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 쇼팽(Chopin) - 피아노 협주곡 1번 마단조, 작품번호 11
故 Chopin, Piano Concerto No 1 In E minor Op 11
피아노 : 머레이 페라이어(Murray Perahia)
故 쇼팽, 피아노 협주곡 1번
스무 살의 故 쇼팽이 살던 폴란드 바르샤바는, 독립
을 위한 민중 봉기가 일어나기 직전이었다.
혼란스러움을 벗어나고자 조국을 떠나기로 결심한 그는, 가족과 마지막 휴가를
보낸 뒤 1,830年 10月 11日 폴란드에서 마지막 연주회를 열었고, 바로
그 자리에서 이 ‘ 피아노 협주곡 1번 E 단조 ’ 를 초연했었다.
헌데 환송식이 열린 자리에서, 폴란드의 흙이 담긴 은잔이 그에게 수여됐었다.
11月 2日, 故 쇼팽은 “ 죽기 위해 떠나는 것 같은 기분이다 ” 라는 느낌을 뒤로
한 채 다시는 밟아보지 못할 폴란드의 땅에게 영원한 작별을 고했었다.
그리고 1,829年 8月, 빈에서 성공적인 연주회를 마치고 바르샤바로 돌
아온 故 쇼팽은, 바로 이 피아노 협주곡을 작곡하기 시작했었다.
아니 바르샤바 음악원 졸업과 빈에서의 성공은, 故 쇼팽이 본격적
으로 피아니스트이자 · 작곡가로서의 미래를 계획하는 확고
한 계기가 됐었고, 이에 자신을 알리기 위한 수단
으로 이 피아노 협주곡을 작곡하지 않을래
야 않을 수가 없었던 거였을 터이다.
그리고 이 무렵 열 아홉 살의 故 쇼팽은, 처음으로 여
인에게 사랑의 감정을 느끼게 됐었다고 한다.
물론 故 쇼팽의 일방적인 짝사랑으로 끝이 났었지만, 이 세상에서 태어나 맨
처음으로 느낀 강렬한 기분과 뜨거운 가슴이 고스란히 음악으로 녹아
들어, 바르샤바 시대의 절정을 장식하는 두 개의 피아노 협주곡
은, 바로 그렇게 해서 탄생할 수 있었던 거였다고 한다.
피아니스트, 머레이 페라이어
‘ 세계에서 가장 민감한 건반의 마술사 ’ 라는, 평판을 듣고 있는 머레이 페라이어이다.
그의 연주는, 마치 물이 흐르듯 아주 자연스러운 멜로디 감각과
따뜻한 서정미가 차고 넘치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머레이 페라이어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완벽한 테크닉 · 투명한 수정을 연상
케 하는 맑고 순수한 음색 · 아주 단순한 코드를 연주할 때 조차도 마치
꿈길을 걷는 듯한 느낌을 갖게 하는 시적인 리리시즘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 모든 것들을 가능하게 하는 풍부한 음
악성으로 전 세계의 청중들을 매료시켜 온
‘ 건반 위 최고의 음유시인 ’ 이다.
머레이 페라이어는 1,947年 4月 19日, 스페인계 유태인
이었던 양친을 둔 채 미국 뉴욕에서 출생했었다.
그는 4살 때, 부모님을 따라 뉴욕 메트로폴리탄의 오페라 구경을 갔었는데, 그 다
음날 어제 들은 주요 아리아들을 노래 부를 수 있을 정도였었다고 한다.
이것이 계기가 되어, 그는 5살 때부터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했었고, 19세 땐 뉴욕
의 메네스 음악대학에 진학해 아르투르 발삼교수에게 사사했었다.
피아노 외에 작곡과 · 지휘도 공부하던 중 1,968年의 그는, 거장 미에치
슬라브 호르쵸프스키의 개인 레슨을 받는 행운을 만나게 됐었다.
그리고 여름 동안의 그는, 말보로에서 루돌프 제르킨
과 · 파블로 카잘스 등과 함께 공부했었다.
또한 이 무렵의 그는, 미국 전역을 도는 순회 연주회를 개최하기도 했었다.
그러다 1,972年 3月의 그는, 뉴욕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협연했었고,
이 해에 ‘ 리즈 국제 피아노 콩쿠르 ’ 에서 우승을 거두었었다.
