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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 모짜르트(Mozart) - 세레나데 제 7번 D장조 K 250, 하프너

Classic Music

by tl3659\0\0 2018. 3. 28. 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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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zart im Medaillon, sw, Silberstiftzeichnung von Doris Stock. Das letzte Porträt. Dresden, April 1789. Original war seit 1945 verschollen (die Zeichnung wurde 2005 von der Stiftung Mozarteum erworben). © Mozart im Medaillon, sw, Silberstiftzeichnung von Doris Stock. Das letzte Porträt. Dresden, April 1789. Original war seit 1945 verschollen (die Zeichnung wurde 2005 von der Stiftung Mozarteum erworben).

 

故 모짜르트 - 세레나데 7D장조 K 250, 하프너

Serenade No 7 in D major K 250, Haffner

연주 : 카펠라 이스트로폴리타나 실내악단

바이올린 연주 : 타카코 니시자키

 

 

 

故 모짜르트의 세레나데

 

故 모짜르트가 쓴 13곡의 세레나데 중에서, 규모가 가

크고 · 곡이 바로 이 ‘ 하프너 세레나데 ’ 이다.

 

모짜르트의 관현악 곡으로서는 초기에 속하는 작품인데, 20세인 1,776

 잘쯔부르크의 명문이었던 하프너(S. Haffner) 일가의 청탁을 받곤

, 그 집 딸인 엘리자베트의 결혼 축하 음악으로 작곡됐었다.

 

그래서 ‘ 하프너 ’ 라고 불리는데, 나중에 교향곡 ‘

프너 ’ 를 의도한 것은 아들 대()이다.

그리고 이 곡은, 8개의 악장으로 된 장대한 작품으로

, 전곡을 연주하는 데는 1시간 가까이 걸린다.

 

그런데 이 곡이 작곡될 무렵에는, 세레나데같은 사교음악은 전

곡이 단번에 연주되는 것은 아니고, 듣는 사람들이 지루

하지 않도록 적당히 쪼개서 연주했었던 모양이다.

 

또 이 곡이, 당시로서는 비교적 규모가 큰 악기 편성인 ‘ 클라리넷과 팀파니가

2관 편성 ’ 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 이유는 하프너 집안이 큰 재산가

였고, 직속 악사의 인원수가 많았던 때문이 아닌가 추측된다.

 

전체적으론, 화촉의 식전에 합당할 만큼 화려하게 꾸며졌고, 특히

2악장에서 제 4악장까지는 바이올린 협주곡의 형식으

되어 있어 화려한 아름다움이 더욱 더 강조된다.

 

또한, 3 · 5 ·7악장과 메누엣을 제외한 나머지 악

은 템포가 빠른 부분과 느린 부분을 교대로 배열함

로써 전체적인 콘트라스트를 돋우고 있다.

 

실내악단, Capella Istropolitana

 

카펠라 이스트로폴리타나는, 변함없는 15명의 스트링으로 숙련된 앙상블을 이

, 슬로바키아에서의 연주는 물론 유럽과 미국 등지에서의 연주로 이

명성을 떨치고 있으며 와이드한 레퍼토리로 영역을 넓히고 있다.

 

슬로바키아의 수도인, 블라티슬라바의 문화적인 수준을 더 높이기 위해 1,9

91年 시 정부로터 카펠라 이스트로폴리타나의 프로패셔날 앙상블

을 블라티슬라바 내쇼날 챔버 오케스트라로 지정했었다.

 

일본 출신의 바이올리니스트, Takako Nishizaki

 

어린 시절에, 타카코 니시자키(Takako Nishizaki)는 ‘ 스즈키 메소

(Suzuki Method) ’ 의 창시자인 부친 신이치 스즈키(Sh

inichi Suzuki)로부터 바이올린을 사사받았었다.

 

그녀는, 일본은 물론 세계 38개국에 널리 보급되어 있고 미국에서만 30

명의 어린이들이 ‘ 스즈키 메소드 ’ 시스템에 의해 바이올린과

아노를 배우고 있는 스즈키 코스를 최초로 이수한 학생

로 아홉 살 때 이미 강습 자격증을 취득했었다.

 

그녀는, 다섯 살 때부터 대중 앞에서 연주를 시작했으며, 열살이 되기 전엔

아이작 스턴(Isaac Stern)과 말콤 사전트 경(Sir Malcolm Sarg

ent)같은 아티스트들과 협연했었고, 프랑스 저술가인

지 뒤아(Georges Duhamel)은 일본에 관한

, 타카코 니시자키에 대해 저술했었다.

 

그 후에 그녀는, 도쿄 토호 예술학교(Toho Conservatory)의 브로더스 (B

roadus Erle)과 히데오 사이토(Hideo Saito)에게서 사사받았었다.

 

1,962미국으로 건너간 그녀는, 예일 예술학교에서 브로더스 얼에게, 리어

예술학교에선 요제프 푸쉬(Joseph Fuchs)에게 사사받으며, 루이

스 퍼싱거(Louis Persinger)에게서는 클래식 소나타를,

리소트(Aldo Parisot)에게는 챔버 음악을 사사받았다.

 

줄리어드에 다니는 동안 타카코 니시자키는, 프리츠 크라이슬러 장학생(Fritz

Kreisler Scholarship)으로 선발돼, 위대한 바이올리니스트로 확

입지를 세워, 앨리스 툴리(Alice Tully)의 후원을 받았었다.

 

그러면서 그녀는 1,964年, 레벤트리트 국제 경연대회(Leventritt Internatio

nal Com petition)에서 1위인 이작 펄만(Itzhak Perlman) 다음

2위를 상했으며, 1,969年 줄리아드 콘체르토 경연대회(Juilli

ard Concerto Competition)에선 1위를 수상했었.

 

그 때 그녀는, 노부코 이마이(Nobuko Imai)와 함께 故 모짜르트 교향곡을 연주했었.

그리고 레벤트리트 국제 경연대회로 유명해진 그녀는, 먼저 미국에

, 그 다음에는 세계적으로 성공 반열에 오르게 됐었다.

 

 

 

전곡, 이어 듣기

 

 

 

 

아티스트 사진

 

Takako Nishizaki

 바이올리니스트, 타카코 니시자키

PHOTO: elpiano.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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