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 쇼팽(Chopin) - 왈츠 6번 내림라 장조 작품 64 - 1, 강아지 왈츠
故 Chopin, waltz No 6 in D Flat Major Op 64 - 1, 강아지 왈츠
피아노 : 故 아르투르 루빈스타인(Artur Rubinstein)
故 쇼팽, 왈츠
故 쇼팽은, 일생동안 왈츠를 20곡 이상 작곡했었다.
이 작품들 중, 그의 생전에 출판된 것은 겨우 8곡(작품 18 · 작품
34의 3곡 · 작품 42 · 작품 64의 3곡)에 지나지 않는다.
그 나머지는 그의 사후, 유작으로서 작품 번호를 가지고
또는 작품 번호 없이 발표된 것이 11곡에 이른다.
대체로, 생전에 출판된 작품들이 구성면에서 비교적 충실하지만
, 유작 중에서도 그에 못지 않은 걸작들이 포함돼 있다.
또 여러가지 요소를 다양한 형태로 엮어 넣음으로서, 故 쇼
팽은 자신만의 독특한 왈츠 스타일을 만들어냈었다.
그리고 왈츠는, 故 쇼팽의 다른 형식에 비해 연주하기가 그다지 난
해하지 않고 악상 또한 낯설지가 않아서, 그의 작품 중에서
일반인들에게 가장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곡이다.
그리고 대부분의 왈츠는, 춤곡으로 만들어지지만
, 故 쇼팽의 왈츠는 시적인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피아노를 위한 곡이다.
故 쇼팽, 왈츠 6번
1,846年에 작곡된 이 곡은, 故 쇼팽의 모든 왈츠곡 가운데서도 가장 유명한 곡이다.
일명, 강아지 왈츠라고 불려지기도 하는 이 곡은, 故 쇼팽의 애인인 故 주
르주 상드가 강아지 한 마리를 길렀었는데, 故 상드가 밖에 나갔
다 집에 돌아오면 꼬리쳐, 그녀를 반겨주었었다 한다.
근데 그 강아지가, 제 꼬리를 물려고 빙글빙글 도는 모습을 故 조
르주 상드가 보고 故 쇼팽에게 이 모습을 음악으로 표현
해 달라고 부탁해, 이 작품이 쓰여졌었다 한다.
빠르기는 Molto vivace로 매우 빠르고, 마치 강아지가 제 꼬리를 물려고 빙
빙 도는 모습을 그린 것이라는 느낌을 누구나 받을 수 있는 곡이다.
정말, 사랑스러운 피아노 소품이다.
그리고 이 곡은, 연주 시간이 1분밖에 되지 않아 1분 왈츠(Minute Waltz)라고도 한다.
故 조르주 상드는, 당시 남 · 녀간의 사랑을 노골적으로 다룬 연애소설로 유명한
소설가였는데, 후에 헤어졌지만 故 조르주 상드와 함께 한 9年이 없었
다면, 故 쇼팽의 걸작들도 몇 개 존재하지 않았을 것 같다.
피아니스트, 故 아르투르 루빈스타인
故 아르투르 루빈스타인은, 20세기 전반부의 피아니스트들을 이야기할 때 결
코 빼놓을 수도 없고, 빼놓아서도 안되는 위대한 피아니스트였었다.
그는 1,887年에 태어나 1,982년까지, 무려 95년을 살며 90세까지
현역으로 활동하며 대단한 노익장을 과시했었고, 그토록 오랜
세월동안 수많은 작곡가들의 수많은 곡들을 연주하며
, 너무도 아름답고 · 자연스러운 피아노의 선
율을 들려준 거장 중의 거장이었었다.
故 루빈스타인은, 故 쇼팽의 나라인 폴란드에서 유태인의 핏줄을 받아 태어났었다.
대부분의 거장이라 불리는 이들이 그랬던 것처럼, 故 루빈스타인 역시
어릴 적부터 음악에 대한 천부적인 소질을 타고난 것으로 전해
지는데, 특히 암보와 초견에 무척 능했었다고 한다.
해서 그는, 특별히 연습도 없이 악보를 한 번만 보고도 바로 연
주회에서 완벽한 연주를 할 수 있을 정도였었다 한다.
헌데 故 루빈스타인이 가지고 있던, 그 천재적인 잠재력을 처음으로
발굴 · 인정해준 사람은, 故 요제프 요아힘이었었다 한다.
