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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군의 종군 강제 위안부 피해자들의 증언 · 사진들 5

위안부 증언·사진

by tl3659\0\0 2017. 5. 12. 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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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 김순덕, 일본군의 종군 강제 위안부 피해자 ’ 할머님의 그림 - 못 다 핀 꽃 

일본군의 종군 강제 위안부 피해자들의 증언 · 사진들 5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어딘가로, 끌려가기를 기다리는 여성들

 

전신 나체로, 옷을 벗겨 놓고 치욕스런 사진을 찍고 있다

 

 

독도 영유권 분쟁의 파장이 커져 가는 가운데, 2,008 7 23 오후

서울 일본 대사관 앞에서 열린 823번째 ‘ 위안부 문제 해결

위한 정기 수요집회 ’ 에 참석한, 정대협 소속

머님이 연극 공연을 보며 활짝 웃고 있다.

 

일본군의 종군 강제 위안부 피해자인, 황금자 할머님

 

 

황금자 할머님(82)이, 강서 구청에서 열린 장학

기탁식에서, 수혜 학생들을 격려하고 있다.

 

황 할머님은종군 위안부 생활안전 지원금 등을 아껴 모은

4,000만원을 강서구 장학회에 기탁했었다.

 

 

“ 위안부가 아닌 피해자라 불러야, 성은 ‘ 위 ’ 씨고 이름은 ‘ 안부 ’

아닌, 내 이름을 걸고 당당히 인터뷰하고 싶었다.

 

미국 의회 사상 최초로 열린 일본군 위안부 청문회에증언자로 나가 일본의

만행을 전 세계에 알리며 주목받았던, 故 이용수 할머님.

 

EBS는 ‘ 시대의 초상 ’ 이란 프로그램을 통해, 이용수 할머님의 한맺힌 과거를 조명했었다.

방송사 측은, 내레이션 없이 이용수 할머님의 목소리만으로 50분 동안 진행하는 프로그램을 제작했었다.

 

이용수 할머님은, 자신을 ‘ 위안부 ’ 라 부르는 사람들 앞에서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고 했었.

내가 일본군 따라 다니면서 즐겁게 해 준 ‘ 종군 위안부 ’ 가 아니고, 일본군에게 강제로

끌려간 ‘ 위안부 피해자 ’ ” 라며, 위안부 호칭에 대한 문제를 제기했었다.

 

이용수 할머님은, 자신을 ‘ 위안부 ’ 라 부르는 사람들 앞에서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고 했었.

내가 일본군 따라 다니면서 즐겁게 해 준 ‘ 종군 위안부 ’ 가 아니고, 일본군에게 강제로

끌려간 ‘ 위안부 피해자 ’ ” 라며, 위안부 호칭에 대한 문제를 제기했었다. 

 

이용수 할머님은, 16살 때인 1,94410月 저녁에 집밖에 나갔다가, 영문도

모른 채 대만에 있는 일본군 위안소까지 끌려갔었다고 한다.

 

그는 당시 “ 엄마, 살려 달라! ” 고 울부짖었던, 그 때의 일을 회상하면 지금도 눈물을 감추지 못한다고 한다.

결혼도 하지 않은 채 과거를 45年 동안 가슴에 묻고 살았던 그녀는, 故 김학순 할머니가 1,9

91年 최초로 일본군 위안부였다고 증언한 후 자신도 피해자로 신고했었다고 한다.

 

제작진은, 종전 후 반세기가 지나도 여전히 아물지 않고 있는 일본군의 종군 강제 위안부 피해자

할머님들이 지닌 과거, 그리고 현재의 아픔이 한 피해자 할머님의 진솔한 인터뷰를

시청자들에게 전달되기를 바란다는, 그 기획 의도를 밝혔었다.

 

 

피해자를, 위안부라 하지 마라 ”

 

EBS 특집 앙코르 시대의 초상 · 수요시위 ’ 17년째인, 이용수 할머님의 인터뷰성 단체 연합

발표한 ‘ 올해의 여성 운동상 ’ 은, 1,992年에 일본군 위안부 문제의 해결을 촉구

시작돼, 800회 넘게 이어져 온 ‘ 수요시위 ’ 에 돌아갔다.

 
지금까지 17년째 줄곧, 수요시위 현장을 지켜 온 ‘ 위안부 피해자 ’ 인

이용수(80) 할머님이, 이 인터뷰 다큐멘터리의 주인공이다.

 

 

길원옥 할머님

일본군의 종군 강제 위안부 피해자인길원옥 할머님

 

일본군의 ‘ 종군 강제 위안부 피해자 ’ 할머님의 모습을 형상화한 조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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