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인 - 고향의 노래 · ’96
정규 앨범, 이수인 한국 서정 가곡선의 수록곡
작시 : 김재호 · 작곡 : 이수인
노래 : 엄정행
국화꽃 져버린, 겨울 뜨락에
창 열면, 하얗게 무서리 내리고
나래 푸른 기러기는, 북녘을 날아간다
아 이제는, 한적한 빈 들에 서 보라
고향 길 눈 속에선, 꽃등불이 타겠네.
달 가고 해 가면, 별은 멀어도
산골짝 깊은 곳, 초가 마을에
봄이 오면, 가지마다 꽃잔치 흥겨우리
아 이제는, 손 모아 눈을 감으라
고향집 싸리울엔, 함박눈이 쌓이네.
가곡, 고향의 노래
작곡가인 이수인이, 남산의 중앙방송국에서 합창단 연습을 끝내곤, 남산 자락에
자리한 대폿집 구석에서 소주 한 잔 걸치는 낭만이 일품이던 어느 가을,
집에 와 보니 마산 제일여고 교사 시절 단짝이던 친구이자 시인이
던 김재호 선생으로부터 한 장의 엽서가 와 있었다고 한다.
헌데 그 엽서의 내용인즉, 서울이라고 떠나면 모두가 고향을 잊느냐는 작은 눈흘
김과 함께, 예전에 자주 노래하던 음악실에서 창밖을 내다보며 썼노라는
얘기와 함께, 시(詩) 한 편이 씌어져 있더라는 거였다고 한다.
국화꽃 져버린, 겨울 뜨락에
창 열면, 하얗게 무서리 내리고
나래 푸른 기러기는, 북녘을 날아간다
아 이제는, 한적한 빈 들에 서 보라
고향 길 눈 속에선, 꽃등불이 타겠네.
달 가고 해 가면, 별은 멀어도
산골짝 깊은 곳, 초가 마을에
봄이 오면, 가지마다 꽃잔치 흥겨우리
아 이제는, 손 모아 눈을 감으라
고향집 싸리울엔, 함박눈이 쌓이네.
헌데 작곡가 이수인은, 이런 시(詩)가 적힌 친구의 엽서를 손
에 들곤 한참 동안이나 눈을 떼지 못했었다고 한다.
왜냐하면, 친구의 그 싯귀에서 친구의 우정과 고향의 숨결이
온몸에 전율처럼 느껴졌기 때문이었었다고 한다.
해서 그는 곧 피아노 앞에 앉아, 단숨에 친구의 그 시에 곡을 붙였었다 한다.
아니 그렇게 해서 태어난 곡이, 바로 이 ‘ 고향의 노래 ’ 였었다 한다.
그리고 그 후, 테너 엄정행의 목소리로 레코드를
타고, 이 세상에 처음으로 알려졌었다.
작곡가, 이수인(李秀仁)
작곡가인 이수인(1,939年 ~ )은, 경남 의령에서 태어나 6 . 25가 발발한
해인 1,950年 여름, 마산 회원국민학교(초등학교) 교장으로 발령
을 받은 아버지를 따라 마산에서의 생활을 시작했었다.
그러나 그가 초등학교 6학년 때, 가야금 연주를 좋아하던 아버지가 안타깝게도, 당
신이 늘 바라시던 마산생활을 채 2년도 못하고 허망하게 세상을 떠났었다.
하지만 이수인은, 그 후에도 마산에서 마산 중 · 고등학교를 다녔었다.
그리고 그는, 학교에서 전교생이 모인 강당에서 ‘ 가고파 · 내 마음은
호수여 ’ 등을 불러, 노래를 잘 부르는 학생으로 유명했었다.
그러나 이수인은, 대학 진학을 앞두고 어려운 집
안 형편 때문에 깊은 고민에 빠졌었다.
스스로 돈을 벌어 대학에 다니거나, 아니면 직업을 찾아 사회로
나가야 하는, 두 가지 길 외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게다가 이수인은, 5남 4녀 중 일곱째다.
아버지가 일찍 세상을 떠났으므로, 집안의 경제적 상황이
매우 곤궁했을 것임은, 두 말할 것도 없었다.
해서 그는, 인생이 낭만도 아니고 음악도 아니라고 상심하며, 홀로 밤
이 깊도록 무학산 중턱에서 항구를 내려다보곤 했었다고 한다.
그리고 때마다, 가야금을 연주하시던 아버님의
모습이 떠오르곤 하기도 했었다 한다.
그러던 중 그는, 내가 음악을 하지 않는다면 내 인생에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싶은 생각이 들어, 그날 밤으로 책가방과 옷가
지들을 챙겨들곤 서울행 기차를 탔었다고 한다.
그 때 그의 어머님은, 몇푼의 노자를 손에 쥐어 주시며 “ 배
고프면, 그냥 내려오너라 ” 라고만 하셨었다고 한다.
해서 그는, 서울에 사는 친구집에 기거하며 이런저런 궁리 끝에 서라벌
예술대학(현, 중앙대학교 예술대학)에 입학원서를 냈었다 한다.
그리고 그는, 수석으로 입학해 전 학기 전액을 면제받는 장학생이 돼,
평소에 흠모해 오던 김동진 선생님의 제자가 됐었다 한다.
