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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 차이코프스키(Tchaikovsky) - 교향곡 제 6번 나 단조 Op 74, Pathétique · 비창

Classic Music

by tl3659\0\0 2018. 5. 9. 0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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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 차이코프스키 - 교향곡 6번 나 단조 Op 74, 비창

Tchaikovsky, Symphony No 6 in B minor Op 74

지휘 : 故 레너드 번스타인(Leonard Bernstein)

New York Philharmonic

 

 

  

작곡가,차이코프스키

 

그의 아버지는 광산의 감독관이었고, 어머니는 피아노를 칠 줄 알았던 교양인이

었지만, 그에게 음악적 영감을 준 건 프랑스 출신의 가정교사였었다 한다.

해서 그는, 그녀에게서 7살 때부터 피아노를 배웠었다고 한다.

 

하지만 관리가 되라는 부모의 바람대로, 그는 상트 페테르부르크로  

률 학교를 졸업하곤, 법무성의 일등 서기관으로 취업했었다 한다.

 

그러나 그는, 음악에 대한 열정을 못 버려 직장을 그만 두곤 ‘ 상트 페테르부르크

악원 ’ 에서 故 안톤 루빈스타인(Anton Rubinstein)에게 사사했었다 한다.

 

그리하여 그는, 작곡가로서 승승장구하면서 인정을 받았었다.

그리곤 얼굴 한 번 본 적도 없는, 故 폰 메크 부인이라는 미망인으

터 거액의 후원금을 받아 생활도 안정적이었었다 한다.

 

하지만 그의 마음 속에는, 늘 불안과 · 열등의식과 · 죄의식으로 가득 차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는, 줄담배를 피웠었고 · 알콜중독 증

보였으며 · 조울증에 시달리기도 했었다 한다.

그렇다면, 과연 그 무엇이 그를 그토록이나 괴롭혔었을까?

 

그건 바로 그가, 동성애적인 성적 취향을 가지

있었던 것에서 기인한 듯 했었다 한다.

그 때 그 당시의 사회에선, 동성애적인 성적 취향은 감히

상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억압받는 취향이었었다 한다.
그리고 동성애적인 성적 취향을
감추기 위해, 그는

이 가르치던 여제자와 결혼도 했었다 한다.

 

나와, 평생 오누이같이 살자 ” 라는 게, 그가

여제자한테 한 청혼이었었다고 한다.

하지만 결국 그 결혼은, 파경을 맞게 됐었다 한다.

 

그리하여 그는, 한 귀족의 조카(男)와 연인 관계를

됐었는데, 화가 난 그 귀족은 그 사실을 러시

아 황제에게 투서로 알리려 했었다 한다.

 

헌데 다행인지 불행인지, 그 투서의 담당관이었던 故 차이코프

키의 법률학교 동창이 그 투서를 먼저 보게 됐었다 한다.

그리곤 그 법률학교 동창은, 법률학교의 명예를 위

그에게 자살할 것을 권유했었다 한다.

 

헌데, 故 차이코프스키의 마지막 교향곡인 제 6번 ‘ 비

창 ’ 은, 바로 이런 상황에서 완성됐었다 한다.

 

그리고 그는 결국, 이 곡을 직접 초연한 9일 후에 사망했었다.

사망의 원인은, 당시 창궐하던 ‘ 콜레라 ’ 로 알려졌었.

하지만 오염된 물을 마시곤, 콜레라에 걸려 며칠

에 죽었다는 사실은 믿기 어려워 보인다.

 

그보다 독극물인 ‘ 비소 ’ 를 먹으면, 콜레라와 비슷한

를 보인다는 것이 더 설득력 있어 보이는 대목이다.

 

지휘,Leonard Bernstein

 

故 레너드 번스타인(Leonard Bernstein · 1,918 ~ 1,990)은, 지극히

평범한 가정에서 태어난, 유태인의 피를 이어받은 이주민이었었다.

 

살림이그리 넉넉하지 않은 것은 보편적인 미국인의 상황이었었다.

그러나 어린 시절 감수성이 예민했었던 번스타인은, 물질적으론

족하지 못했을지언정, 정신적으론 안정된 시절을 보낼 수 있었다.

 

이러한 유년 시절이, 故 번스타인의 성격을 크게 좌

우한 것은 당연한 것이었을 거라고 생각된다.

 

한 가지 흠이라면, 그 당시 어려운 삶을 꾸려간 아버지의 입장에서

故 번스타인의 음악 교육이, 그렇게 탐탁하진 않았을 것이다.

