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 베토벤 - 바이올린 · 관현악의 로망스 2번 바장조 작품 50
故 Beethoven, Romance for Violin and Orchestra No 2 in F major op 50
바이올린 : 故 다비드 오이스트라흐(David Oistrakh)
故 베토벤, 바이올린과 관현악을 위한 로망스 2번
故 베토벤은, 독주 바이올린과 관현악을 위한
두 곡의 ‘ 로망스 ’ 를 작곡했었다.
헌데 이 곡은, 풍부한 화성으로 잔잔하며 · 고요한 분위기의 G장조와
, 목가적이며 · 밝고 · 사랑스런 느낌을 주는 F장조, 두곡 모두
합주 중에서도 특별한 의미를 지니고 있는 곡이다.
故 베토벤이, 그 어떻게 이런 달콤한 곡을 쓸 수 있었을까 싶어 이상하기까지
한 바이올린과 오케스트라를 위한 ‘ 로망스 ’ 란 이름의 두 곡이다.
이 두 곡은, 故 베토벤이 32 ~ 33세였던 1,802年에서 1,803年 사이에
쓴 곡으로, 청년기 젊은 날의 밝은 서정이 감미롭게 배어 있다.
바이올린의 기본 지식은 풍부했었지만, 스스로는 그저 무난한 수준
의 바이올리니스트밖에 안됐었던 故 베토벤으로서는 느린 바
이올린 독주 음악을 쓰는 편이 쉬웠을지도 모른다.
해서, 젊음의 패기 넘치는 바이올린 협주곡을 작곡하
기 위한 습작쯤 되는 게 아닌가 생각된다.
그러나 故 베토벤은, 두 곡에 모두 만족하곤 1,80
3年과 1,805年에 출판했었다고 한다.
사실은 제 2번이 먼저 작곡됐었는데, G장조를 먼저
출판했기 때문에 제 1번이 됐었다 한다.
이 곡을 쓴 1,802年, 故 베토벤은 실제로 자살을 생각하곤 ‘ 하
이리겐슈타트의 유서 ’ 라는 것을 쓰고 있었다 한다.
그의 청각이 점점 이상해지면서, 연애에서도 실패
해 절망에 빠져 있던 시절이었었다 한다.
그런데 그가, 그 어떻게 이런 달콤하고 · 아름다운 선율의 로
망스를 쓸 수가 있었는지 미스터리일 수밖에 없다.
아마 그는, 현세의 절망감을 작품세계에서의 감미로움
으로 승화시키고자 했었던 것은 아닐지 … .
그리고 두 편의 로망스 모두, 얼핏 단순해 보이는 외양
속에 위대한 작곡가의 혼을 감추고 있다.
허나 제 1번 보다, 제 2번의 인기가 더 높다.
독주 선율의, 화려함 때문인 것 같다.
바이올리니스트, 故 다비드 오이스트라흐
그는 1,908年 9月 30日,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남부에 있는 오데사에서 출생해 1,97
4年 10月 24日 암스테르담에서 급서한, 구 소련의 명 바이올리니스트였었다.
그는, 아우어(Auer) 악파와는 접촉이 없어 오데사에서 바이올린을 배웠
음에도 불구하고, 러시아 악파를 대표하는 대가로 성장했었다.
그리고 그의 음색은 따뜻하고 · 박력이 있었으며, 기교는 완벽
하여 예술적 기교와 음악성이 멋지게 융화돼 있었다.
1,935年의 그는, 비에니아프스키 국제 바이올린 콩쿠르의 제 2위 · 1,
937年엔 브뤼셀의 이자이 국제 콩쿠르의 1위에 입상했었다.
헌데 故 쇼스타코비치, 故 프로코피에프 · 미아코프스카 · 故 하차투리
안 등 러시아의 현대 작곡가들이 신작을 그에게 헌정했으며,
바이올린 레퍼토리 확장에 공헌하는 바도 컸었다.
만년의 그는, 오랜동안의 꿈이었던 지휘에도 손을 대기 시작했었다.
그의 아들인, 이고르 오이스트라흐(1,931年生)도 뛰어난 바이올리니
스트인데, 그러나 위대한 아버지를 능가하지는 못할 것 같다.
故 다비드 오이스트라흐가 1,955年 11月, 처음으로 미국에 연주여
행을 떠나기 전의 그의 명성은 뜻밖에도 레코드를 통하여 높
아져 있었으며, 그의 첫번째 미국 공연은 ‘ 다비드 오이
스트라흐 ’ 는 세계 최고의 바이올리니스트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