한 것인데, 미루트(샘 · 泉)의 파티오 1곽으로
사각형의 연못을 따라 한 쪽은 공식적인 알현 장소인 대사(大使)의 집으로 연결된다.
즉 스페인의 여왕이었던 故 이사벨라는, 그라나다에 있던 이슬람 나스르 왕
조를 몰아내고 700年 만에 스페인을 통일된 국가로 만들었었다.
카톨릭 교도였던 故 이사벨라 여왕은, 강력한 왕권을 수립하며 콜롬버스
의 탐험을 후원해 아메리카 대륙의 넓은 땅을 식민지로 삼았었다.
한 때 스페인의 무적함대는, 대서양을 주름잡으며 유럽의 강대국으로 급부상했었다.
해서 그라나다에서 이슬람 세력이 물러난 뒤, 한동안 알
람브라 궁전은 폐허상태로 내버려져 있었다.
그러나 1,832年, 미국의 외교관이었던 故 워싱턴 어빙이 무관심속에 방치되다
시피한 알람브라 궁전에 머물면서 ‘ 알람브라 이야기 ’ 란 책을 썼었다.
이 때부터, 알람브라 궁전이 스페인 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알려지게 됐었다.
그리고 스페인 정부에 의한, 알람브라 궁전 복원사업이 추진됐었다.
알람브라 궁전은, 이슬람 양식으로 지어진 절제된 아름다움과 카톨릭 문화속의
이슬람 문화를 상징하는 건축물로, 세상 사람들의 관심을 모았었다.
허나 이젠, 한 때 알람브라 궁전의 주인이었던 이슬람 왕조가 누렸던 무소불위
의 권력도 덧없이 사라져버려, 주인없는 궁전만이 남아서 지난 날의 화
려했던 영광의 자취를 더듬으며 추억하게 만들고 있을 뿐이다.
그리고 현대 기타의 아버지라 일컬어지는, 스페인 출신의 故 프란시스코
타레가가 ‘ 알람브라 궁전의 추억 ’ 을 작곡해, 기타의 선율이 애
절함을 자아내 듣는 이의 심금을 더욱 더 울릴 뿐이다.
기타 연주가, 故 프란시스코 타레가
스페인의 기타 연주자이자 이 곡의 작곡자인, 故 프란시스코 타레가(Francisco Tarre
ga · 1,852 ~ 1,909)는, 카스티용 근교 출생으로 근대 기타 연주법의 창시자
로 일컬어질 만큼 뛰어난 음악성을 보였으나 1,906年 사망하기 3年
전에 오른팔이 마비돼, 그 후 연주 생활을 계속하지 못하
자 이를 비관하며 슬픈 말년을 보냈었다고 한다.
작곡에서도 뛰어난 솜씨를 보여, 알람브라 궁전의 추억을 비롯한 ‘
아침의 노래 ’ 등 많은 기타 독주곡과 연습곡 등을 남겼었다.
또한 故 J.S. 바흐와 故 베토벤 등의, 고전을 기타용으로 편곡한 공적도 높이 평가받고 있다.
그리고 故 타레가는, 제자의 부인이었던 ‘ 故 콘차로 ’ 와의 사랑이 이뤄지질 않은, 그
실연의 아픔을 안은 채 여행을 하던 중에 알람브라 궁전을 찾게 됐었다고 한다.
헌데 그는, 창 밖에 떠 있는 달을 보며 우수에 차, 불
후의 명곡인 이 노래를 지었었다고 한다.
기타 연주가, 줄리안 브림
줄리안 브림(Julian Bream)은 1,933年 7月 15日, 런던 태생의 기타리스트이다.
특히, 르네상스시대 류트 음악에 꾸준한 관심을 보여온 그는, 기
타와 류트의 양면에 걸쳐 대가의 솜씨를 보여주고 있다.
어려서는, 그의 상업 미술가이자 · 아마추어 재즈 기타리스트인 아버지에게 배웠
고 11세 때부턴 러시아의 기타리스트였던 故 알렉시스 체스나코프로부
터 레슨을 받기 시작해, 12세 때에는 런던 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주최하는 연주 무대에 참가할 정도로 기량이 향상됐었다.
그 뒤의 그는, 기타리스트 협회장이었던 故 페롯에게 러시아
식 겸 이탈리아식 기타 연주법을 사사받게 됐었다.
1,947年, 故 세고비아는 런던 공연을 위해 영국에 와 있었고, 브림은 故 페롯의 소개로 당대
스페인 최고의 기타 연주자였던 故 세고비아(Andrés Segovia · 1,893 ~ 1,987)
를 만나게 됐는데, 故 세고비아는 그의 연주를 듣곤 즉석에서 그에게 적극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