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 쇼팽(Chopin) - 발라드 제 1번 사단조, 작품번호 23
故 Chopin, Ballade No 1 In G minor Op 23
영화, 피아니스트의 삽입곡
故 쇼팽, 발라드 1번
폴란드 출신인 故 쇼팽은, 총 4개의 발라드를 작곡했는데, 폴란드의 민족시
인인 故 아담 미키에비치의 시에서 영감을 받아 작곡했었다고 한다.
특히, 그가 젊은 시절에 작곡했던 발라드 1번은 故 슈만이 ‘ 그의 작품들 중,
가장 거칠고 또 가장 독창성이 풍부한 작품 ’ 이라고 평가한 바 있다.
문학작품의 내용을 바탕으로, 이를 피아노를 위한 발라드로 재현했다는 것은, 당시
로서는 이해하기 어려울 정도로 혁신적이고 · 모험적인 작업이었었다고 한다.
또한 그 당시의 발라드 장르는, 서정적이고 · 잔잔한 곡이 아니라 이야기
가 담겨 있는 자유로운 형식의 서사적인 음악을 뜻한다고 한다.
그리고 故 쇼팽의 발라드 1번은, 클라이막스가 광폭하다고 할
정도로 불같은 정열이 펼쳐지며 인상적으로 끝난다.
그리고 또 이 곡은, 로만 폴란스키 감독의 실화를 바탕
으로 한 영화 ‘ 피아니스트 ’ 에서도 삽입됐었다.
2차 세계대전의 폭격으로 폐허가 된 건물에, 숨어 지내던 주인공인 스필만이
독일 장교에게 발각돼 자신의 죽음을 예상하곤, 제 인생의 마지막 순간
일지도 모른다는 심정으로 혼신을 다해, 바로 이 곡을 연주한다.
헌데, 그런 스필만의 연주 모습에 감동을 받은 독
일 장교는 그의 도피를 도와주게 된다.
그리고 그 영화 피이니스트에서, 폴란드 출신인 故 쇼팽의 이 곡을 썼던 이
유는, 아마 역시 폴란드 출신인 ‘ 로만 폴란스키 감독 ’ 자국의 억압
된 슬픔을 표현하는 덴, 최고의 적절함이 아니었을까 싶다.
발라드 · Ballades란?
발라드는 14 ~ 15세기 경의 춤곡으로서, 18세기에 이르러 일종의 서
사적 성격을 지닌 시에 이런 이름을 붙였었는데, 주로 중세의
역사상 인물이나 가공의 이야기 또는 낭만적인 이야
기를 가지고 가곡의 형식을 취하고 있었다.
이것이 독창 · 합창 등을 위해 작곡되고, 다시 순
수한 기악곡에도 이름을 붙이게 됐었다.
하지만, 이는 고전적인 형식이며 우리가 잘 알고 있는 형식은 19세기의 성격적
소품으로 3부 형식의 ‘ 발라데 또는 발라드 ’ 라는 명칭을 사용하고 있다.
故 쇼팽의 발라드는, 폴란드의 애국적 시인인 故 미키에비치의 시에
서 암시를 받아 썼다고 하는데, 시의 표제나 주제에 대하여 구
속 없이 자유롭게 썼다고 하며, 인생의 격정의 순간을
드라마틱한 터치로 표현해 내는 피아노 곡이다.
특히 故 쇼팽의 발라드는, 그가 창조한 기악 형식으로 피아
노로 펼치는 이야기 시는 전설적이기도 하고 · 수상
이기도 하며 또 꿈의 환상이기도 했었다.
피아니스트, 크리스티안 치메르만
그는, 이 시대를 대표하는 피아니스트 중 한 명으로 인정받고 있다.
그는 1,956年 12月 5日, 폴란드 남부의 자브제에서 태어났었다.
그의 아버지는 피아니스트로, 낮에는 공장의 설계 부서에 근무하면
서 밤에는 바에서 피아노를 연주하는 생활을 하고 있었다.
헌데 지메르만은, 어린 시절 집에 놓여 있던 그랜드 피아노의 뚜껑을 열
어 담요를 씌워 인디언 천막 놀이를 하고는 했다고 말했었다.
그러면서 그는 5살 때, 아버지에게서 피아노를 배우고 7세부턴
안제이 야신스키(Andrzej Jasiński)에게 사사했었다.
