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 줄리오 카치니 - 아베 마리아 · 성모 찬송
소프라노 : 이네사 갈란테(Inessa Galante)
故 Giulio Caccini, Ave Maria
작곡가, 故 카치니
故 줄리오 카치니는 1,551年, 로마에서 테어났었다.
아버지인 故 미켈란젤로 카치니는 목수였는데, 피렌체의 유
명한 조각가였던 故 조반니 카치니의 형이였다.
故 줄리오 카치니는, 일찌감치 음악에 재능을 드러냈으
며 현악 연주자와 성악가로서 각광을 받았었다.
해서 피렌체의 대공이었던, 故 프란체스코 메디치(Francesco Med
ici)는, 소년이었던 故 카치니를 일종의 음악 유학 차원에서
피렌체로 데려와 본격적으로 음악교육을 시켰었다.
피렌체로 유학간, 故 카치니의 한동안의 행적은 잘 알려져 있지 않은데, 아마 음
악 공부와 메디치 가문을 위한 음악활동을 병행했었을 것으로 보인다.
故 카치니가 28세 때인 1,579年 경이 되서야, 메디치 가문의 전속 음악가이
자 성악가(테너)로 활동하고 있던 것이 확인됐는데, 그는 이후에도 계
속 피렌체에 머물면서 피렌체를 대표하는 음악가가 됐었다.
故 카치니는, 성격적으로 출세욕과 야심이 대단했던 것으로 보이며, 이 시기
부터 그는 귀족들의 결혼식 · 종교행사 · 축제 등에서 가수 역할을 도
맡았으며, 특히 오페라의 전신에 해당되는 음악극인 인테르
메디오(Intermedio)에서 주역으로 활약했었다.
한편으로 그는, 피렌체의 예술 애호가였던 故 조반니 데 바르디(Giovanni de’ Ba
rdi)백작의 저택에서 열리는 예술가들의 모임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는데,
이 모임이 바로 피렌체 카메라타(Florentine Camerata)였었다.
이들은 주로, 고대 그리스에서 유행했던 음악을 곁들인 드라마를 이상으로 삼아 극의 내용
과 음악의 일치를 추구했으며, 이를 위해 가사 전달이 어렵고 · 복잡한 다성양식(
polyphony)을 지양하는 대신 단선율로 가사를 노래하고, 여기에 간단한
기악 반주를 곁들이는 모노디(monody) 양식을 발전시켰었다.
노래 · 연주 · 작사 · 작곡 · 음악이론 등, 음악 전반에 모두 뛰어났던 야심가 故 카치니
는, 이 카메라타 모임에서도 중심적인 역할을 하는 한편, 후학 양성에도 힘
을 기울여서 많은 음악 지망생들에게 작곡과 연주를 가르쳤었다.
故 카치니의 제자들은, 이후 이탈리아 각지에 카메라타의 음악철학을 전파
시켰으며, 그 덕분에 故 클라우디오 몬테베르디같은 차세대 음악
가들이 카메라타의 철학을 계승 · 발전시킬 수 있었다.
그러다 1,592年 40줄에 접어든 故 카치니는, 故 조반니 데 바르디(Giov
ann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