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영섭 - 그리운 금강산
작시 : 故 한상억
작곡 : 최영섭
누구의 주재(主宰)련가, 맑고 고운 산
그리운 만이천 봉, 말은 없어도
이제야, 자유만민 옷깃 여미며
그 이름 다시 부를, 우리 금강산
수수 만년 아름다운 산, 못 가 본지 그 몇해
오늘에야 찾을 날 왔나, 금강산은 부른다.
비로봉 그 봉우리, 짓밟힌 자리
흰구름 솔바람도, 무심히 가나
발 아래 산해 만리, 보이지 마라
우리, 다 맺힌 원한 풀릴 때까지
수수 만년 아름다운 산, 못 가 본지 그 몇해
오늘에야 찾을 날 왔나, 금강산은 부른다.
그리운 금강산의 탄생
우리나라의 3대 가곡(가고파 : 이은상 시 김동진 곡 · 비목 : 한명희 시 장일남
곡)의 하나인, 바로 이 ‘ 그리운 금강산 ’ 은 1,962年 6 · 25전쟁 12
주년 기념식을 위하여, 조국 강산을 소재로 한 가곡을 만들
어 달라는 교육부의 청탁으로 작사 · 작곡된, 교
향악적인 합창 모음곡 중의 한 곡이다.
이 합창 모음곡은, 서곡 · 간주곡 외에 합창 또는 독창곡으로서 산을 주제로 한 3곡 · 강을 주
제로 한 3곡 · 바다를 주제로 한 3곡으로 엮어졌는데, 그리운 금강산은 바로 이
모음곡 제 2 부에 처음으로 나오는, 독창과 합창곡으로 되어 있다.
나라 땅이 둘로 갈라져, 갈 수 없는 아름다운 금강산을 그리워하는 내용이다.
이 곡은, 작곡자 최영섭의 대표작이라고도 할 수 있다.
1,961年 8月 18日에 완성된 이 곡은, 1,961年 9月 7日 KBS 교향악단의 연주
로 녹음돼 라디오로 전파됐었고, 1,962年 10月 20日 국립극장에
서 초연된 칸타타 ‘ 아름다운 내 강산 ’ 에 포함돼 있다.
칸타타란, 성악곡의 한 형식으로 이탈리아어의 Cantare(노래하다)에서 파생된 말이다.
보통, 독창 · 중창 · 합창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리고 이 원곡의 가사는 ‘ 누구의 주재(主宰) ’ 였으나, 인쇄 과정에서의 실수로 ‘ 누구의
주제(主題) ’ 로 잘못 표기됐으나, 원뜻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는 이유로 수
정하지 않은 채 그대로 전해졌으며, 1,972年 남 · 북 적십자 회담을 계
기로 작사자가 직접 일부 가사를 수정하여 ‘ 더럽힌 지 몇 해 ’
는 ‘ 못 가 본 지 몇 해 ’ 로, ‘ 우리 다 맺힌 원한 ’ 은
‘ 우리 다 맺힌 슬픔 ’ 으로, ‘ 더럽힌 자리 ’
는 ‘ 예대로인가 ’ 로 바뀌였었다.
즉 다시 한 번 더 설명해, 이 곡의 작사자인 故 한상억은 원래 ‘ 관
장하다 · 주장하여 ’ 라는 뜻인 주재(主宰)라고 썼었다.
과연 그 어느 누가, 이렇게 아름답고도 · 고운 명산을 만들어냈느냐는 뜻이다.
그러나 인쇄 과정의 실수를 양해하여준 관계로, 그 이후
‘ 주제(主題) ’ 로 표기되기 시작했었다.
하지만 작사자의 의도에 맞게, 누구의 주재(主宰)련가로 부르는 것이 바른 표현이다.
가곡이란?
가곡이란, 그 나라 민족 정서와 예술성이 짙게 밴 고유의 성악곡을 말한다.
모국어로 된 시를, 노래말로 한다는 점에서 세계적으로 몇 나라 안되는 희귀한 전통이다.
한국 가곡이, 독일 · 이태리 가곡과 구분되는 것은, 한국어 · 한국 시를 노래말로 한다는 점이다.
비록 서양 음악의 구조와 원리를 따랐지만, 외형미를 추구하는 서양음악과는 달리 우
리 가곡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