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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 채동선 - 그리워

한국 가곡

by tl3659\0\0 2018. 2. 6. 0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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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 채동선 - 그리워 · 33

작시 : 故 노산 이은상 · 작곡 : 故 채동선

노래 : 홍혜경

 

 

 

그리워 · 그리워, 찾아와도

그리운 옛님은, 아니 뵈네

들국화 애처롭고

갈꽃만 바람에 날리고

마음은, 어디고 붙일 곳 없어

먼 하늘만, 바라본다네.

 

눈물도 웃음도, 흘러간 세월

부질없이 헤아리지 말자

그대 가슴엔, 내가

내 가슴엔, 그대 있어

그 것만 지니고, 가자꾸나

그리워 · 그리워, 찾아와서

진종일, 언덕길을 헤메다 가네.

 

가곡, 그리워

 

이 곡은, 1,933年 작곡돼 故 채동선의 가곡집에 수록돼 있다.


원래 이 곡은, 정지용의 시(詩)인 ‘ 고향 ’ 에 곡을 붙인 거였는데, 정지용이

인이란 낙인이 찍혀 그 고향이란 시가 금지되, 훗날 故 박화목의 ‘ 망

으로 개사돼 불리게 됐었으나, 故 채동선의 유족들이 ‘ 故 이

상 ’ 시인에게 다시 가사를 의뢰해, 바로 이 故 이은

의 ‘ 그리워 ’ 가 탄생된 것이라고 한다.

 

작곡가 겸 바이올린 연주자, 故 채동선(蔡東鮮)

 

그는, 1,901年 전라남도 벌교에서 태어나 1,953年 피난지였던 부산에서 53

기로 세상을 떠난 故 채동선은, 암울했던 일제의 압박 속에도 

코 굴함이 없이, 한민족의 정신을 자신의 작품속에 담아냄으로

써 민족혼의 불길을 드높인, 우리 시대의 선각자였었다.

 

그는, 이 나라의 대표적인 서정시인이었던 故 정지용과 친분을 두텁게 하면,

가곡의 대부분을 故 정지용의 시로 만들어낸 故 채동선은,

시가 출판 금지됨으로써 故 채동선의 가곡에서도 故 정용의 

를 모두 바꾸어야 하는 수난을 당하기도 했었지, 그가 

긴 가곡들 그 중에서도 故 정지용 시에 한 가

인 ‘ 고향 ’ 은 영원히 우리 곁에 남아, 

은 감동을 나누어 주고 있다.

 

고향에 · 고향에 돌아와도, 그리던 고향은 아니러뇨 , 시작되

고향 ’ 제하에서 뿐만 아니라 지금까지도 잊

냈던 고향의 품안을 다시 한 번 음미하게 해

니라,제 들어도 조국을 생각케

강한 메시지를 지니고 있다.

 

그는, 작곡가이기 전에 바이올리니스트였는데 와세다 대학 영문과를 다닐 때에도 오히

려 바이올린에 더 빠져 있었고, 결국 졸업 후에는 독일로 유학길에 올라 바이올

을 전공함으로써, 초창기 이 나라의 현악 발전에 크게 공헌을 했었다.

 

작곡가로서의 故 채동선의 작품은, 그리 많은 편은 아니지만 가곡의 주제는 서정

성과 조국애로 뭉쳐 있고, 해방 후에는 국민들의 의식을 개조하위해

노래 · 무궁화의 노래 등 국민 개창운동을 위한 노래들을 만

들어 한민족의 얼을 드높이는 일에 심혈을 기울였었다.

 

헌데 故 홍난파가 쓴, 故 채동선 귀국 독주회에 대한 당시의 글을 보면 故 채

동선의 연주력이 상당한 수준이었음을 알게 하는데, 1,929

1,939年까지 사이에 4회의 독주회를 갖기도 했었다.

 

그는, 일제의 악랄한 감시 하에서도 언제나 한복을 입었는가

, 집의 문패도 한글로 써 붙임으로서 끝까지 한국

을 저버리지 않는 강인함을 보여주었었다.

 

그리고 해방 후의 그는, 음악계의 재건을 위해 고려음악 협회장 ·

려 작곡가 협회장 등을 역임했었, 서울시 문화위원 · 문교부

예술위원 · 예술위원 등을 역임해, 해방 후 초창기

이 나라 음악계에 중추적 역할을 감당했었다.

 

시인, 故 이은상(李殷相 · 1,903 ~ 1,982)

 

그는, 경성 연희전문학교 문과와 일본 와세다 대학교 사학과를 졸업했었다.

그 후의 그는, 경희대학교 대학원 국어국문학과에서 문학 석사 및 박사

위를 받았고, 연세대학교에서 명예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었다.

  

그리고 그는, 경성 이화 여자전문학교 · 서울대학· 영남대학교 교수를 지냈었다.

 광복 전의 그, 국민 문학파의 일원으로 활약했었고 ‘ 조선 어학

회 사건 ’ 으로 일본 경찰에 체포돼 투옥되기도 했었다.

 

그는, 그 뿐만 아니라 ‘ 조선 문단 ’ 지의 초기부터 꾸준히 작품 활동을 했었다.

헌데 그의 시조는, 조국과 국토 산하에 대한 예찬 · 전통적 동양

정서 · 불교적 무상관 등이 얽혀 바탕을 이루고 있다.

 

특히 그는, 조국과 민족에 대한 사랑은 거의 신앙적 집념으로 나타났었다.

그럼과 동시 그는,이한 언어가 자연스럽게 유출되는 즉흥성은, 넓은 독자층

형성하여 시조 부흥을 이룩한 공로자의 한 사람이 되기에 충분했었다.

 

그러면서 광복 후의 그, 언론 · 학술 · 사학 방면의 저술을 많이 남기기도 했었다.

그는 , 국토를 편답하면서 쓴 기행문도 많고, 충무공 연구가로도 이름이 높다.

 

그리고 또 그는 1,963, 민주공화당이 창당될 때 ‘ 창단 선언

문 ’ 초안을 작성하기도 했으며, 가곡 ‘ 가고파 ’ 의

자로서도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기도 하다.

 

 

 

 


소프라노, 조정순

 

 

  

소프라노, 이현정

 

 

 

 시인, 이은상

 

채동선

작곡가,채동선 

소프라노, 홍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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