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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 슈베르트(Schubert) - 피아노 소나타 20번 가장조, D 959

Classic Music

by tl3659\0\0 2018. 8. 30. 1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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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 슈베르트(Schubert) - 피아노 소나타 20가장조, D 959

Schubert, Piano Sonata No 20 in A major, D 959

피아노 :빌헬름 켐프(Wilhelm Kempff)




故 슈베르트, 피아노 소나타 20가장조


바이올린과 비올라 연주에 탁월했었던, 故 슈베르트는 피아노에도 능숙했었다.

따라서 그는, 피아노 소나타 장르에서도 빼어난 작품들을 많이 남겼었다.

故 슈베르트가, 독주 피아노곡을 쓰기 시작한 것은 15살 때인 1,812 여름부터였었다.


해서 그는, 푸가나 변주곡 · 환상곡 등을 시범적으로 만들어 작곡 공부의 수준을 높여

갔으며, 1,815경부터 소나타 창작에 열의를 보이기 시작해, 1,817

부터 여름에 걸쳐 7곡의 소나타에 착수해 5곡을 완성했었다.


그러나 1,818 1,819年엔4곡을 착수했으나 1곡만 완성했었다.

그러다 그는, 1,825에 다시 집중해 나머지 3곡을 완성했었다.

그리고 그 뒤에 이어지는 그의 작품들은, 3부작인 19 C단조(D. 958)와 20번인인 A

장조(D. 959)와 21번인 B플랫 장조(D. 960)는, 즉 ‘ 故 슈베르트 최후의 3

대 소나타 ’ 로 불리는, 이 세 곡은 모두 1,828 9월에 작곡됐었다.


즉 그가 세상을 떠나기(11 19) 두 달 전이라그의 유작이 돼버린 셈평이었었다.

헌데 이 3부작에는, 故 베토벤에 대한 추종심이 강하게 나타나 있는 듯 보이지,

러나 그의 작곡 기법에는 이른바 故 베토벤적인 동기 조작에 의한 전개

성과는 본질적으로 다른 독창적인 세계가 구성돼 있다.


즉 악상의 돌연적인 변화, 고전적인 형식에는 없는 대범한 조바꿈과, 그것에

화성적 울림 · 민속적 춤곡을 연상케 하는 다양한 리듬 등은 

의 피아노 음악의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주었던 것이다.


故 슈베르트는, 진심으로 故 베토벤을 존경했었다.

그는, 故 베토벤의 작품들과 비교해서 자기의 작품들은

즉흥적이고 · 표피적이라고 자평했었다고 한다.

그는, 故 베토벤처럼 복합적이고 · 심층적인 감동을 담은 작품을 써야

한다고, 아니 꼭 쓰고야 말겠다고 다짐하며 노력했었다 한다.


그리하여 그가 남긴 곡이, 병마와 싸워가며 작곡한 마지

막 곡이, 바로 이 세 곡인 피아노 소나타이다.

꺼져 가는 생명의 심지 앞에서, 인간으로서 그리고 예술가로서의 마

지막 갈망을 모두 담아 열정적으로 써낸 작품들인 것이다.


피아니스트,빌헬름 켐프


피아니스트였던 故 빌헬름 켐프는 1,895, 독일의

란덴부르코 근교의 작은 도시에서 태어났었다.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교회의 오르간 주자였고, 삼촌은 에를랑겐 대학의 교회음

악 교수로 활동했던 음악가 집안에서 자란 그는, 어린 시절부터 故 바흐

의 평균율을 외워서 연주하는 등 놀라운 음악적 재능을 보였었다.


그의 놀라운 재능에 감탄한 베를린 음악대학에서는, 9세의 어린 故 켐

프가 대학에 입학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한다.


베를린 음대에서의 故 켐프는, 故 브람스와 친한 사이였던 故 로베르트 칸(Robert

Kahn)과 故 리스트의 제자였던 故 하인리히 바르트(Karl Heinrich Barth

)를 사사하면서, 독일 낭만주의 음악의 정수를 고스란히 전수받았었다.


故 멘델스존 상을 수상하면서, 우수한 성적으로 베를린 음대를 졸업한 그는

1,917故 베토벤과 故 브람스의 작품을 연주하면서 성공적

으로 데뷔 무대를 가진 뒤 활발한 활동을 시작했었다.


이듬해의 그는, 아르투르 니키슈(Arthur Nikisch)가 이끄는 베를린 필하모

과 협연했었고, 유럽 각지에서 연주를 선보이며 청중들을 매료시켰었다. 

그러나 1,924 그는, 슈투트가르트 베르텐베르크 국립음악원의 학장으로 취임하여 후

학 양성에 힘썼었지만, 바쁜 연주 일정으로 인해 5년만에 사임해야만 했었다고 한다.


그러나 교육에 대한 그의 열정은 계속돼, 1,931부터 故 에트빈 피셔(Edwin Fischer)

· 故 발터 기제킹(Walter Gieseking) ·  에두아르트 에르트만(Eduard Erd

mann) · 故 엘리 나이(Elly Ney)와 함께 포츠담에서 마스터 클래스를

개최하여, 10年 동안 젊은 피아니스트들을 독려했었다 한다.


1,930年代 초의 그는 작곡에 매진했었는데, 네 개의 오페라와 두 개의 교

· 현악 4중주와 바이올린 협주곡 등 많은 작품을 발표해, 1,932

러시아 예술 아카데미의 회원으로 선출되기도 했었다 한다.


그 이후의 그는 더 이상 작곡 활동을 지속하진 않았지만, 故 바흐의 ‘ 시칠리

아노 ’ 를 비롯해 플루트 소나타 · 오르간 작품 등 바로크 시대의 많

은 작품들을 피아노로 편곡하는 작업만은 계속했었다 한다.


그는, 연주 활동과 교육에 큰 애정을 기울이면서도 음반 작업 역시 활발하게 전개했었다.

그는, 세계 최초로 故 슈베르트의 피아노 소나타를 전곡 녹음했으며,

두 차례에 걸쳐 故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를 전곡 녹음했었다.

또한, 베토벤의 피아노 협주곡 역시 두 번이나 전곡 녹음했었다.


특히 협주곡 1 ~ 4번에서는, 자신이 작곡한 카덴차를 선보여

천부적인 음악적 감각을 여실히 증명해 보였었다.

그리고 그는 실내악에도 큰 관심을 가져, 故 예후디 메뉴인(Ye

hudi Menuhin)이나 故 피에르 푸르니에(Pierre Fo

urnier) 등 많은 연주자들과 함께 연주했었다.


그러면서 그는 1,957에는, 이탈리아 남부의 포시타노로 이주해 젊은

아니스트들을 위한 마스터 클래스를 진행하며, 교육에 힘썼었다.

그러다 1,965, 그의 70세 생일을 맞아 시카고에서 故 슈만의

피아노 협주곡을 연주해 또 한 번 청중들을 열광시켰었다.


하지만 1,981 파리 연주를 끝으로 건강을 이유로 은퇴한 그는, 아내

을 떠난 5 뒤인 1,991 95세의 나이로 눈을 감았었다.




Piano, 알프레드 브렌델(Alfred Brendel)


Piano, 빌헬름 켐프(Wilhelm Kempff)




피아노, 임동혁(Dong Hyek L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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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니스트, 빌헬름 켐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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