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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 쇼팽(Chopin) - 피아노 협주곡 1번 마단조, 작품번호 11

Classic Music

by tl3659\0\0 2018. 5. 22. 1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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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 쇼팽(Chopin) - 피아노 협주곡 1번 마단조, 작품번호 11

Chopin, Piano Concerto No 1 In E minor Op 11

피아노 : 머레이 페라이어(Murray Perahia)

 

 

 

故 쇼팽, 피아노 협주곡 1

 

스무 살의 故 쇼팽이 살던 폴란드 바르샤바는, 독립

을 위한 민중 봉기가 일어나기 직전이었다.

 

혼란스러움을 벗어나고자 조국을 떠나기로 결심한 그는, 가족과 마지막 휴가를

보낸 뒤 1,83010 11日 폴란드에서 마지막 연주회를 열었고, 바로

그 자리에서 이 ‘ 피아노 협주곡 1 E 단조 ’ 를 초연했었다.

 

헌데 환송식이 열린 자리에서, 폴란드의 흙이 담긴 은잔이 그에게 수여됐었다.

11 2, 故 쇼팽은 “ 죽기 위해 떠나는 것 같은 기분이다 ” 라는 느낌을 뒤로

한 채 다시는 밟아보지 못할 폴란드의 땅에게 영원한 작별을 고했었다.

 

그리고 1,8298, 빈에서 성공적인 연주회를 마치고 바르샤바로 돌

아온 故 쇼팽은, 바로 이 피아노 협주곡을 작곡하기 시작했었다.

 

아니 바르샤바 음악원 졸업과 빈에서의 성공은, 故 쇼팽이 본격적

으로 피아니스트이자 · 작곡가로서의 미래를 계획하는 확고

한 계기가 됐었고, 이에 자신을 알리기 위한 수단

으로 이 피아노 협주곡을 작곡하지 않을

야 않을 수가 없었던 거였을 터이다.

 

그리고 이 무렵 열 아홉 살의 故 쇼팽은, 처음으로 여

인에게 사랑의 감정을 느끼게 됐었다고 한다.

 

론 故 쇼팽의 일방적인 짝사랑으로 끝이 났었지만, 이 세상에서 태어나

처음으로 느낀 강렬한 기분과 뜨거운 가슴이 고스란히 음악녹아

들어, 바르샤바 시대의 절정을 장식하는 두 개의 피아노 협주곡

, 바로 그렇게 해서 탄생할 수 있었던 거였다고 한다.

 

피아니스트, 머레이 페라이어

 

‘ 세계에서 가장 민감한  건반의 마술사 ’ 라는, 평판을 듣고 있는 머레이 페라이어이다.

그의 연주는, 마치 물이 흐르듯 아주 자연스러운 멜로디 감각과

따뜻한 서정미가 차고 넘치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머레이 페라이어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완벽한 테크닉 · 투명한 수정을

케 하는 맑고 순수한 음색 · 아주 단순한 코드를 연주할 때 차도

꿈길을 걷는 듯한 느낌을 하는 시적인 리리시즘

무엇보다도 이 모든 것들을 가능하게

악성으로 전 세계의 청중들을 매료시켜

‘ 건반 위 최고의 음유시인 ’ 이다.

  

머레이 페라이어는 1,9474 19, 스페인계 유

이었던 양친을 둔 채 미국 뉴욕에서 출생했었다.

  

그는 4살 때, 부모님을 따라 뉴욕 메트로폴리탄의 오페라 구경을 갔었는데,

음날 어제 들은 주요 아리아들을 노래 부를 수 있을 정도였었다고 한다.

이것이 계기가 , 그는 5살 때부터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했었, 19세 땐 뉴욕

의 메네스 음악대학에 진학해 아르투르 발삼교수에게 사사했었다.

 

피아노 외에 작곡과 · 지휘도 공부하던 중 1,968年의 그는, 거장 미에

슬라브 호르쵸프스키의 개인 레슨을 받는 행운을 만나게 됐었다.

그리고 여름 동안의 그는, 말보로에서 루돌프 제르

· 파블로 카잘스 등과 함께 공부했었다.

또한 이 무렵의 그는, 미국 전역을 도는 순회 연주회를 개최하기도 했었.

 

그러다 1,9723月의 그는, 뉴욕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협연했었고,

에 ‘ 리즈 국제 피아노 콩쿠르 ’ 에서 우승을 거두었었다.

이것을 계기로 그는, 국제적인 피아니스트로 부상하기 시작했었고 1,97

3 2月 엘리자베스 홀에서, 그의 최초의 해외 나들이인 런던

뷔 리사이틀을 열곤 눈부신 성공을 거두기에 이르렀었. 

 

1,974年의 그는, 영국의 앨드버그(Aldeburgh) 페스티발에서

주한 것을 계기로, 벤자민 브리튼과 테너 피터 피어(Pet

er Pears)를 알게 됐었고, 이런 인연으로 10

년간 피어스의 반주를 맡기도 했었다.

