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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군의 만행에 대한 사진들 4

일본군의 만행

by tl3659\0\0 2017. 6. 9. 0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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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침략 전쟁의 원흉인, 도요토미 히데요시

 

일본군의 만행에 대한 사진들 4

 

 

 

도요토미 히데요시 · 풍신수길(1,537 3 17 ~ 1,5989 18日) 

 

亡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 일본 센고쿠 시대와 아즈치모

모야마 시대에 활약했었던 무장 겸 다이묘이다.

 

다이묘(), 1만석 이상의 녹봉을 받는 무사가 인적

영지를 가지게 되면, 다이묘라 칭한다.

그는, 도요토미라는 성을 하사받기 이전엔 하시바 히데

요시(羽柴秀吉)라는 이름을 사용했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오와리 국(尾張国) 아이치 (愛知郡)

나카무라(中村)의 농민의 아들로 태어났었다.

그는,오다 노부나가(織田信長)를 섬기면서 오다 가문

안에서 점차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었다.

 

亡 오다 노부나가가, 혼노지의 변(本能寺の変)으로 죽자 주고쿠에서 대군을

이끌고 교토로 돌아와 야마자키 전투(山崎の戦い)에서 역신 亡 아

케치 미쓰히데(明智光秀)격파하고, 오다 노부

가를 대신해, 그의 사업을 계승했었다.

 

그 후 그는, 오사카 성(大坂城)을 쌓았으며 관백(関

白) · 태정대신(太政大臣)에 임명됐었다.

, 조정으로부터 도요토미(豊臣)라는 성을 하사받아

일본 전국을 통일하는데 이바지했었다.

 

그는 태합검지(太閤検地)와 가타나가리(刀狩)라는 정책을 펴, 국내를 안정시켰

었지만, 조선 침략 전쟁인 임진왜란을 일으키는 과오도 범했었다.

 

임진왜란 중 조카 도요토미 히데쓰구를 죽여, 후계를 아들 亡 도요토미 히데요리

(豊臣秀頼)에게 주었었지만, 얼마 안 있어 죽음을 맞이했었다.

 

 

 

선승(禪僧)처럼 그려져 있는 도요토미 히데요시. 그를 만났던 조선 통신사 일행은 그의 모습이 볼품없었다고 폄하하면서도 그의 눈빛만큼은 아주 매서웠다고 평가한 바 있다. ‘태양의 아들’을 자처하면서 대륙 정복의 망상을 펼치려 했던 그가 일으킨 침략전쟁은 동아시아 삼국에 비극을 몰고 왔다.(위) 일본에 상륙했던 포르투갈인들과 일본인들의 교류 장면을 그린 병풍.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일본 통일 직후 명과 조선 침략을 공언하면서 선교사들을 통해 포르투갈로부터 전함과 승조원들의 원조를 받아내려고 시도했다. 
 오사카 천수각 특별사업위원회 편 <히데요시와 오사카성>(1988)에서 전재

도요토미 히데요시

 

 

亡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오사카 성과 천수각

 

일본을 통일한 亡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3年의 공사를 걸쳐서 완성했었

다는 오사카 성은, 그 당시 그의 권력을 한 눈에 느낄 수 있다.

 

1,583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수운이 편리한 우에마치 대지에 천하 쟁

탈의 거점을 마련하기 위한 성을 축성하기로 했었다고 한다.

이것이 바로, 도요토미의 오사카 성이라고 한다.

 

1,585 58, 검은 옻칠을 한 판자와 금박 기와, 금 장식을

붙인 호화로운 망루형인 천수각을 완성했었다고 한다.

이것으로, 히데요시는 천하 권력자의 권위를 마음껏 과시했었다.

 

그러나 1,615, 에도 막부가 도요토미를 쓰러뜨리기 위해 벌인 전쟁 ‘ 오자카 여름의

진 ’ 에서, 도요토미의 오사카 성은 천수각과 함께 불타버렸었다고 한다.

 

그후 도쿠가와 히데타다는, 정권이 교체된 것을 천하에 알리기 위해 도요토미의

사카  성 영역에 석벽을 다시 쌓아올려 성을 새롭게 구축했었다고 한다.

 

이에, 도요토미의 천수각보다 더 큰 규모로 1,626도쿠

와의 오사카 성 천수각이 완성됐었다고 한다.

 

이후 세번 째 천수각은, 1,931年에 도요토미가 축성한 오사카 성의 천수각

을 본떠 도쿠가와의 오사카 성 천수대 위에 세워졌었다고 한다.

 

처형 후, 두 병사의 자랑스런 자세로 기념 찰영

 

독립군의 목은, 이미 칼이 지나가 잘린 순간

 

 

 

경각심을 주기 위해, 추운 겨울 날씨로 오랫동안 독립군 병사들을

 작두로 목을 잘라 공중 높이에 매달아 놓은 모습.

 

생매장된 양민들 가족들에 의해, 파헤쳐지고 있는 장면

 

 

작두로, 수없이 잘려간 양민들의 모습

일본군이 장난 삼아, 목이 잘린 시체의 손을 자신의

잘린 목 부분을 가르키게 해 놨다.

 

작두로, 처형 직전의 모습

 

작두 앞에, 잘려진 목이 하나 보인다

 

난징대학살 때의 모습 

 

 

한국인의 코와 귀를 베어다 만든, · 무덤

 

亡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선인 12 6,000명의 코와 귀를

베어 소금에 절여 일본으로 운반케 했었다.

 

헌데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계속 악몽에 시달리자, 무덤을 만들었었.

그러나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그 무덤의 죽은 원혼들의 기를

한가운데인 5층 위석물로 눌러버렸었다.

 

그런데, 일본은 이 무덤을 유적지로 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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