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 파가니니(Paganini) - 바이올린 협주곡 4번 라단조 작품번호 60
故 Niccolò Paganini - Violin Concerto No 4 in D minor, MS 60
바이올리니스트 : 살바토레 아카르도(Salvatore Accardo)
작곡가, 故 파가니니
10대 초에, 이미 종전의 연주 기법의 대부분을 마스터한 故 니콜로 파가니니(Nicc
olò Paganini · 1,782 ~ 1,845)는, 15세가 되자 하루 10시간 이상의
격심한 연습으로 혼자서 새로운 연주기법을 습득해 나갔었다.
그의, 그런 노력이 결실을 맺어 1,799年 17세 때에 북이탈리아 지방에서 열
광적인 환영을 받아 곧 명성과 부(富)에 휩싸이게 됐었다.
그러나 급속한 성공으로 자만에 빠진 소년 故 파가니니는, 방탕과 도박에 빠져 건강을 해쳤을 뿐만 아
니라 거액의 빚도 져, 결국 연주에 필요한 바이올린마저 잃게 되는 파국에 이르고 말았었다.
그리고 1,801年부터 1,804年까지의 그는, 한 귀부인과 이탈리아의 중부에 있는 지방인 토
스카나에 있던 그녀의 성에서 동거 생활을 했었으나, 그동안 연주회를 단 한 번도 열
지 않았던 터에 애인 살해죄로 투옥됐을 거란 소문이 나돌기도 했었다.
허나 사실 이 기간 동안, 그는 건강 회복을 도모하면서 하모닉스나 중음
주법 · 스타카토 등의 새로운 주법을 개척하고 있었던 거였다.
그리하여 1,804年 22세 때엔, 그의 출생지였던 제노바로 돌아와 그 다음
해부터 다시 연주활동을 개시해, 이전보다 더한 칭송을 받았었다.
그 명성으로 인해, 나폴레옹의 누이 동생에게 초대돼 故 보케리니(Luigi - Rodolfo - Boccherini
· 1,743 ~ 1,805)의 출생지였던 루카의 궁정 가극장에서 3년간의 지휘 생활을 보냈었다.
그러다 1,808年 26세 때부터 1,828年인 46세 때까지의 그는, 20年간에 걸쳐 이
탈리아의 각지로 연주여행을 했으며, 종전의 바이올린 개념을 훨씬 초월
한 입신(入神)의 기(技)를 펴내 청중에게 큰 감명을 주었었다.
그 묘기는, 이탈리아 이외의 각지로 퍼져나가 故 파가니니의 이름은 온 유
럽 음악 애호가들의 입에 존경하는 마음으로 오르내리게 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