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운터 테너(Counter Tenor) - 슬라바(Slava)
아베 마리아(Ave Maria · 성모찬송)의 모음곡들
카운터 테너, 슬라바
카운터 테너인 슬라바(본명 ; 뱌체슬라브카간 - 팔레이 · Vyatcheslav Kagan
Paley)는 1,964年, 구 소련인 벨로루시 공화국의 고멜에서 태어났었다.
어린 시절의 그는, 차이코프스키 음악원에서 바이얼린과 피아노를 배
웠으며, 벨로루시 국립 음악원에서 바이얼린을 전공했었다.
벨로루시 아카데믹 카펠라에서 노래를 시작한 그는 1,987年, 레닌그라
드(현재는, 쌍트 뻬쩨르부르그) 필하모닉과 공연한 故 슈만의 ‘
레퀴엠 ’ 에서 소프라노 솔로를 맡아 공식 데뷔했었다.
1,989年의 그는, 이라나 안토노바 박사의 초청으로 뿌쉬낀 미술관 연주회에 초대됐었
던, 그 계기로 인해 레코딩과 텔레비젼 방송 출연 등 바쁜 활동으로 이어졌었다.
그리고 1,989年의 여름, 거장이었던 故 레너드 번스타인(1,918 ~ 1,990)과의 만
남은 젊은 러시아 음악가의 재능을 극적으로 꽃피울 기회를 제공했었다.
하지만 그는, 故 번스타인의 갑작스런 사망으로 여러 공연 계획들은 실행되진
못했지만, 그러나 그 대신 그의 아름다운 목소리와 재능을 인정한 ‘ 오
펜하이머 채리티 ’ 재단으로부터 유학의 기회를 얻게 됐었다.
그리하여, 런던의 길드홀 음악원에 무시험 장학생으로 입
학한 슬라바는, 그 곳에서 다시 4年간 공부했었다.
그리고 故 브리튼(Benjamin Britten · 1913 ~ 1976)의 오페라인, 한 여름밤의 꿈에
서 오베론 역을 맡았던 1,992年의 공연은 그를 일약 세계적인 연주가의 반열에
오르게 했으며, 그 이듬해엔 런던 로얄 오페라 하우스 무대에 서게 했었다.
그리고 또 그는, 영국 전역을 비롯해 프랑스와 체코 · 러시아 · 미국에서의 공연이 이어 졌
고 1,993年의 여름엔 프라하 모짜르트 재단의 주선으로 독일과 체코에서 故 루 실
버 해리슨(Lou Silver Harrison · 1,917 ~ 2,003)의 오페라 ‘ 라푼젤 ’
에서 마녀 역으로 출연해 또 한차례의 커다란 호응을 얻었었다.
또한 그는, 러시아의 저명한 연주자이자 · 지휘자인 유리 바쉬메트(Yuri Bashmet · 1,953 ~ )와
故 조반니 바티스타 페르골레지(Giovanni Battista Pergolesi · 1,710 ~ 1,736)의 ‘
성모애가 ’ 를 비롯한 故 비발디 · 故 바하 · 故 브람스 · 故 차이코프스키 · 故 라흐
마니노프 등의 작품들을 레코딩 했으며, 현재는 차이코프스키 콩쿠르 우승
자이자 · 피아니스트인 보리스 베레소프스끼(Boris Berezovsky ·
1,969 ~ )와 콤비를 이루어 다채로운 활동을 펼치고 있다.
1,995年의 그는, 유리 바쉬메트의 모스크바 솔로이스츠와 공연 계
약을 맺었으며, 뒤이어 일본 빅터 엔터테인먼트 사와 레
코딩 계약을 맺곤 첫 번째 방문이 이루어졌었다.
영국의 음악 평론가인 알렉산더 워프는, 런던 이브닝 스탠다
드 지의 ‘ 떠오르는 별 ’ 이라는 글에서 이렇게 썼었다.
‘ 슬라바의 노래는, 힘과 열정에 차 있으면서도 뇌쇄적인 섬세한 아름다움으로 우리를 얼어
붙게 한다. 그것은 지상의 그 어떤 소리와도 다른 개성을 내뿜고 있다. 나는, 인간의
목을 통해 이런 소리를 들을 수 있으리라고는 결코 상상하지 못했다 ’ 라고.
故 기울리오 카치니(Giulio Caccini)
故 샤를 프랑수아 구노(Charles François Gounod)
故 프란츠 피터 슈베르트(Franz Peter Schuber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