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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 모짜르트(Mozart) - 바이올린 협주곡 1번 Bb 장조 K 207

Classic Music

by tl3659\0\0 2018. 4. 22. 06: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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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 모짜르트 - 바이올린 협주곡 1Bb 장조 K 207

바이올린 :다비드 오이스트라흐(David Oistrakh)

Violin Concerto No 1 in Bb major K 207

 

 

 

故 모짜르트의 바이올린 협주곡

 

故 모짜르트는, 협주곡을 많이 작곡했었.

그런데 그가 17세(1,773年) 때부터, 죽음에 이르기까지 계속 썼었던 피아노 협주곡

을 제외한 나머지 협주곡들은 거의 일정한 시기에 집중적으로 작곡됐었다.

그 점에서, 특히 현저한 것이 바이올린 협주곡들이다.

 

헌데 故 모짜르트는, 모두 8곡의 바이얼린 협주곡들을 작곡했었는데 그 중에서도 제 6

· 7번 그리고 소년시대의 작품으로 알려져 있는 ‘ 아델라이데 ’ 등 3곡은

연 故 모짜르트 자신이 작곡한 것인지에 대한 여부가 의심되고 있다.

 

하지만 제 1번부터 5까지, 모짜르트의 곡이 확실시되는

들은 속칭 ‘ 잘츠부르크 협주곡 ’ 이라고 불리고 있다.

5곡은, 1,775年(19세) 4月부터 12月까지 8개월 동

에 모두 잘츠부르크에서 작곡됐었기 때문이다.

실로, 경탄할만한 속필이다.

 

이 잘츠부르크 협주곡은, 故 모짜르트의 대표작으로 꼽힌다.

화려한 기교를 발휘할 수 있는 여지를, 독주자에게 충분히

면서 사교음악으로서의 명랑성을 잘 갖추고 있다.

 

얼핏 그 단순성과 명쾌함이, 다양성이라는 점에선 부족함이 없진

지만, 이 바이올린 협주곡들에는 그의 고향 잘츠부르크

비롯해 남독일의 음악이 풍부하게 반영돼 있다.

 

5곡 중에서도, 3 · 4 · 5번이 단연

어나 연주회에서도 자주 다루어지고 있다.

 

바이올린 연주자, 다비드 오이스트라흐

 

故 다비드 오이스트라흐는, 대표적인 20세기 소비에트 연방 출신의 바이올리니스트이다.

오이스트라흐는, 1908우크라이나 오데사에서 태어나 다섯 살 때부터 오데사 국립 음악원을 졸

1,926年까지 13년간 故 표트르 스톨야르스키(Pyotr Stolyarsky)에게 바이올린을 배웠었다.

 

그는, 학창시절 오데사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협연을 한 것에 이어 1,927에는

故 글라주노프(Alexander Glazunov)가 직접 지휘하는 故 글라주

프의 바이올린 협주곡을 우크라이나 키예프에서 협연했었다.

 

이 연주를 계기로, 故 오이스트라흐는 1,928레닌그라드

(, 트페테르부르크)에서 정식 데뷔를 할 수 있었다.

그러면서 정식 음악교육을 마치고, 연주 경력도 쌓은 故 오이스트라흐

1,928年에 마침내 소비에트 연방의 수도 모스크바로 향했었다.

 

모스크바에 도착한 그 이듬해에 연주 무대에 선 뒤, 오이스트

1,930年代 내내 각종 대회에 출전해 상을 휩쓸었었다.
즉 우크라이나 콩쿠르에서 우승(1,930), 소비에트 콩쿠르에서 우승(1,935) · 故 비에니아프스키

쿠르에서 2위(1,935) · 故 외젠 이자이 콩쿠르에서 우승(1,937) , 그의 전력은 화려했었다.

 

이 과정에서 故 오이스트라흐는, 자신만의 연주법을 다듬고 완성시켰었다.
그리하여 故 오이스트라흐는 1,934年부터, 모스크바 음악원

에 출강한데 이어 1,939年엔 음악원의 교수가 됐었다.
교수가 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2차 대전이 발발했었지만, 오이
스트라

는 전쟁 중에도 모스크바에 남아 학생 지도와 연주를 계속했었다.

 

그러나 나치 독일이 소비에트 연방을 침공하자, 다른 많은 연주자

들과 마찬가지로 故 오이스트라흐 역시 전선으로 향했었다.

그리그는, 콘서트 홀이 아닌 최전선 · 공장 · 병원 등에서 군인

들과 노동자 · 환자들을 위해 바이올린을 연주했었다.

