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대 테너(The Three Tenors) - 메들리
The Three Tenors, 故 Pavarotti · Domingo · Carreras
접속곡 · MEDLEY
테너, 호세 카레라스
스페인의 바르셀로나에서 태어난 호세 카레라스는, 6세 때 마리오 란자가 출연
한 이탈리아의 테너였던 故 엔리코 카루소의 전기영화인 ‘ 위대한
카루소 ’ 를 보고 성악가가 되기로 결심했었다 한다.
그리고 그는, 영화속에 나오는 모든 아리아들을 배우고 · 연습했었다 한다.
2年 후의 그는, 스페인 국립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故 베르디의 ‘ 리골레토 ’ 에 나오는
아리아 ‘ 여자의 마음 ’ 을 부름으로서 대중들 앞에서 처음 노래를 하게 됐었다.
카레라스는, 열한 살 때 바르셀로나의 유명 오페라 하우스인 리세우 대극장에서 마누엘드
파야의 ‘ 페드로 주인의 인형극 ’ 에 출연하면서 오페라 무대에 첫 데뷔를 했었다.
카레라스는 소년 해설자 엘 트루지만 역을 맡았고, 이 역할은 당시 보이 소프라노가
소화하기엔 너무 어려워서 주로 성인 메조 소프라노들이 부르던 배역이었다.
카레라스는, 처음엔 프란시스코 푸이(Francisco Puig)로부터 성악을 배웠
고, 나중엔 후안 루악스(Juan Ruax)로부터 가르침을 받았었다.
특히 카레라스는, 루악스를 ‘ 나의 예술적인 아버지 ’ 라고 이야기한다.
변성기가 지나면서 그는, 성악 공부를 계속하며 오페라 무대의 작은 배역들을 맡
아 활동하던 중 당대의 유명 성악가인 몽세라 카바예의 눈에 띄게 된다.
카바예는, 이 젊은 테너를 자신의 매니지먼트사에 추천했고, 카레라스는 매니지먼트
에 발탁되면서 몽세라 카바예가 출연하기로 되어 있던 故 도니제티의 ‘ 루크
레치아 보르지아 ’ 에서 카바예의 상대역인 제나로 역을 맡게 됐었다.
이로써 카레라스는, 명실상부한 테너로서의 첫 주역 무대에 데뷔하게 됐었다.
이후로도 몽세라 카바예는, 카레라스의 ‘ 예술적인 어머니 ’ 역할을 하며 그를 이끌어 주었었다.
두 사람은 많은 공연을 함께 했고, 15개가 넘는 오페라 레코딩에서 함께 주역을 맡았었다.
카레라스는 1,972年에, 미국 무대에 데뷔했는데 뉴욕 시티 오페라가
공연한 故 푸치니의 ‘ 나비부인 ’ 에서 핑커톤 역을 맡았었다.
또한 74年에는, 라 트라비아타의 알프레도 역으로 영국 코벤트 가든에 데뷔했었고,
빈 국립 오페라 무대에서는 ‘ 리골레토 ’ 의 만토바 공작 역으로 데뷔했었다.
같은 해엔,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무대에서 ‘ 토스카 ’ 의 카바라 도시로 출연했었
고, 75年엔 밀라노의 라 스칼라 극장에서 ‘ 가면 무도회 ’ 의 리카르도 역으로
출연하면서 세계 4대 주요 오페라 극장 무대를 차례로 밟았었다.
많은 오페라 가수들이, 겨우 자신의 이름을 알리기 시작할 때쯤인 스물 여덟
살 때까지 카레라스는 24개의 서로 다른 작품에서 주역을 맡았고, 세
계 4대 오페라 하우스에 모두 데뷔하는 기록을 세웠었다.
1,976年의 그는, 故 카라얀의 초청으로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에서 故 베르디의 ‘ 레퀴
엠 ’ 에 출연해 명성을 더했으며, 이어서 故 레너드 번스타인 · 주빈 메타 등
당대의 명지휘자들과 함께 ‘ 돈 카를로스 · 라 보엠 · 운명의 힘 ’ 등
을 비롯한 많은 작품에 출연해, 국제적 명성을 얻었었다.
특히 1,982年, 故 카라얀이 지휘한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메조 소프라노 아
그네스 발차와 함께 故 비제의 ‘ 카르멘 ’ 을 공연해 높은 평가를 받았었다.
1,987年의 카레라스는, 파리에서 ‘ 라 보엠 ’ 영상촬영을 하다가 백혈병으로 쓰러졌었다.
살아날 확률이 10%도 안된다는 진단을 받았지만, 그는 기적적으로 완쾌해 재기에 성공했었다.
그는 1,992年, 바르셀로나 올림픽 개 · 폐회식의 음악감독을 역임했으며, 1,990年엔
로마 월드컵 때 故 루치아노 파바로티 · 플라시도 도밍고와 함께 ‘ 세계 3대 테
너 콘서트 ’ 를 시작해, 전세계 수억 인구의 눈과 귀를 사로잡았었다.
카레라스는, 50개가 넘는 오페라 전곡 레코딩을 비롯해서 수많은 콘서트 음반 ·
오페라 · 아리아 음반 · 다양한 스타일의 크로스 오버 음반 · 비디오 등을
녹음했으며, 비디오로 제작된 그의 전기 ‘ 라이프 스토리(A
Life Story) ’ 는 에미상을 수상하기도 했었다.
최근의 그는, 오페라 출연을 1年에 한두 작품으로 줄
이고, 콘서트와 리사이틀에 주력하고 있다.
또한 그는, 자신이 벌어들이는 수익의 상당 부분을 ‘ 호세 카레라
스 국제 백혈병 재단(The Jose Carreras Internatio
nal Leukeamia Foundation) ’ 에 쓰고 있다.
월드컵 때의 ‘ 쓰리 테너 ’ 공연, 2,000年 남아프리카공화국 인종차별
정책 철폐 5주년 기념 공연 · 6 · 25 전쟁 발발 50주년 · 200
1年 한국 공연 등 세계 각국을 무대로 규모 큰 공연들
과 독창회 등을 의욕적으로 펼치고 있다.
故 유시 비욜링 · 故 주제페 디 스테파노를 연상시키는, 서정적이고 · 감미로
운 음색과 섬세한 표현으로 세계 최정상의 리릭 테너로 손꼽히며, 故
파바로티 · 도밍고와 함께 세계 3대 테너로 불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