 

그리고 그는, 세계 도처의 메이저 오케스트라들과 ‘ 부다페스트 4중주단 ’ 을 비롯한 저

명한 실내악단이나 연주자들과 조인트 하는 등 그의 활동 영역은 광범위했었다.

최근의 그는, 오랜 세월 인연을 맺고 있었던 St. Martin - in - the - Fields

수석 객원지휘자에 취임함으로서, 본격적인 지휘자의 길에 들어섰었다.

 

하지만 명료한 음색 · 음악적 본질을 추구하는, 깊이 있는 터치로 건반 위

의 음유시인이라 추앙받는 머레이 페라이이긴 하나, 2,004

손가락 염증 재발로 인해 내한 공연을 취소한 바 있는 그는,

아니스트로서는 치명적인 엄지 손가상으로 인해

1,991年과 2,006차례에 걸쳐 대수술을

받곤 다시 화려하게 재기해 감동적

드라마를 연출하고 있다.

 

그리고 2,004이후, 전 세계 모든 연주 일정을 취소한 바 있는 그는, 지난

2,006독일에서의 연주로 다시 복귀했었2,007미국에서

첫 복귀 무대를 가졌던 그는, 벤쿠버에서 명 ‘ 턱이 빠질

정도의 빠른 스피드 ’ 와 더욱 더 완벽해진 테크

닉으로 관객뿐 아니라 모든 언론을 놀

게 하며, 화려하게 재기했었다.

 

하지만 1,990年의 그에겐, 전혀 예상치도 못했던 하나의 사건이 발생했었.

참으로 뜻밖에도 그는, 악보에 오른쪽 엄지 손가락을 베인 거였었다.

그런데 그는, 전혀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던 것이 큰 문제였었다.

  

왜냐하면, 상처가 덧나 항생제를 먹게 되면서 건강이 나빠지게 됐었고 1,991

에는, 그 염증으로 인해 손가락 뼈에 변형이 와 여러 차례의 수술을 받으

, 몇년 간 피아노를 떠나 있을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었었다.

  

하지만 긴 치료 기간 동안에도, 절망하지 않고 꾸준히 재기를 준비한 그는 1,990

年代 후반 다시 돌아 와 2,000年에 출시된 故 바흐의 ‘ 골드베르크 변주

음반은, 빌보드 차트(Top 10 Billboard Classical Chart)에 연속

15주나 오르며, 음악 애호가들의 폭발적인 사랑을 받았었.

 

그리고 그는 현재, 영국의 아카데미 오브 인 더 필즈(The Academy of St. Martin

in the Fields)의 상임 지휘자이면서 동시에 피아니스트로서 활약하고 있다.

또한 그는, 영국 로열 아카데미와 로열 컬리지의 명예교수이기

도 하며리즈 대학으로부터 명예 박사학위를 받았었.

 

그러나 2,004年의 그는, 다 나은 줄로만 알았던 손가락 부상이 재발해

모든 연주 일정을 취소하며 또 한 번의 위기가 있었으나, 역시 불

굴의 의지로 이겨내곤 다시 돌아온 머레이 페라이어이다.

해서 그는, 이 시대의 진정한 거장이다.

 

전 악장들, 설명

 

전 악장들, 연속 듣기
 
1 악장 : 알레그로 마에스토소(Allegro maestoso) E 단조 3/4 박자
 
긴 오케스트라의 서주에 이어 등장하는, 피아노의 아름다운 멜로디와 명인기적인 활약이 탁월하다.
사랑하는 여인에 대한, 젊은 故 쇼팽의 수줍은 열정이 조
용히 피어오르는 모습이 느껴지는 듯한 대목이다.
 
전형적인 제시, 발전 - 재현 - 코다의 틀을 지니고 있으나 내용면에서는 보다
유로운 진행과 분위기를 바탕으로 그 청초한 서정성을 만들어 나간다.
 
2 악장 : 로망스 · 라르게토 E 장조 4/4 박자
 
빠르기 표에서 암시됐듯이, 낭만적인 서정성의 효시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아름다운 악장이다. 

약음기를 단 바이올린에 의해, 짧은 서주가 제시된 뒤 칸타빌레 주제의

피아노가 등장해 아름답고 · 깊은 내면의 소리를 표현해 낸다.

 

3 악장 : 론도 · 비바체 E 장조 2/4 박자

 

C샤프 단조로 시작하는, 짧은 주제에 이어 피아노에 의해 제시되는 론도

故 모짜르트를 연상시키는 듯한 재기발랄함으로 가득 차 있다.

 

그리고 꾸밈음과 장식음이 빈번하게 사용되는 독주 피아노는, 종지부

에 이르면서 더욱 빠르고 · 강한 에너지와 화려함을 더한다.

  

 

 

 

 

 

 피아니스트, 머레이 페라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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