그러나 김동진 선생님은, 여러가지 작곡 일로 바쁘셨었다.
그 중에서도, 특히 충무로에서 제작되고 있던 영화음악을 거의 도맡아하
고 계실 때여서, 그는 입학 초부터 잠만 따로 잤지 거의 날마다 선
생님을 그림자처럼 따라 다니며 일을 도왔었다고 한다.
그렇게 이수인은 대학을 졸업한 직후, 마산 성지여
자 중 · 고등학교 음악선생으로 부임했었다.
그리고 이듬해엔, 마산 제일여자고등학교로 자리를 옮겼었다.
당시 마산 제일여고는, 교사가 1백여 명에 이르는 큰 학교였었다.
헌데 그 학교의 교사 중엔, 후일 서울대 교수가 된 여류시인 유안진 · 문학평론
가 조병무 · 소설가 김지연 · 시인 김재호같은 분이 있었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가, 평소 좋아하던 가람 이병기 선생의 시(詩)인 ‘ 별
’ 에 곡을 붙인 것도, 바로 이 시절이었었다고 한다.
“ 하루는, 밤이 늦도록 음악실에서 혼자 피아노를 치다 운동장을 걸어나오는
데, 달이 없어서인지 그 날따라 유난히 별이 밝았다. 초등학교 시절
지리산 그림자와 함께 보았던 그 별떨기들이 그곳에 있었다.
운동장 가운데서 한참 동안 별구경을 하다가, 문득 애
송하던 가람 이병기 선생님의 시가 떠올랐다. ”
“ 바람이 서늘도 하여 뜰 앞에 나섰더니, 서산 마루 하늘은 구름에 벗어나
고 ~ ~ ” 나는, 그 길로 음악실로 달려가 피아노에 손을 얹었다.
내 입에서, 어느 새 가람 선생님의 ‘ 별 ’ 이 노래가 되어
나오고 있었다. 단숨에 악보가 그려졌다. 내 가
슴은 여전히 뛰고 있었다. 다시 손 볼 필
요가 없이, 노래가 만들어졌다. ”
해서 이수인이, 가장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곡 중의 하
나인 ‘ 별 ’ 은, 그렇게 만들어졌었다고 한다.
그 후의 이수인은, 한 선배의 중매로 음악을
사랑하는 김복임을 만나 결혼했었다.
그리고 아들이 태어나, 생명의 신비로움에 경탄하고 있을 때
서울 중앙방송국(KBS의 전신)에서 어린이 합창단
지휘자로 와 달라는 요청이 왔었다고 한다.
갓 백일을 넘긴 아들과 함께, 서울로 올라간 이수인 내외는 서강 굴다
리 아래, 방 한칸 부엌 하나인 셋방을 얻어 서울 살림을 하며
, 중앙방송국의 어린이 합창단 지휘자로 재임했었다.
작시자, 김재호(金載昊)
김재호 시인은 1,938年, 진영 단감의 고장인 경남 김해시 진영읍에서 태어났었다.
그는, 마산으로 유학해 마산중학교와 마산상고를 거쳐 연세대 국문과를 졸업했었다.
졸업 후 그는, 거제고교 · 통영여고 교사를 거쳐 1,96
8年에는 마산 제일여고 교사로 재직했었다.
그는 1,960年, 연세대 재학 중 당시 부산에서 발행
되던 ‘ 국제신문 ’ 의 신춘문예에 당선됐었다.
그러나 그는, 그기서 만족칠 않고 얼마 후 ‘ 현대문학 ’ 의 청록
파
시인인 ‘ 박목월 ’ 의 추천으로 등단을 완료했었다.
그러면서 그는 1,968年, 마산 제일여고에 근무하던 중 ‘ 고향의 노래 ’ 를 지었었다.
그리고 그는, 엽서 한 장에 그 ‘ 고향의 노래 ’ 를 적어 그
의 고교 동창인 작곡가 이수인에게 보냈었다.
김재호 시인의 회고에 따르면, 그가 열 세살이던 때 병약하던 그의
어머닌 서른 여섯인 한창 나이에 세상을 떠났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 즈음, 그는 배움을 위해 고향을 떠났었다고 한다.
그가 고향을 떠날 때, 새벽길을 걸어 읍내 ‘ 진영역 ’ 까지 같이 걸어 배웅나온
할머니가, 그의 손에 꼭 쥐어주던 손때 묻은 지폐 한 장과, 경전선 철
길을 따라 피어난 가을 국화의 향기를 잊지 못한다고 한다.
그리고 그가, 싸리 울타리가 고운 고향집 마당에 들어서면 처마에 달린
육각의 파란 초롱 꽃등불이 흔들거리고, 그 등불 위로 소리없이
펑펑 날리던 함박눈과, 그 눈 사이로 들리던 경전선의
기적소리, 그리고 돌아가신 어머니를 그리며,
그 ‘ 고향의 노래 ’ 를 썼었다고 한다.
그러니까 그의 그 ‘ 고향의 노래 ’ 는, 마산이 아니라 그의 고향
인 ‘ 진영 ’ 의 어머니를 그리워하는 노래라고 한다.
바리톤, 최현수
소프라노, 이미경
테너, 엄정행
작곡가, 이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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