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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계한, 일본 종군 강제 위안부 피해자들의 사진 모음 2

타계한 위안부들

by tl3659\0\0 2014. 1. 27. 2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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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군의 종군 강제 위안부 피해자인, 故 강덕경 할머님의 그림 - 책임자를 처벌하라

 

타계한, 일본 종군 강제 위안부 피해자들의 사진 모음 2

 

 

 

일본군 위안부?

 

일본군 위안부, 일제 시대에 일본군 위안소로 연행되어 강제로 반복해서 성폭행당

한 여성들을 일컫는 말로, 한국에서는 오랫동안 ‘ 정신대 ’ 라고 불러왔다.

 

정신대란 말은, 전쟁 노동력으로 동원된 여자에 한해서 쓰이게

로 ‘ 여자정신 근로령 ’ 에 의거하여 조직된 여자근로

, 남성들의 전쟁 동원으로 인해 부족해진

력을 보완하기 위한 것이었다.

 

따라서 여자근로 정신대와 일본군 위안부는, 원래 제도는 다른 것이었다.

일본 정부는, · 일 전쟁과 태평양 전쟁을 치루는 동안 일본 군인들의 성 욕구를 채

워 주기 위해, 집단적 성행위 장소인 군대 위안소를 제도화하고 식민지와

점령지에 있는 수많은 젊은 여성들을 강제로 전선으로 수송해

체계적으로 성노예의 역할을 강요했던 것이다.

 

당시 한국에서의 종군위안부 모집은, 납치 · 사기 등을 통해 강제로 이루어졌으며 납치된

여인들 중 상당수는 15 ~ 20세 사이였고, 심지어 13살짜리도 있었다고 한다.

 

그 당시, 일본군 위안부로 끌려간 조선인 여성들은 모두 20여만

명으로 추정되며, 이들 중 대다수가 사망했었다.

 

 

   

 

故 정윤홍 할머님

 

일본군의 종군 강제 위안부 피해자인 故 정윤홍 할머님은, 향년 90세로 2,010

12 31日 경기도 일산 자택에서 노환으로 별세하셨었다.

 

충남 당진에서 태어나셨었던 故 정 할머님은, 1,933 결혼해 두 아이들을 낳으셨었으나 20살이

되던 해인 1,940故人은 징용으로 끌려간 남편의 사망 소식을 들으셨었고, 22살이

되던 해인 1,942일본 경찰에 붙잡혀, 머나면 중국 동안성에서 비참하고도

희망없는 일본군의 안부 생활을 하시다 1,945年 해방 직전 위안소

에서 임신채 귀향하시어그 해 9출산하셨었다.

 

그 이후, 자신에 대한 과거의 치욕스런 생활을 감추곤 생각만 해도 가슴이 저려오는

나날 속에서, 경기도 평택에서 노점상을 연연이하며 살아오셨었다.

 

그러다 1,995年,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신고를 한 이후 2,003年 한국

정신대 문제 대책 협의회 쉼터에서 1年간 머물기도 하셨었다.

 

 

故 박순임 할머님 

 

일본군의 종군 강제 위안부 피해자인 故 박순임 할머님은,

향년 90세로 2,0106별세하셨었다.

 

 

故 김기아 할머님

 

일본군의 종군 강제 위안부 피해자로 2,007年 8月 27日, 향년 83세에 뇌경색

생을 마감하신 故 김기아 할머님의 영결식이 2,007 8 2

9오전 경남 통영에서, 위안부 할머님과 함께 하는 통

· 시민 모임장으로 치러졌었다.

 

 

두순 할머님

 

일제 강점기 일본군의 종군 강제 위안부로 끌려가, 모진 고초를 겪었었던 故 두순

할머님이 2,010年 3月 11日 오후 8시 15분께 경남 거제시 자택

에서 향년 88세로 급성 심근경색으로 별세하셨었다.

 

1,922年 경남 거제에서 태어났었던 故 이 할머님은, 17세이던 39年 그물

장에 취직을 시켜 준다던 말에 속아 중국으로 끌려가 6年간

혹독한 일본군 강제 위안부 생활을 강요받으셨었다.

 

 

김순악 할머님

 

일본군의 종군 강제 위안부 피해자인김순악 할머님은,

향년 82암으로 별세하셨었다.

 

 

故 이점례 할머님

 

일본군의 종군 강제 위안부 피해자인, 故 이점례 할머님

 1,921年 익산에서 태어나셨었다.

 

어려운 집안 형편으로 인해, 인천에서 더부살이를 하던 중 1,935年 일

본군의 종군 강제 위안부 피해자로 모진 고통을 겪으셨었다.

 

故 이 할머님은, 중국 · 싱가포르 등지에서 힘든 나날을

보내시던 중 폐병으로 1,941年 귀국하셨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지돌이 할머님

 

2,008年 2月 6日 지병으로 숨지신, 일본군의 종군 강제 위안부 피해자지돌이(85) 할머님.

 

경북 경주가 고향인 고인은 23살 때, 중국의 방직 공장에서 사람을 모집한다는 말에 속아

일본군 석문자 위안소로 끌려가 위안부 생활을 강요당하셨었으며, 2,000年 6

중국에서 영구 귀국하시어, 그동안 나눔의 집에서 생활을 하셨었다.

 

 

다 주고 떠나신, 김순악 할머

  

2,010年 1月에 숨지신일본군의 종군 강제 위안부 피해자인 故 김순악(82) 할머

님이, 평생 모은 전 재산 1억여 원을 사회에 기부하셨었다고 한다.

이 유산은, 김 할머님이 오랫동안 모은 품삯과 위안부

피해자 생활 지원금을 아껴 모은 돈이었다.

 

경산 시내 자그마한 아파트에서 생활해 온 故 김 할머님은, 2,000年 11月

피해자로 등록한 뒤 정부에서 받은 정착금과 다달이 지급되는

지원금을 거의 안 쓰고 모은 것으로 알려졌었다.

 

1,928年 경북 경산에서 태어났었던 故 김 할머님은, 취직을 시켜 준다던 말에 속아 중국 하얼빈과

네이멍구 · 베이징 등지의 위안소로 끌려 다니시며 2年여 동안 위안부 생활을 하셨었다.

서울과 순천 등지를 전전하시다, 1,997年 고향인 경산으로 돌아가 정착하셨었다.

 

대장암 수술을 받으신 직후인, 2,010年 1月 2日 자택에서 숨졌었으며,

이틀 뒤 영천 은해사에서 수목장으로 장례식을 치렀었다.

 

 

故 김계화 할머님

 

향년 89세의 나이로,2,010年 5月에 눈을 감으신 일본군의 종군

강제 위안부 피해자인 故 김계화 할머님의 영정.

 

 

故 박복순 할머님

 

2,005 1 27日에 타계하신, 일분군의 종군 강제 위안부 피해자인 故 박복순

할머빈소가 마련된 서울 용산구 중앙대 부속병원에, 일본 시민

단체 들이 30저녁 빈소를 찾아 분향하고 있다.

 

 

일본군의 종군 강제 위안부 피해자들인, 할머님들의 추모회

  

2,007 12 26오후, 중학동 일본 대사관 앞에서 ‘ 수요집회 ’ 를 겸해 열린

일본군 위안부 희생자들인 할머님들을 위한 추모회가 열렸었다.

 

참석한 한 강제 위안부 희생자 할머님이, 고인들의

정을 만지며 애도하고 있다.

 

 

일본군의 종군 강제 위안부 피해자, 故 김순덕 할머님의 그림 - 끌려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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