그러다 그는, 1,973年의 베토벤 국제 음악 콩쿠르에서 우승한 후 1,97
5年 제 9회 쇼팽 국제 피아노 콩쿠르에서도 최연소(18세)로 우
승한 이후에도 꾸준히 경력을 거듭해 현재에 이르고 있다.
하지만 학생 당시의 그는, 폴란드의 물자 조달이 곤란해 피아노 부품
의 제작 · 수리를 스스로 처음부터 수작업으로 해야만 했었다.
그러면서 치메르만은, 피아노의 구조 · 소재에 대한 지식이 축적됐었다.
스위스의 바젤에 있는 그의 집에는, 자신이 직접 제작한 피
아노나 그 건반 액션이 여러 대 놓여 있다고 한다.
아니 1,981年 12月 31日 당시, 폴란드 수상이었던 故 보이치에흐 야
루 젤스키가 계엄령을 발표한 것을 계기로, 그는 폴란드를 떠
나 스위스에서 살 것으로 결정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리하여 1,996年의 그는, 스위스 바젤 음악원의 교수직에 종사해 후진 양성에도 임하고 있다.
그리고 1,999年의 그는, 故 쇼팽 사후의 150 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폴란드의
젊은 음악가들을 오디션으로 모아 폴란드 축제 관현악단을 설립하곤, 故
쇼팽의 피아노 협주곡 공연을 폴란드와 미국 등에서 가졌었다.
그리고 또 그는, 故 쇼팽 · 故 베토벤 · 故 브람스 · 故 드뷔시 · 故 라벨 · 故 슈
베르트 · 故 라흐마니노프 등 다양한 레퍼토리를 가지고 있기도 하다.
또한, 故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 · 故 레너드 번스타인 · 故 카를로 마리아 줄리니 · 오자와 세이
지 · 故 피에르 불레즈 · 사이먼 래틀 등 세계의 명 지휘자들과 공연을 거듭하고 있다.
헌데 그는, 악기들을 자신의 통제하에 두는 것을 철저히 하고, 공연 프로그램으로 연
주하는 구체적인 레퍼토리에 맞게 각각 소유한 피아노를 신중하게 조정하고
, 그것을 세계의 홀에 운반 · 반입해 연주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한 그는, 공연에는 피아노 조율사와 동행하고 · 공동으로 피아노를 각 회장의 홀 특
성에 맞게 조율하는 등 소리의 울림의 컨트롤에 탁월한 열정을 기울이고 있다.
그것 뿐만 아니라 그는, 레코딩 기술과 음향에 대한 조예도
깊고, 자신의 스튜디오를 직접 설계하기도 했었다.
그는, 연주에 대한 완벽한 자세에서 · 리사이틀에서 · 연주까
지 10年의 세월을 들여 곡을 준비한다고 한다.
해서인지 그는 2,005年, 프랑스의 레지옹 도
뇌르 훈장(슈발리에 장)을 수상했었다.
Ballade No 1 in G minor Op 23
Ballade No 1 in G minor Op 23
피아니스트, 故 아르투르 루빈스타인(Arthur Rubinstein)
Ballade No 2 in F major Op 38
발라드 제 2번의 원형은, 1,836年에 작곡된 것으로 여겨진다.
그리고 이 곡은, 러시아의 전설에 나오는 이야기 시로 된 작품이다.
그것을 바탕으로 1,839年 1月, 마조르카 섬에 머무르는 동
안 다시 손을 가해 오늘날과 같은 곡이 탄생됐다.
헌데 이 곡은, 故 슈만에게 헌정됐다.
곡의 구성은, A - B - A - B 코다로 돼 있다.
Ballade No 3 in Ab major Op 47
이 곡은 1,840年부터 1,841年의 여름에 걸쳐, 故 미키에비치의
시 ‘ 물의 요정 ’ 에서 영감을 얻어 작곡됐었다고 한다.
프랑스 풍의, 세련되고 · 화려한 귀족적 정취를 느끼게 하여,
당시 프랑스 귀족 사회에서 많은 인기를 얻었었다.
이 곡은, 제 1번과 함께 대중적으로 가장 사랑받는 곡이다.
나머지 3곡보다, 훨씬 경쾌하고 · 화려하고 · 평안한 기분이 충
만한 곡으로, 파리 사교계의 응접실을 떠올리게 한다.
Ballade No 4 in F minor Op 52
피아니스트, 크리스티안 치메르만(Krystian Zimerm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