 

뿐만 아니라 지기(知己)였던, 故 쇼스타코비치의 협주곡을 미국에

2차 대전이 끝나고 여행이 허가되자, 그는 우크라이나

국뿐 아니라 서구에서도 연주를 하기 시작했었다.

 

아무리 어려운 테크닉도 수월하게 연주하며, 특히 보잉을 중요시하고 비브

를 과하게 사용하지 않는 그는, 서구의 무대에서도 환영을 받았었다.
해서 故 오이스트라흐는, 음악가로서 다양한 활동을 했었다.

 

독주자로서의 그는, 기존의 바이올린 레퍼토리뿐 아니라 故 쇼스타코비치 · 故 프로코피

예프 · 故 하차투리안 ·미아스코프스키 · 故 라코프 · 故 바인베르크 등 소비에

트 연출신 작곡가들이 자신에게 헌정한 작품도 적극적으로 연주했었다.

특히 그는 1,955年에, 뉴욕에서의 첫 공연을 통해 자신의 절친한 친구이기도 했던 故

타코비치의 ‘ 바이올린 협주곡 1번 ’ 을 미국에 소개한 것으로 유명했었다.

 

故 오이스트라흐는, 동료 연주자들과 함께 무대에 서는 일도 잦았었는데, 1,945年에 故 예

후디 메뉴인(Yehudi Menuhin)과 함께 연주한 故 바흐‘ 두 대의 바이올린을

한 협주’ 이 명연주로 기록되어 있으며, 피아니스트였던 故 오보린(Lev

Oborin) · 첼리스트였던 故 크누세비츠키(Sviatoslav Knush

evitsky)와 함께 ‘ 오이스트라흐 트리오(Oistrakh Trio) ’

라는 이름으로 피아노 3중주를 연주했었다.

 

그리고 그는 1,962年에는, 모스크바에서 처음으로 지휘봉을 잡기도 했었다.

그는 또, 막심 쇼스타코비치(Maxim Shostakovich)의 지휘로 뉴 필하모니아

케스트라와 함께 녹음한 故 쇼스타코비치의 ‘ 바이올린 협주곡 1번 ’

(1,974)과 첼리스트였던므스티슬라프 로스트로포비치(Mstis

lav Rostropovich)와 함께 한 故 브람스의 ‘ 이중 협

음반(1,971)으로 그래미상을 수상하기도 했었다.

 

이 밖에도 그는, 아들 이고르(Igor Oistrakh)와 함께 연주한 故 바흐의 ‘

대의 바이올린을 위한 협주곡 ’ 음반(1,951)이 유명했었다.
이렇게 왕성하게 활동하던 중, 그는 1,964年에 갑작스런 심
장마비었으

, 휴식을 취하지 않고 계속해서 무리하게 일을 하던 그는 1,974

다시 한 번 더 심장마비가 암스테르담에서 사망했었다.

    

악장들의 설명

 

전 악장, 이어듣기

 

1 악장, Allegro Moderato

B flat 장조에 4/4 박자로 이뤄진, 협주곡 풍의 소나타 형식이다.

1 주제는, 오케스트라 투티로 시작한다.

2 주제의 짧은 현의 악구 사이에, 짧은 리토르넬로가 연주되며 다시 반복해 연주되지는 않는다.

제시부 이후, 독주 바이올린이 제 1 주제를 연주한다.

현악기가 딸림조로 제 2 주제를 연주하면, 독주 바이올린은 셋잇단 음으로 진행한다.

발전부는, 바이올린 중심이다.

1 주제는, 독주 바이올린 이후 오보에로 연주한다.

2 주제가, 으뜸조로 연주되면 경과구를 거쳐 카덴차로 진행한다.

  

 

2 악장, Adagio

E flat 장조에 3/4 박자로 된, 자유로운 소나타 형식이다.

호른과 현악기의 반주 위에, 1 바이올린이 주제로 연주한다.

부주제 역시, 바이올린으로 제시됐다가 독주 바이올린이 새로운 주제를 제시한다.

발전부는, 독주 바이올린이 중심이며 제 1 주제가 다시 나오면서 재현부로 진행한다.

 

 

3 악장, Presto

B flat 장조에 2/4 박자로 형성된, 자유로운 소나타 형식이다.

제 2부의 바이올린이,  1 주제를 투티로 강하게 연주되며 제 2 주제까지 제시된다.

3 주제는, 관악기 중심으로 진행된다.

코다는, 3 주제가 사용되면서 곡은 종료된다.

 

  

 

 

 

 

 

 

 바이올린 연주가, 故 다비드 오이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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