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 슈베르트(Schubert) - 피아노 소나타 20번 가장조, D 959
故 Schubert, Piano Sonata No 20 in A major, D 959
피아노 : 故 빌헬름 켐프(Wilhelm Kempff)
故 슈베르트, 피아노 소나타 20번 가장조
바이올린과 비올라 연주에 탁월했었던, 故 슈베르트는 피아노에도 능숙했었다.
따라서 그는, 피아노 소나타 장르에서도 빼어난 작품들을 많이 남겼었다.
故 슈베르트가, 독주 피아노곡을 쓰기 시작한 것은 15살 때인 1,812年 여름부터였었다.
해서 그는, 푸가나 변주곡 · 환상곡 등을 시범적으로 만들어 작곡 공부의 수준을 높여
갔으며, 1,815年경부터 소나타 창작에 열의를 보이기 시작해, 1,817年 봄
부터 여름에 걸쳐 7곡의 소나타에 착수해 5곡을 완성했었다.
그러나 1,818年과 1,819年엔, 4곡을 착수했으나 1곡만 완성했었다.
그러다 그는, 1,825年에 다시 집중해 나머지 3곡을 완성했었다.
그리고 그 뒤에 이어지는 그의 작품들은, 3부작인 19번 C단조(D. 958)와 20번인인 A
장조(D. 959)와 21번인 B플랫 장조(D. 960)는, 즉 ‘ 故 슈베르트 최후의 3
대 소나타 ’ 로 불리는, 이 세 곡은 모두 1,828年 9월에 작곡됐었다.
즉 그가 세상을 떠나기(11月 19日) 두 달 전이라, 그의 유작이 돼버린 셈평이었었다.
헌데 이 3부작에는, 故 베토벤에 대한 추종심이 강하게 나타나 있는 듯 보이지만, 그
러나 그의 작곡 기법에는 이른바 故 베토벤적인 동기 조작에 의한 전개 구
성과는 본질적으로 다른 독창적인 세계가 구성돼 있다.
즉 악상의 돌연적인 변화, 고전적인 형식에는 없는 대범한 조바꿈과, 그것에 의
한 화성적 울림 · 민속적 춤곡을 연상케 하는 다양한 리듬 등은 낭만
주의 피아노 음악의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주었던 것이다.
故 슈베르트는, 진심으로 故 베토벤을 존경했었다.
그는, 故 베토벤의 작품들과 비교해서 자기의 작품들은
즉흥적이고 · 표피적이라고 자평했었다고 한다.
그는, 故 베토벤처럼 복합적이고 · 심층적인 감동을 담은 작품을 써야
한다고, 아니 꼭 쓰고야 말겠다고 다짐하며 노력했었다 한다.
그리하여 그가 남긴 곡이, 병마와 싸워가며 작곡한 마지
막 곡이, 바로 이 세 곡인 피아노 소나타이다.
꺼져 가는 생명의 심지 앞에서, 인간으로서 그리고 예술가로서의 마
지막 갈망을 모두 담아 열정적으로 써낸 작품들인 것이다.
피아니스트, 故 빌헬름 켐프
피아니스트였던 故 빌헬름 켐프는 1,895年, 독일의 브
란덴부르코 근교의 작은 도시에서 태어났었다.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교회의 오르간 주자였고, 삼촌은 에를랑겐 대학의 교회음
악 교수로 활동했던 음악가 집안에서 자란 그는, 어린 시절부터 故 바흐
의 평균율을 외워서 연주하는 등 놀라운 음악적 재능을 보였었다.
그의 놀라운 재능에 감탄한 베를린 음악대학에서는, 9세의 어린 故 켐
프가 대학에 입학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한다.
베를린 음대에서의 故 켐프는, 故 브람스와 친한 사이였던 故 로베르트 칸(Robert
Kahn)과 故 리스트의 제자였던 故 하인리히 바르트(Karl Heinrich Barth
)를 사사하면서, 독일 낭만주의 음악의 정수를 고스란히 전수받았었다.
故 멘델스존 상을 수상하면서, 우수한 성적으로 베를린 음대를 졸업한 그는
1,917年 故 베토벤과 故 브람스의 작품을 연주하면서 성공적
으로 데뷔 무대를 가진 뒤 활발한 활동을 시작했었다.
이듬해의 그는, 故 아르투르 니키슈(Arthur Nikisch)가 이끄는 베를린 필하모
닉과 협연했었고, 유럽 각지에서 연주를 선보이며 청중들을 매료시켰었다.
그러나 1,924年의 그는, 슈투트가르트 베르텐베르크 국립음악원의 학장으로 취임하여 후
학 양성에 힘썼었지만, 바쁜 연주 일정으로 인해 5년만에 사임해야만 했었다고 한다.
그러나 교육에 대한 그의 열정은 계속돼, 1,931年부터 故 에트빈 피셔(Edwin Fischer)
· 故 발터 기제킹(Walter Gieseking) · 故 에두아르트 에르트만(Eduard Erd
mann) · 故 엘리 나이(Elly Ney)와 함께 포츠담에서 마스터 클래스를
개최하여, 10年 동안 젊은 피아니스트들을 독려했었다 한다.
1,930年代 초의 그는 작곡에 매진했었는데, 네 개의 오페라와 두 개의 교향곡
· 현악 4중주와 바이올린 협주곡 등 많은 작품을 발표해, 1,932年 프
러시아 예술 아카데미의 회원으로 선출되기도 했었다 한다.
그 이후의 그는 더 이상 작곡 활동을 지속하진 않았지만, 故 바흐의 ‘ 시칠리
아노 ’ 를 비롯해 플루트 소나타 · 오르간 작품 등 바로크 시대의 많
은 작품들을 피아노로 편곡하는 작업만은 계속했었다 한다.
그는, 연주 활동과 교육에 큰 애정을 기울이면서도 음반 작업 역시 활발하게 전개했었다.
그는, 세계 최초로 故 슈베르트의 피아노 소나타를 전곡 녹음했으며,
두 차례에 걸쳐 故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를 전곡 녹음했었다.
또한, 故 베토벤의 피아노 협주곡 역시 두 번이나 전곡 녹음했었다.
특히 협주곡 1 ~ 4번에서는, 자신이 작곡한 카덴차를 선보여
그의 천부적인 음악적 감각을 여실히 증명해 보였었다.
그리고 그는 실내악에도 큰 관심을 가져, 故 예후디 메뉴인(Ye
hudi Menuhin)이나 故 피에르 푸르니에(Pierre Fo
urnier) 등 많은 연주자들과 함께 연주했었다.
그러면서 그는 1,957年에는, 이탈리아 남부의 포시타노로 이주해 젊은 피
아니스트들을 위한 마스터 클래스를 진행하며, 교육에 힘썼었다.
그러다 1,965年, 그의 70세 생일을 맞아 시카고에서 故 슈만의
피아노 협주곡을 연주해 또 한 번 청중들을 열광시켰었다.
하지만 1,981年 파리 연주를 끝으로 건강을 이유로 은퇴한 그는, 아내가
세상을 떠난 5年 뒤인 1,991年 95세의 나이로 눈을 감았었다.
Piano, 알프레드 브렌델(Alfred Brendel)
Piano, 故 빌헬름 켐프(Wilhelm Kempff)
피아노, 임동혁(Dong Hyek Lim)
피아니스트, 故 빌헬름 켐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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