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 요한 슈트라우스 2세 - 아름답고 푸른 다뉴브강, 작품번호 314
故 Johann II Strauss - The Beautiful Blue Danube, Op 314
지휘, 故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Herbert von Karajan)
故 요한 슈트라우스 2세, 아름답고 푸른 다뉴브강
영어로 ‘ 다뉴브(Danube) ’ 강으로 불리는 이 강을, 독일에서는 ‘ 도
나우(Donau) · 헝가리에서는 ‘ 두나(Duna) ’ 라고 부른다.
이 강은, 볼가 강에 이어 유럽에서 두 번째로 긴 강이다.
유럽의 주요 강 中 유일하게 서쪽에서 동쪽으로 흐르며, 독일의 ‘ 슈바르츠발트(Schwarzwald ; 검
은 숲) ’ 지역의 ‘ 브리가흐(Brigach) ’ 와 ‘ 브레크(Breg) ’ 인 두 지류가 ‘ 도나우에싱겐(D
onaueschingen) ’ 에서 합쳐진 다음부터는 ‘ 도나우(Donau) ’ 강으로 불린다.
약 2,850km의 거리를 남동쪽을 향해 흘러, 루마니아의 다뉴브 삼각주 지대에서 흑해
로 흐르는 아주 긴 강이며, 도나우(Donau) 강은 중요한 국제 수로이자 옛 로
마제국과 게르만족의 국경선이기도 했으나, 로마제국 말기에는 훈족
과 게르만족이 이 강을 넘어 서남 유럽을 공격하기도 했었다.
이 강은, 독일 · 헝가리 · 루마니아 · 몰도바 · 불가리아 · 세르비아 · 슬로바키아 ·
오스트리아 · 우크라이나 · 크로아티아 등 총 10개 나라를 지나가며, 지류
까지 포함하면 총 17개 나라가 포함되는 유럽의 아름다운 강이다.
다뉴브(Danube) 강 연안의 주요 도시는, 독일의 울름(Ulm) · 오스트리아의 빈(
Wien) · 슬로바키아의 브라타슬라바(Bratislava) · 세르비나의 베로그
라드(Belgrade) · 헝가리의 부다페스트(Budapest) 등이 있다.
독일인들은, 왈츠를 자기네들의 지방무용인 ‘ 랭드라(Landler) ’ 에서 기원했었다고 한다.
이러한 왈츠가, 유럽의 전지역에서 전성기를 이루게 된 것은 ‘ 故 프란츠 슈베르트(Franz Peter Schuber
t · 1,797 ~ 1,828 · 오스트리아) · 故 리하르트 슈트라우스(Richard Georg Strauss · 1,864 ~
1,949 · 독일) ’ 등, 그 외의 많은 음악 대가들이 불멸의 왈츠 명곡들을 작곡했었기 때문이다.
19세기 중엽에는, 故 요한 스트라우스(Johann Straus) 풍의 ‘ 비엔나 왈츠(Vienna Waltz) ’ 가
오스트리아의 수도인 ‘ 빈(Wien) ’ 에서 시작해 대중화 됐으며, 19세기 후반에 이르러 미
국에선 ‘ 보스톤 왈츠(Boston Waltz) ’ 란 것이 발생해 많은 유행을 하게 됐었다.
그리고 이 곡은, 故 요한 슈트라우스 2세의 빈 왈츠곡 중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걸
작으로, 1,867年 궁정 무도회 악장을 재임하고 있을 무렵에 완성됐었다.
원래는 합창이 붙은 왈츠였으며, 프러시아로부터 속박을 받게 된 오스트리아에 국
민들의 사기 양양을 위해 의뢰한 곡으로 합창이 붙은 것도, 이 때문이다.
왈츠의 왕인 故 요한 슈트라우스 2세의 왈츠는, 이른바 빈 왈츠의 대표적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故 요한 슈트라우스 2세의 왈츠는, 단순한 3박자의 연속이 아니라, 거기에는 환
상을 불러일으킬 만한 깊은 정서가 담겨 있고, 낭만의 꿈이 서려 있다.
따라서 작곡된 지 100年이 된 오늘날에도, 대중들의 애호를 받고 있는 것이다.
그의 대표곡으로는, 왈츠인 ‘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 강 · 남국의 장미
· 황제 왈츠 · 예술가의 생애 · 술과 여인과 노래 ’ 등이 있다.
음악의 도시 빈은, 예술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는 영원한 꿈과 그리움의 고장이다.
故 하이든과 故 슈베르트가, 소년시절 합창단원으로 봉사했던 성 스테판 대성당의 아름
다운 고딕식 건물 첨탑이 지금도 빈의 상징처럼 우뚝 솟아 있고, 여러 차례 입은
파멸적인 전화에도 불구하고 옛날 그대로의 거리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화려한 궁전, 고색창연한 교회 · 우아한 정원이 한껏 번영을 누
렸던 여러 시대의 문화가 예술의 정수를 피력해 준다.
또 故 모짜르트가 지휘했던 극장이며, 故 베토벤이 거닐던 길 · 故 브람스가 즐겨 찾던 커피
집이 그대로 남아 있어서, 음악 애호가들의 마음을 야릇한 향수로 들뜨게 만든다.
