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 드보르작(Dvořák) - 바이올린 협주곡 2악장 가단조, 작품 53
故 Antonín Leopold Dvořák - Violin Concerto In A Minor
Op 53 B 108, II. Adagio Ma Non Troppo
故 드보르작, 바이올린 협주곡 2악장
바로 이 곡은, 故 안토닌 레오폴트 드보르작(Antonín Leopold Dv
ořák · 1,841 ~ 1,904)의 유일한 바이올린 협주곡이다.
이 곡은, 그가 1,879年에 쓰기 시작해 1,880年에 완성시킨 작품이다.
그는 소년 시절부터 바이올린을 배웠으며, 한때 오케스트라에서 비올라를
켰던 관계로 바이올린에 관한 소양을 적지 않게 가지고 있었다.
해서 이 작품에서, 크게 그의 독창적인 경지를 개척하지 못했는지
는 모르나, 보헤미아적인 색채가 농후함을 엿볼 수는 있다.
물론 그는 고전 협주곡의 형식을 따랐고, 오케스트라와 독주
악기와의 교대가 역시 그 유형을 따라 작곡했었다.
하지만 전곡을 통해, 어려운 기교를 구사한 자유분방하고 · 화려한
필치는 그 나라의 국민악파를 대표할 만한 작품이라 하겠다.
그리고 이 작품은, 헝가리가 낳은 당대의 명바이올리
니스트였던 故 요셉 요아킴에게 바쳐져 있다.
따라 이 거장에게, 이미 그는 초고를 통해 수정한 일이 있었다는 것도 후에 알려졌었다.
작곡가, 故 드보르작
그는, 당시 오스트리아 제국의 영토였던 프라하 근교의 시골 마을인 넬라호제베스에
서 태어났는데, 아버지인 프란티셰크 드보르작은 도축업이 본업이기는 했지만
, 치터를 수준급으로 연주하는 아마추어 음악가이기도 했었다고 한다.
그의 아버지는, 아들에게 가업을 잇게 하고 싶었다고 했는데, 실제로
아들 안토닌도 도축업 시험을 무난하게 통과했었다고 한다.
해서 그는, 클래식 작곡가들 중 유일한 도축업 자격증 보유자이기도 했었다고 한다.
하지만 결국 故 안토닌은, 음악을 본업으로 택해 1,857年에 연주실기를 중점적으로 가르
치는 프라하 오르간 학교에 입학해, 바이올린과 비올라 · 오르간 연주법을 배웠었다.
동시에 그는 작곡도 시작했고, 졸업한지 2年 뒤인 스무 살에 첫 현악 4중주를 작곡했었다.
1,860年代 중반의 그는, 갓 설립된 프라하 국민극장의 부속 관현악단에서 비올라 단원으
로 일하기 시작했는데, 이 때 지휘자로 일하고 있던 대선배였던 故 스메타나로부
터 작곡 활동을 본격적으로 해 보라는 권유를 받기도 했었다고 한다.
실제로 故 드보르작은, 이 시기에 두 곡의 교향곡을 쓰는 등 창작 쪽에서도 분발하기 시작했었다.
하지만 그는, 극장에서 주는 월급으론 집세 내기도 빠듯해, 비올라 연
주 외에도 생계 유지를 위해 중상류층 자제들에게 피아노 레슨
을 나가야 할 정도로 현시창인 상태였었다고 한다.
1,873年에 결혼한 뒤의 그는, 박봉과 격무에 허덕였던 극장 악단 연주
자 생활을 청산하곤 프라하의 한 교회에 오르가니스트로 취직했
는데, 여전히 살림살이는 어려운 상태였지만 그나마 봉
급은 약간 더 후한 편이었고, 매일같은 연주 활
동도 없어서 작곡할 시간도 상대적
으로 더 많이 주어졌었다.
해서, 실제로 故 드보르작의 작품들 중 중요한 초기작들
은 대부분 이 해를 전후해 쓰여지기 시작했었다.
I. Allegro ma non troppo
바이올린, 정경화
II. Adagio ma non troppo
III. Finale. Allegro giocoso ma non tropp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