故 요아힘은, 故 브람스의 평생지기로도 유명한 독일 최고의 바이올리
니스트로 명성을 떨치고 있었는데, 바로 그 故 요아힘이 故 루
빈스타인의 재능을 알아보곤 음악교수였던 故 칼 하인리
히 바르트를 소개시켜 주면서, 故 루빈스타인은 본
격적으로 피아노를 배울 수 있었다고 한다.
1,900年, 베를린에서 데뷔무대를 가진 후 1,904年에 파리로 건너간 故 루빈스
타인은, 바로 그 곳에서 프랑스 음악의 대가들을 만나게 됐었다 한다.
즉 인상주의 작곡가였던 故 모리스 라벨을 비롯하여, 프랑스 바
이올리니즘의 상징적 존재인 故 자크 티보 등이었었다.
그리하여 故 루빈스타인은, 이들과 친분을 다질 수 있었고 또
한 음악적으로 한층 더 성숙할 수 있는 계기가 됐었다.
그리고 그는 1,906年에, 뉴욕의 카네기 홀에서 데뷔무대를 가졌고, 이후에도
미국에서 몇 번의 공연을 더 가졌었으나, 만족할 만한 것은 전혀 아니
었고, 또한 그에게 일신의 성공을 안겨줄 만한 것 역시 아니였었다.
해서 그는 항상 빚에 쪼들려 살았고, 연주회가 없는
날엔 끼니도 굶는 날이 허다했었다 한다.
그리고 이는, 그의 게으르고 · 대책없는 낙천적인 성격과, 그 성
격에서 비롯된 무절제한 생활에 기인되기도 했었다 한다.
헌데 한 번은, 이런 일도 있었다 한다.
故 루빈스타인이, 스무 살 때였던 1,907年에 베를린의 한
호텔 방에서 자살을 시도했던 적이 있었다고 한다.
왜냐하면, 천지에 깔린 빚쟁이들 때문에 항상 우울한 생활을 근근이 이어가던 故 루빈스
타인이 뭔 생각이 들었던지 수건에 목을 매어 자살을 시도했었으
나, 그만 그 수건이 故 루빈스타인의 몸무게를 이겨내지 못
해 ‘ 쿠웅 ~ ’ 소리를 내며 자빠지고 말았었다 한다.
故 루빈스타인은, 훗날 자서전에서 이 사건을 두고 ‘ 엄청
웃겼고 · 어리석었던 일 ’ 이라고 회고했었다고 한다.
하지만 이 웃기고 · 어리석은 에피소드 때문에, 故 루빈스타인은 자신을 더욱 더 소중
하게 돌아보며, 앞으로 위대한 예술가가 되겠다는 다짐을 할 수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이 다짐 때문에, 그는 20세기를 넘어 21세기를 사는 이 세상의 수많은 사람
들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 부드러운 故 쇼팽을 들을 수 있게 된 거였었다.
그리고 故 루빈스타인은, 전쟁에도 참전했었다.
1차 대전 중엔, 통역관으로 근무하면서(故 루빈스타인은, 확실히 천재 중
의 천재였었다. 왜냐하면, 그는 8개 국어를 매우 능숙하게 구사할
수 있었으니까) 또한 군인들을 위한 위문공연을 많이 다녔
었는데, 이때 같이 군에서 복무했던 사람이, 바로
이자이 콩쿨로도 유명한 바이올리니
스트였던 故 유진 이자이였었다.
이처럼 故 루빈스타인이 살아냈던, 인생의 궤적을 쭉 살펴보면 예
술가 특유의 완벽주의를 추구하는 괴벽이랄지, 아니면 모
난 성격이라기 보다는 어딘가 좀 빈 듯하고, 그렇게
좀 빈 듯한 성격과 인품 속에서 인간적인 면모
를 많이 발견할 수 있다는 거였었다.
그리고 이와 같은 인간적인 면모는, 그의 손가락들을
통해 피아노 연주 그대로 전사(轉
그리고 또 故 루빈스타인의 연주는, 같은 시대를 살았던 그의
라이벌이었던 故 호로비츠와는 달라도 너무 달랐었다.
즉 故 호로비츠의 연주가, 천둥번개를 동반한 폭풍우라면 故 루빈스타인
은 자연에 생명력을 불어 넣어주는, 따스한 미풍과도 같았었다.
Jazz Version
피아니스트 : 故 아르투르 루빈스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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