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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계한, 일본 종군 강제 위안부 피해자들의 사진 모음 1

타계한 위안부들

by tl3659\0\0 2014. 1. 27. 2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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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군의 종군 강제 위안부 피해자인, 故 김외한 할머님

 

타계한, 종군 강제 위안부 피해자들의 사진 모음 1

 

 

 

어느 한 일본인이, 한 마디로 정리한 종군 위안부의 정의

 

노후생활이 어려워진, 지 조선 할망구들 ’

 

바로 그 노후생활이 어려워진 거지 조선 할망구들인, 본군의

우리 ‘ 종군 강제 위안부 피해자 할머님들 ’ 의 사진 모음

 

 

 

 

故 박분이 할머님

 

일본군의 종군 강제 위안부 피해자인 故 박분이 할머님이, 설날인 지난 3日(2,011

2月 3日) 오후 향년 91세로 경북 영천의 한 요양병원에서 노환으로 별세

고, 한국 정신대 문제 대책 협의회가 9日 밝혔었다.

 

경북 출신인  박 할머님은, 17살에 일본을 거쳐 싱가포르로 끌려가 강제로 일본군

위안부 생활을 하셨었으며, 해방 전인 1,943年 한국으로 돌아오셨었다. 

5日 발인한 뒤, 영천 은해사에서 수림장으로 장례를 치렀었다. 

 

 

故 임정자 할머님

 

일본군의 종군 강제 위안부 피해자인 故 임정자 할머님은, 88세를 일기로 2,0

11年 1月 13日 오후 11시 45분에 숙환으로 별세하셨었다.

故 임 할머님은 1,922年 경남 진주에서 태어나셨었고, 초등학교(소학교) 재학 중 가정 형편이

어려워 중단하곤 부산에 있는 공장에 다니며 집안 생계를 도우셨었다. 

 

그러던 1,938年경, 일본 남자가 취직 권유를 해 부모들이 거부했었으나 강제로 끌려간 후 대만 

위안소에서 일본군의 ‘ 종군 강제 위안부 ’ 생활을 겪다 1,942年 귀국하셨었다. 

 

 

故 김선이 할머님

 

일본군의 종군 강제 위안부 피해자인 故 김선이 할머님도, 향년 83세로

2,011年 1月 13日 오후 영면하셨었다

 

2年 전부터 건강이 좋지 않으셨었던 故 김 할머님은, 최근 병세가 악화

울산의 한 병원 중환자실에 입원 · 치료를 받으셨었다.

장례는, 울산에서 가족장으로 치러졌었다.

 

 

故 이기선 할머님 

 

일본군의 종군 강제 위안부 피해자인 故 이기선 할머님은, 88세로

2,011 1 3日인 설날에 별세하셨었다.

故 이 할머님은, 1,923年 경남 통영에서 태어나셨었다.

17살 되던 1,939年, 통영 한산면 일본 지서에서 일본 그물 공장에 가면 돈을 잘 벌 수

” 는 말에 속아 마을 처녀 2명과 함께 통영에서 배를 타고 부산으로 가셨었다.

 

그 길로 故 이 할머님은, 기차에 태워져 중국 서주로 끌려가시어 다마코 ’ 라는 이름 

으로 6年간 혹독한 일본군의 ‘ 강제 위안부 ’ 생활을 강요받으셨었다.

 

 

 

故 정서운 할머님

 

일본군의 종군 강제 위안부로 동원돼 고통을 받았었던 故 정서운 할머님이, 2,004年 2月 26日

오전 730분께 경남 진해 제일병원에서 80세를 일기로 별세하셨었다.

 

일본군의 종군 강제 위안부 피해자로 동원돼 고통을 받으셨었던, 故 정서운 할머님의

영결식은 2,0042月 28日 경남 진해 제일병원에서 엄수됐었다.

 

 

진화순 할머님

 

일본군의 종군 강제 위안부 피해자인 진화순 할머님은, 2,010年 9月에 타계하셨었다.

 

1,930年 전남 장성 출신인 진 할머님은, 광주의 한 제사 공장에서 일하던 15세

서울의 회사에 취직시켜 준다는 소리에 속아 만주로 끌려가시어 일본

노예로 인권을 유린당하며 모진 고통을 겪으셨었다.

 

 

강제 위안부 피해자의 마지막 가시는 길

 

일본군의 종군 강제 위안부 피해자인 故 문필기 할머님의 영결식이 열린, 2,008年

3 7 발인을 마친 운구차가 경기 광주시 나눔의 집에 도착하자,

은 ‘ 강제 피해자 ’ 인 이옥선(81) 할머님이, 운구차에 실

린 본 뒤 침울한 표정으로 돌아서시고 있다.

 

photo

일본군의 종군 강제 위안부 피해자인, 김복동 할머님의 그림 - 끌려가던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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