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 장일남 - 기다리는 마음
작곡 : 故 장일남
작시 : 故 김민부
일출봉(日出峰)에, 해 뜨거든
날 불러주오
월출봉(月出峰)에, 달 뜨거든
날 불러주오.
기다려도 · 기다려도
님 오지 않고
빨래 소리 · 물레 소리에
눈물 흘렸네.
봉덕사(奉德寺)에, 종 울리면
날 불러주오
저 바다에, 바람 불면
날 불러주오.
기다려도 · 기다려도
님 오지 않고
파도(波濤) 소리 · 물새 소리에
눈물 흘렸네.
요절한 천재 시인, 故 김민부
故 김민부는, 1,941年 3月 14日 부산 동구 수정동에서
김상필씨와 신정순씨의 장남으로 태어났었다.
그는, 범일동에 위치한 성남 초등학교 때 두 차례나 월반을 했고, 중
학 입시에선 부산 지역의 최고 점수를 받은 수재였었다.
그러나 그는, 부산 중학교에 입학해선 본명 병석(炳錫)을 민부(敏夫)로 개명했었다.
그리고 부산 중학교 당시의 그는, 초량동 산동네의 좋아하는 여학생을 찾아가 하루 종
일 그녀의 집 앞에서 진을 치기도 했던, 꽤 낭만적인 소년이었었다고 한다.
하지만 부산 고등학교 입학 후의 그는, 부산 고등학교 교지인 ‘ 청
조 ’ 를 편집하고, 부산 시내 고등학교 문학 대표 모임인
‘ 죽순 ’ 의 동인에서도 주도적 역할을 했었다.
그리고 그는 1,956年, 고등학교 1학년의 신분으로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 석류 ’ 로 입선했고, 고 2땐 첫 시집인 ‘ 항아리 ’ 를 펴냈었다.
고 3때의 그는, 1,958年 1月 한국일보 신춘문예에서 시조 ‘ 균열 ’ 이 당
선되면서, 본격적으로 세상에 그의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었다.
헌데 그의 첫 신춘문예 입선작이었던, 석류 또한 故 장일
남이 곡을 붙여, 가곡으로 널리 불려지고 있다.
그렇게 학창 시절 문학에 빠져 있던 그는, 제대로 입시 준비를 하지 못해 서울대학교
상대 입시에서 낙방하게 됐었고, 서라벌 예대 문예 창작과에 입학해, 1,96
0年 졸업 후 다시 동국대 국문학과로 편입해 1,962年에 졸업했었다.
그리고 그는 1,962年, 부산 MBC에서 제 1기 PD로 입사해
‘ 자갈치 아지매 ’ 라는 프로그램을 기획 · 연출했었다.
1,964年부터 시작된 자갈치 아지매는, 유신 말기(1,978年 10月 ~ 80年 3
月)였던 1年 6개월간 폐지되기도 했지만, 국내 최장수 프로그램으
로선 자갈치 아지매가 부산의 대표적인 장수 프로그램이다.
그러다 그는 1,964年, 이영수와 결혼 후 다음 해 상경하여 방송작가 생활로 활동
하던 차, 작곡가인 故 장일남의 제안을 받곤 가곡에 가사로 쓰일 시를 한
편 쓰게 됐었는데, 그것이 바로 이 ‘ 기다리는 마음 ’ 이었었다.
그리고 1,968年, 그의 두 번째 시집인 ‘ 나부와 새 ’ 가 간행됐었다.
하지만 순수문학을 지향하던 그는, 방송작가로 활동하
는 자신에 대해 깊이 고뇌하기 시작했었다.
그러나 1,970年, 김자경 오페라단의 오페라인 ‘ 원효대사 ’ 의 대본을 집
필하는 등 다양한 활동을 하던 그는, 1,972年 10月 27日 토요
일, 서울 갈현동의 자택 화재로 목숨을 잃게 됐었다.
화마에 휩싸인 그를 끌어내던 그의 부인은, 얼굴에 큰 화
상을 입곤 서울 적십자 병원으로 이송됐었다.
그러나 참 안타깝게도 故 김민부 시인은, 이틀 뒤에 숨졌었다.
그의 나이, 고작 서른 한 살 때에 … .
그리고 故 김민부의 미망인인 이영수 여사는, 얼굴에 큰
화상을 입어 지금까지도 고통받고 있다고 한다.
헌데 참 공교롭게도 2,004年, 故 김민부 시인의 부모
들 역시 화재로 세상을 떠났었다고 한다.
가수, 조영남
테너, 엄정행
바리톤, 노희섭
소프라노, 조수미
시인, 故 김민부
작곡자, 故 장일남
故 변훈 - 떠나가는 배 (0) | 2018.01.16 |
---|---|
故 변훈 - 귀천(歸天) (0) | 2018.01.14 |
故 변훈 - 명태 (0) | 2018.01.12 |
故 장일남 - 비목(碑木) (0) | 2018.01.08 |
최영섭 - 그리운 금강산 (0) | 2018.01.0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