이렇듯 아름다운 역사의 도시 빈과, 끊을 수 없는 깊은 유대를 가진 음악이 故 요한
슈트라우스 2세(Johann II Strauss · 1,825 ~ 1,899 · 오스트리아)를
중심으로 한, 많은 작곡가들의 ‘ 빈 왈츠(Wiener Waltz) ’ 이다.
도나우 강은, 오스트리아의 역사를 간직한 채 유유히 흐르고 있는 유서 깊은 강이다.
도나우의 흐름은 기쁨도 · 슬픔도 감싸주고 · 달래주며, 빈의 벗이 돼왔었다.
故 요한 슈트라우스 2세는, 바로 이러한 도나우 강을 소재로
왈츠를 작곡할 것을 결심해, 합창곡을 완성했었다.
초연의 결과가 그다지 좋지는 못했으나, 그후 반년쯤 지나서 파리의 국제 박람회에서
재연했을 땐, 대호평을 받아 그로부터 전세계에 퍼지게 됐었다.
이렇듯 아름다운 역사의 도시 빈과, 끊을 수 없는 깊은 유대를 가진 음악이 故 요한
작곡가, 故 요한 슈트라우스 2세
故 요한 슈트라우스 2세(Johann II Strauss · 1,825 ~ 1,899)는, 오스
트리아의 작곡가이자 · 지휘자로 故 요한 슈트라우스의 장남이다.
그는 악단을 이끌며 연주여행을 했었고, 작곡에도 열중해 새로
운 독자적인 왈츠 양식인 ‘ 연주회 왈츠 ’ 를 낳았었다.
즉, 왈츠에 처음으로 합창이 곁든 ‘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 ’ 등의
대규모 왈츠와 ‘ 집시남작 ’ 등의 오페레타를 작곡했었다.
그의 아버지인 故 요한 슈트라우스는, 처음 그를 상공학교(商工學校)에 입학시켜 은행업을 배우
게 했으나, 음악에 대한 집념이 강했던 그는 아버지 몰래 피아노와 바이올린을 배웠었다.
헌데 1,843年, 그의 아버지와 어머니가 별거생활에 들어가자, 이를 기회삼아 생애를 음악에 바치
기로 결심하곤 피아노 교수로 생계를 꾸리면서, 바이올린 외에 작곡 이론도 배웠었다.
다행히 아버지와의 갈등은 1,846年에 일단 수습은 됐으나, 그는 아버지의 악단에는 가담하지 않고
자기 악단을 인솔해 독립 활동을 계속했으며 1,849年, 그의 아버지가 죽자 아버지의 악단
도 지휘하게 돼, 동생이 악단에 가담하기까지 수년 동안 바쁜 세월을 보냈었다.
1,851年의 그는, 함부르크 · 프라하 · 드레스덴 · 라이프치히 · 바르샤바 등지에서 연주를 했으
며, 분주한 가운데서도 작곡에 열중해 1,853年 1年 동안에 27곡 이상을 작곡했었다.
그러나 그의 과도한 열정과 무리로 병석에 눕게 되자, 악단을 동생에게 맡기곤 요양
지로 옮겨 다니면서 건강 회복을 위해 노력했으며, 건강이 회복되자 1,8
55年 그는 다시 러시아 페테르부르크까지 연주여행을 했었다.
그러다 1,862年의 그는, 통칭 예티(Jetty)라고 불린 가수였던 故
헨리에테 트레프츠와의 결혼으로 커다란 전기를 맞았었다.
그러나 그의 연주는, 공원에서의 연주회와 자기 작품의 첫 공연에 한정했었고, 온갖 정
열을 작곡에 투입해 새로운 독자적인 왈츠 양식인 ‘ 연주회 왈츠 ’ 를 낳았었다.
1,867年부터의 그는, 왈츠에 처음으로 합창이 곁든 ‘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 · 예술가의 생애 · 빈 숲속의 이야기
· 술 여자 노래 · 빈 기질 ’ 등의 대규모 왈츠의 걸작을 작곡하고 1,878年, 아내가 죽자 30세 연하였던
故 릴리 디트리히와 재혼했으나, 어울리지 않는 이 결혼은 얼마 안가 파경을 맞았고 1,887
年, 故 아델레 도이치와 또 재혼했으나, 빈의 어머니와 동생인 故 요제프가 모두 세
상을 떠나 큰 타격을 받았으나, 故 자크 오펜바흐(Jacques Offen bach
· 1,819 ~ 1,880 · 독일의 쾰른)와 故 주페(Franz von Suppé
· 1,819 ~ 1,895 · 오스트리아) 등에게서 자극을 받아,
그 때부터 오페레타의 작곡도 시작해 ‘ 박쥐 · 집
시남작 ’ 등을 비롯한 작품으로, 당시 빈
오페레타 계에 군림하게 됐었다.
그는, 오페레타 16곡 · 왈츠 168곡을 비롯해 많은 무도곡을 작곡했었는데, 이
모든 작품에는 인생을 찬미하는 빈의 독특한 분위기가 담겨 있다.
악단, 빈 필하모니 관현악단(Vienna Philharmonic Orchestr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