해서 그는, 하버드에 진학해 문학과 철학을 먼저 전공했었

지만, 결국 음악에 자신의 재능이 있음을 알게 된다.

 

해서 故 번스타인은, 프리츠 라이너의 제자가

기 위해 커티스 음악원에 입학하게 됐었다.

그 후 1,940年 故 번스타인은, 보스턴에서 열린 탱글우드 축제를 통해서

세비츠키와 인연을 맺게 되면서 곧 그의 보조 지휘자로 일하게 됐었다.

 

그리고 1,944年 뉴욕 필의 연주회 때, 당시 부르너 발터의

으로 인해, 처음으로 뉴욕 필의 지휘대에 올라서게 됐었다.

갑작스런 지휘에도 불구하고, 성공적인 연주회를 이끌어 냄

으로,번스타인은 자신의 태동을 알리게 됐었다.

 

이후의 그는, 다른 오케스트라 지휘도 맡으면서

뉴욕 필의 부지휘자에 오르게 됐었다.

그리고 그 다음 해의 그는, 드디어 뉴욕 필의 상임 지휘자가 됐었다.

  

그리하여 1,958年부터 1,969年까지의 그는, 놀랄 만한 명성을 얻게 됐었다.

이것은, 항상 유럽의 문화적 식민지라는 열등감의

소와 맞물려 아주 이상적으로 돌아가게 됐었다.

 

그러나 이 시점을 경계로 故 번스타인은, 커다란 전환점을 맞이하게 됐었다.

바로, 유럽으로의 진출이었었다.

그리고 당당히 故 번스타인은, 성공하게 되며 故 카

라얀과 유럽에서의 격전을 펼치게 됐었다.

그리고 진정한 음악사에 대한 기여는, 이 유

에서의 성공이 더 큰 의미를 줬었다.

 

단순히, 그를 대표할 만한 연주곡목들만을 살펴 봐서도 잘 알 수 있다.

너무나 많은 재능을 가진 사람으로서, 한 가지 일만을 할 수밖에 없다는

것은 故 번스타인에게는 큰 고민거리가 아닐 수 없었을 것이다.

 

피아니스트 · 곡가 · 음악 교육가 · 지휘자 중, 어느 한 쪽을 포기할

없으며, 그리하여 전체로서의 故 번스타인이 존재하게 됐었다.

 

그리고 유럽에서의 성공 후엔, 미국으로 돌아가 탱글우드 축

제 연주회를 마지막으로, 그는 세상을 떠나게 었다.

 

악장들의 설명

 

 

 

전곡, 연속 듣기

 

 

 


1 악장 : Adagio - Allegro non troppo

 

슬픔과 번뇌를 잘 나타낸 악장인데, 곡의 템포나 표현에 변화가 많다.
처음 낮은 음의 현악기가 울리는 가운데, 파곳이

두운 음으로 신음하는 소리처럼 나타난다.

 

이 악장에서는, 온갖 비애와 운명에 대한 체념과 죽음에

한 공, 젊음에 대한 열정 등 우리 삶에서 전개되

모든 사실을 그린 악장이라 할 수 있다.

 


2 악장 : Allegro con grazia

 

불안하면서도, 친밀감 있는 선율이 현악기의

피치카토를 타고 선율로 나타난다.

 

어딘가 불안감이 넘쳐 흐르는데, 이것으로 환상과도

같은 덧없는 인생의 기분을 나타낸 것 같다.

 


3 악장 : Allegro molto vivace

 

명랑하고 쾌활하다기 보다는, 화려하고도 침통

맛이 나는, 절망에 대한 투쟁의 진군

상케 하는 행진곡에 비할수 있다.

 

4 악장 : Finale · Adagio lamentoso · Andante

 

슬픈 탄식과 절망을 나타낸, 그러나 아담한 악장이다.

 

흔히 교향곡의 4악장은 쾌할하게 끝나지, 여기서는

아주 무거운 기분으로 비창감을 느끼게 한다.

 


 

 

 

폰 메크 부인(1831~1894)

故 폰 메크 부인(1,831 ~ 1,894)

 

그녀는, 철도회사를 경영했던 대부호의 미망녀이자 · 차이코프스키

8이자 · 66女를 둔 어머니이기도 했으며, 차이코

스키에겐 18동안이나 경제적 후원자이기도 했었다.

 

음악적 황금기를 이뤘던 50대 중반의 레너드 번스타인.

  

지휘자, 레너드 번스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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