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타계한, 일본 종군 강제 위안부 피해자들의 사진 모음 10

타계한 위안부들

by tl3659\0\0 2017. 11. 15. 00:15

본문

일본군의 종군 강제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 할머님

 

타계한, 일본 종군 강제 위안부 피해자들의 사진 모음 10

 

 

 

 

  

故 하상순 할머님

 

2,0178 29, 일본군의 종군 강제 위안부 피해자인 하상순

할머님도 향년 89세에 패혈증으로 별세하셨었다.

 

故 하상순 할머님은, 1,928年 충남 서산에서 태어나 17

때 일본군의 성노예로 끌려가 고통받으셨었다.

 

故 하상순 할머님은, 해방 후에도 오래도록 귀국하지 못

한 채 60여년간 중국에서 거주하셨었다.

 

중국에서 거주하는 유일한 생존 한국 국적인, 강제 위안부 피해자인 故 하상순

할머님은 낙상 사고로 중상을 입은 뒤 2,0175월 귀국해 중앙대

병원에서 치료를 받, 결국 운명을 달리 하셨었다 한다.

 

그리고 故 하상순 할머님은, 2,000年 일본 도쿄에서 열린 ‘ 일본군 성노예 전범 여성

국제 법정 ’ 에 증인으로 참석하셨으며, 그 밖에 정기 수요시위에 참석해

부 문제 해결을 위한 활동에도 적극적으로 나서곤 하셨었다 한다.

 

 

故 신현순 할머님

 

2,00578日 새벽 2 30분에, 일본군의 종군 강제 위안부 피해

자인 故 신현순 할머님도 지병이던 당뇨로 별세하셨었다.

 

故 신현순 할머님은, 1,924 11月 서울 안국동에서 태생해 동덕

여자 중학교를 다니며 일본어 교육을 받으셨었다.

 

여살 터울인 큰오빠와 · 네살 터울인 작은오빠도, 교육환경이 어려웠던 시절에

고등보통학교를 나오는 등 집안이 교육에 대한 열의가 가득했었다.

 

그러나 故 신현순 할머님은, 17세가 되던 당시 우체국에 취직해 직장생

을 하시다, 일본국 보국대에 속아 지원한 뒤 태국 · 방콕으로

려가 힘든 종군 위안부 생활을 하셔야만 했었다.

 

故 신현순 할머님은, 26세가 되던 1,949年 한국으로 돌아올 수 있었지만 아픈 기

억을 지울 수가 없어, 사찰을 돌며 밤마다 염주를 돌려셨었다 한다.

 

그리고 나눔의 집엔, 지난 1,992年에 발을 들여놓으셨었지만 아침

· 녁으로 예불 올리는 것을 게을리하지 않으셨었다 한다.

 

그러던 중 故 신현순 할머님은, 1,998年에 대구에 내려가 정착하셨었지만, 각종

병마와 싸우시다, 결국 2,00578日 새벽에 별세하셨었다고 한다.

 

 

 

故 서봉임 할머님

 

2,0026512시에, 일본군의 종군 강제 위안부 피해자인

故 서봉임도 할머님도  향년 80세에 별세하셨었다고 한다.

 

故 서봉임 할머님은, 만성신부전증 때문에 늘 복막투석 ’ 에 의존해 생명을

유지하시다, 결국 그 병세의 악화로 별세하고 말으셨었다고 한다.

 

故 서봉임 할머님은, 1,922年 경남 거창 출생으로 16살의 나이에 ‘ 돈을 벌게 해 준다 ’ 는 말에 속아

사이공과 자바 등지의 종군 위안소에 끌려가 강제 위안부의 삶을 살게 되셨었다고 한다.

 

위안소에서 온갖 고초를 겪으신 故 서봉임 할머님은, 해방 후 인천을 통해 고향으로

아오셨었지만, 강제 위안부 시절의 후유증으로 인해 지난 1,990에는 중풍

으로 쓰러지셨었고, 전혀 혼자서는 거동도 하지 못하시게 됐었다.