이것을 계기로 그는, 국제적인 피아니스트로 부상하기 시작했었고 1,97
3年 2月 엘리자베스 홀에서, 그의 최초의 해외 나들이인 런던 데
뷔 리사이틀을 열곤 눈부신 성공을 거두기에 이르렀었다.
1,974年의 그는, 영국의 앨드버그(Aldeburgh) 페스티발에서 연
주한 것을 계기로, 벤자민 브리튼과 테너 피터 피어스(Pet
er Pears)를 알게 됐었고, 이런 인연으로 약 10여
년간 피어스의 반주를 맡기도 했었다.
그리고 그는, 세계 도처의 메이저 오케스트라들과 ‘ 부다페스트 4중주단 ’ 을 비롯한 저
명한 실내악단이나 연주자들과 조인트 하는 등 그의 활동 영역은 광범위했었다.
최근의 그는, 오랜 세월 인연을 맺고 있었던 St. Martin - in - the - Fields의
수석 객원지휘자에 취임함으로서, 본격적인 지휘자의 길에 들어섰었다.
하지만 명료한 음색 · 음악적 본질을 추구하는, 깊이 있는 터치로 건반 위 최고
의 음유시인이라 추앙받는 머레이 페라이어이긴 하나, 지난 2,004年
손가락 염증 재발로 인해 내한 공연을 취소한 바 있는 그는, 피
아니스트로서는 치명적인 엄지 손가락 부상으로 인해
1,991年과 2,006年 두 차례에 걸쳐 대수술을
받곤 다시 화려하게 재기해 감동적
인 드라마를 연출하고 있다.
그리고 2,004年 이후, 전 세계 모든 연주 일정을 취소한 바 있는 그는, 지난
2,006年 독일에서의 연주로 다시 복귀했었고 2,007年 미국에서의
첫 복귀 무대를 가졌던 그는, 벤쿠버에서 일명 ‘ 턱이 빠질
정도의 빠른 스피드 ’ 와 더욱 더 완벽해진 테크
닉으로 관객뿐 아니라 모든 언론을 놀라
게 하며, 화려하게 재기했었다.
하지만 1,990年의 그에겐, 전혀 예상치도 못했던 하나의 사건이 발생했었다.
참으로 뜻밖에도 그는, 악보에 오른쪽 엄지 손가락을 베인 거였었다.
그런데 그는, 전혀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던 것이 큰 문제였었다.
왜냐하면, 상처가 덧나 항생제를 먹게 되면서 건강이 나빠지게 됐었고 1,991年
에는, 그 염증으로 인해 손가락 뼈에 변형이 와 여러 차례의 수술을 받으
며, 몇년 간 피아노를 떠나 있을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었었다.
하지만 긴 치료 기간 동안에도, 절망하지 않고 꾸준히 재기를 준비한 그는 1,990
年代 후반 다시 돌아 와 2,000年에 출시된 故 바흐의 ‘ 골드베르크 변주곡 ’
음반은, 빌보드 차트(Top 10 Billboard Classical Chart)에 연속
15주나 오르며, 음악 애호가들의 폭발적인 사랑을 받았었다.
그리고 그는 현재, 영국의 아카데미 오브 인 더 필즈(The Academy of St. Martin
in the Fields)의 상임 지휘자이면서 동시에 피아니스트로서 활약하고 있다.
또한 그는, 영국 로열 아카데미와 로열 컬리지의 명예교수이기
도 하며, 리즈 대학으로부터 명예 박사학위를 받았었다.
그러나 2,004年의 그는, 다 나은 줄로만 알았던 손가락 부상이 재발해
모든 연주 일정을 취소하며 또 한 번의 위기가 있었으나, 역시 불
굴의 의지로 이겨내곤 다시 돌아온 머레이 페라이어이다.
해서 그는, 이 시대의 진정한 거장이다.
전 악장들, 설명
약음기를 단 바이올린에 의해, 짧은 서주가 제시된 뒤 칸타빌레 주제의
피아노가 등장해 아름답고 · 깊은 내면의 소리를 표현해 낸다.
제 3 악장 : 론도 · 비바체 E 장조 2/4 박자
C샤프 단조로 시작하는, 짧은 주제에 이어 피아노에 의해 제시되는 론도는
故 모짜르트를 연상시키는 듯한 재기발랄함으로 가득 차 있다.
그리고 꾸밈음과 장식음이 빈번하게 사용되는 독주 피아노는, 종지부
에 이르면서 더욱 빠르고 · 강한 에너지와 화려함을 더한다.
피아니스트, 머레이 페라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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