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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군의 종군 강제 위안부 피해자들의 증언 · 사진들 9

위안부 증언·사진

by tl3659\0\0 2017. 7. 4. 0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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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군의 종군 강제 위안부 피해자인, 故 문필기 할머님의 흉상

  

일본군의 종군 강제 위안부 피해자들의 증언 · 사진들 9

 

 

 

故 문필할머님의 증언

 

 내가 열여덟 살 되던 해인, 1,943年 가을이었다

그때 나는 집안일도 고되고, 아버지가 하고 싶은 공부도 못하게 하였

으므로, 집을 떠나 공부도 하고 · 돈도 벌고 싶었었다.

 

며칠 후, 저녁 무렵에 일본인 앞잡이 노릇을 하던 50대 아저씨가 찾아와,

잠깐 다녀올 데가 있으니 나오라고 해서 부모 몰래 나갔었다

그랬더니, 우리 집에서 조금 떨어진 한적한 곳에 짐 싣는 트럭을 세워 놓고 있었다.

 

헌데 거기에는, 우리 동네 파출소에 근무하는 일본인 순사 다나카도 와 있었다

그 두 사람은, 나를 트럭에 태워 부산으로 데려 갔었다

집에서 입고 있던 검은 치마와 저고리를 그대로 입은 채, 그 아무

준비도 없이 갑자기 그들을 따라가게 됐었다.

 

위안소에는, 30명 가량의 위안부들이 있었다

 그들은, 모두 조선인 위안부들이었다

주로 이북 여자들이 많았고, 그 외 부산 사람들도 있었다

위안부들은 대개, 18 ~ 19세 가량 됐었다

위안부들 중에는, 학교를 다니다가 끌려온 사람도 있었다.

 

처음 위안소에 도착하자, 성병이 있는지 · 처녀인지 등을 검사했었다

그 후 군의는, 나에게 몇 달 동안 간호부 일을 시켰었다

그래서 난, 부상병의 상처를 소독하고 · 붕대로 감는 일을 배워서 했었

그리고, 병원의 빨래도 했었다

낮에는 병원 일을 하고, 밤에는 군의가 나에게 자러 왔었다.

 

나는, 그 군의에게 처음으로 정조를 빼앗겼었다

여자에게 정조가 중요하다는 말을 듣고 자랐고, 내 자신도 그렇게 생각

했으므로 내 몸을 버렸다는 생각에 많이 울었었다.

 

간호부 일을 하는 동안은, 군의 외에 다른 군인들은 상대하지 않았었으,

몇달 후에는 간호부 일을 그만 두게 하고, 위안부 짓을 시켰었다

그러나 위안부 짓을 하면서도, 부상자들이 많을 때는 가끔

씩 병원에 가서 간호부 일을 해야만 했었다.

 

위안소에 있을 때, 월경을 시작했었다

처음에는 내가 병에 걸린 줄 알고 깜짝 놀랐으나, 기요코 언니가 가제로

생리대를 만들어 주고 · 어떻게 해야 하는지 가르쳐 주었었다

군인들이 많은 토요일 · 일요일에는, 월경 중에도 군인들을 상대해야만 했었다.

 

군인들은 위안소에 왔다 갈 때, 손바닥 반 만한 크기의 누런색 돈표를 내고 갔었ㅆ다

장교는, 사병보다 더 많은 액수의 돈표를 냈었다

 어떤 군인은, 돈표를 안 내려는 이도 있었다.

 

규정 시간을 넘긴 사람에게는, 돈표를 더 내놓으라고 하기도 하

, 어떤 경우는 불쌍해서 그냥 내보내기도 했었다

돈표를 받으면, 우리가 갖지 않고 우리를 관리

하던 조선인 남자에게 갖다 주었었다.

 

그러면 그 개수를 세어서, 위안부 각자가 하루 몇 명의 군인들을

받았나를 막대그래프로 크게 그려 벽에 붙여놓았었다

나는, 다른 위안부들보다 군인을 적게 받는 편이어서 자주 혼이 났었다.

 

군인이 적은 평일은 열 명 내외를 상대했었, ·

요일은 40 ~ 50명을 상대해야만 했었다

그러나 우리는, 돈표를 갖다 주기만 했지 돈은 한 푼도 받진 못했었다

저금을 한 적도 없고, 돈을 내놓으라고 항의한 적도 없었다

군인들이 와서, 따로 돈을 주고 간 적도 없었다.

 

 

 

 

 

 

문필기 · 이옥선 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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