 

그러다 지난 1,997年부터는, 신부전증으로 복막투석을 받으며 겨우 기계

에 의존해 생명만을 유지하시다, 한많은 생을 마감하셨었다 한다.

 

seobong_020605_01.jpg

 

故 서봉임 할머님이 걸어오신 길

 

1,922311 : 경상남도 거창 출생

사남매의 막내로, 위로 오빠 하나와 언니 둘이 있었으나, 현재 모두 사망

1,938: 할머니의 나이 16살에 아버지의 곁을 떠나 객지로 가셨었는데, 돈 벌고 · 잘 먹고 · 잘 살게 해

준다는 말에 속아, 부산에서 배를 타게 된 것이 사이공의 일본군의 종군 ‘ 강제 위안부 ’ 로 연행됨

1,940 : 사이공에서 2年 정도 위안소 생활을 하신 후 다시 자바로 옮겨짐

위안소 시절 서봉임 할머님은, 일본식 이름인 ‘ 아야꼬 ’ 라고 불려짐

그러다 해방 후, 배를 타곤 인천으로 귀국

 

1,990: 위안소 시절의 후유증인 중풍으로 쓰러진 후 거동을 하지 못함

1,993 8 31 : 일본국 ‘ 위안부 ’ 피해 할머니로 보건복지부 결정

1,993 913 : 대구시 수성구 지산동 거주 일본군 ‘ 위안부 ’ 피해 할머니로 결정 통보

1,99710 : 자원 봉사자 간병인 정현정氏 가족들이, 서봉임

머니와의 동거생활 시작으로, 간병활동을 도맡아 진행

1,997 11 : 혈액투석 시작

1,998 8 : 신부전증으로 매일 저녁 복막투석을 하심

2,0026: 결국 만성질환인 신부전증과 호흡곤란으로 별세

 

일본군의 종군 강제 위안부 피해자인 故 김분선 할머님이, 국화를 헌화

하며 故 서봉임 할머님의 ‘ 극락왕생 ’ 을 기원하고 있다.

 

 

故 김상희 할머님

 

을유년을 맞은 새해인 2,0051 2, 일본군의 종군 강제 위안부

자이신 故 김상희 할머님도 향년 84세에 피맺힌 평생의 한을

못한 채, 저 먼먼 세상을 향한 길을 떠나시장례

식은 서울 공릉동 성당에서 치러졌었다 한다.

 

김상희 할머님은, 1,922年 경남 밀양에서 태어나 16살 때 일본군에 강제로 끌려간

뒤 싱가포르 등지에서 일본군의 성노예 생활을 하다 1,946귀국하셨었다.

 

김상희 할머님은, 위안부 생활의 후유증으로 신장

과 고혈압 등을 앓으며 혼자 살아오셨었다.

 

김상희 할머님은, 지난 1,992年 위안부 피해자 신고를 뒤 일본 제국

주의의 만행을 세계에 적극적으로 알려, 지난 2,000年 미 의회가 주

는 존엄과 명예의 여성을 위한 인권상을 수상하기도 하셨었다. 

 

 

신쌍심 할머님

 

2,011 3 21日, 일본군의 종군 강제 위안부 피해자이신 故 신쌍심

할머님도, 향년 84세로 자택에서 영면에 드셨었다고 한다.

 

故 신쌍심 할머님은 1,944, 해방을 한 해 남겨두고 전남 목포

에서 강제로 끌려가시어, 일본 나가사키현 사세보 해군

위안소에서 성노예 생활을 강요당하셨었다.

 

故 신쌍심 할머님은, 해방과 함께 귀국했으나 1,992

에야 강제 위안부에 등록하셨었다 한다.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일본군의 종군 강제 위안부 故 강덕경 할머님의 그림 - 배를 따는 일본군

관련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