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 김동진 - 가고파 · ’80
정규 앨범, 한국 가곡 경음악 선집 3의 수록곡
작시 : 故 이은상 · 작곡 : 故 김동진
노래 : 박인수
내 고향 남쪽바다, 그 파란 물 눈에 보이네
꿈엔들 잊으리요, 그 잔잔한 고향 바다
지금도 그 물새들 날으리, 가고파라 · 가고파
어릴 제 같이 놀던, 그 동무들 그리워라
어디 간들 잊으리요, 그 뛰놀던 고향 동무
오늘은 다 무얼 하는고, 보고파라 · 보고파.
그 물새 · 그 동무들, 고향에 다 있는데
나는 왜 어이타가, 떠나 살게 되었는고
온갖 것 다 뿌리치고, 돌아갈까 · 돌아가
가서 한데 얼려, 옛날 같이 살고 지고
내 마음 색동 옷 입혀, 웃고 · 웃고 지내고자
그 날 그 눈물 없던 때를, 찾아가자 · 찾아가.
작곡가, 故 김동진(金東振)
故 김동진은 1,913年, 평남 안주에서 목사의 아들로 태어나 어
려서부터 교회에서 찬송가 등으로 서양음악을 접했었다.
故 김동진은, 평양 숭실중학교를 다니면서 D. R. 말스베리에게 바이올린
을 배우고, 5학년 때 ‘ 봄이 오면(김동환 작시) ’ 을 작곡했었다.
그가, 숭실전문학교 문과에 다닐 때 故 양주동에게 배운 이은상의 시(詩) ‘ 가고
파 ’ 를 비롯해 ‘ 발자국 · 뱃노래 ’ 등을 작곡해, 재능을 인정받았었다.
그리고 그는 1,936年, 숭실전문학교 졸업 후 일본 도쿄음악학교에서 공
부하고, 귀국 후 1,939年에는 만주 신경교향악 단원으로 일하
다가 해방 직후 중앙 교향악단을 조직해 활동했었다.
그리고 또 그는, 평양 예술문화 협회에서도 주도적
으로 활동하다가 해산되면서 월남했었다.
6 · 25 전쟁 때의 그는, 육군 종군작가 단원으로 활동하면서 수십 곡의 군
가를 작곡했었고, 휴전 후 서라벌 예술대학에 있으면서 국방부 정
훈국 주최의 연주회에서 ‘ 조국찬가 ’ 를, 정부수립 경축 음
악회에서는 ‘ 승리의 길 ’ 을 작곡, 지휘했었다.
1,963年부터의 그는, 경희대학교 음악대학 교수를 지냈고 1,967年 음악
대학장을 지냈으며 1,978年 정년퇴임, 그 후 명예교수가 됐었다.
경희대 재직시 그는, 개교 25주년 기념 칸타타로 ‘ 목련화 ’ 를 발표했었다.
그리고 1,979年부턴, 신창악 연구회를 조직해 활동했었다.
그가 창안한 신창악은, 한국 가곡이 갖고 있는 형식의 단순성 · 감상성과 ·
선율과 · 가사의 언어적 결합의 미비점을 극복하면서, 판소리 창법을
서양음악 기법과 발성으로 노래할 수 있게 한 성악음악이다.
신창악으론, 심청전 · 춘향전의 아리아를 작곡했었다.
주요작품을 살펴보면, 가곡으론 ‘ 봄이 오면(1,931) · 가고파(1,933) · 내 마음(1,940) · 수
선화(1,941) · 목련화(1,974) ’ 등이 있고, 기악곡으론 ‘ 양산도를 주제로 한 바이올
린 협주곡(1,938) · 가야금 협주곡(1,959) ’ 과, 교성곡으론 ‘ 조국찬가(1,95
5) · 승리의 길(1,958) ’ 과, 오페라로는 ‘ 심청전(1,977) ’ 등이 있다.
하지만 그는 2,009年 7月 31日, 영원히 귀천했었다.
작시자, 故 노산 이은상
이 가고파의 바다는, 노산 이은상이 태어나 살았던 마산 앞바다인 합포만(合浦
灣)으로, 이 시는 1,932年 그가 이화여전 교수로 재직할 때 씌어졌었다.
그런데 그 다음해에, 故 김동진이 평양 숭실전문대 문과에서 故 양주동에게 이 시를
배우면서, 갑자기 악상이 떠올라 단숨에 4장까지 작곡을 했었다 한다.
그리고 40年 후인 1,973年에, 나머지 6장을 완성했었다 한다.
그리고 이 가고파는 1,933年의 작곡 이후, 평양 신암교회와 신정교회에
서 불리다가, 테너 故 이인범(李仁範)에 의해 널리 소개됐었다.
테너, 엄정행
테너, 박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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