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일본군의 만행에 대한 사진들 2

일본군의 만행

by tl3659\0\0 2017. 6. 6. 00:44

본문

기사본문 이미지

고종 황제의 일곱 째 아들이자 조선의 마지막 황태자인, 영친왕(사진 오른쪽)이 1,907유학이란

명목으로 일본에 끌려가기 전의 모습과, 당시 조선 초대 총감인 이토 히로부미의 모습

 

일본군의 만행에 대한 사진들 2

 

 

 

토 히로부미는, 일본의 근대화를 이룬 중요한 인물 중 한 명이고

또 초대 내각 총리대신으로 임명된 인물이기도 하다.

 

해서 亡 이토 히로부미는는, 일본에서는 영웅이지만 대한민국

측에서는 최대의 원수로 볼 수밖에 없는 인물이었었다.

 

1,905, 조선의 초대 통감부가 된 이토 히로부미조선의

왕실을 모욕했었고, 조선 지배 계획을 착실히 수행했었.

이런 상황에, 故 안중근 의사가 나서서 그를 처단한 거였었.

 

일본의 공작 이토 히로부미사살한, 故 안중근 의사

 

본관은, 순흥()이며 아명은 응칠()

황해도, 출생

수학했었으나, 오히려 무술에 더 열중했었다.

 

1,895, 아버지를 따라 가톨릭교에 입교하여 신식 학문에

접하고, 가톨릭 신부한테서 프랑스어를 배웠었다.

 

1,904, 홀로 평양에 나와 석탄상을 경영하고 이듬해 이 체결되는 것을

보자 상점을 팔아, 1,906年 그 돈으로 학교(후에 개칭)를

세우고, 이어 를 인수, 인재 양성에 힘쓰다,

國運이 극도로 기울자 합법적인 방법으론 나라를 바로

잡을 수 없다고 판단, 1,907沿

명하여 의병 운동에 참가했었다.

 

이듬해 전제덕()의 휘하에서, 대한의군 참모중장() 겸 특파 독립대장

() 및 아령지구() 사령관의 자격으로 엄인섭()함께

100여 명의 부하를 이끌고 두만강을 건너 국내로 침투, 과 격전을 벌

였었으나 실패, 노에프스키(秋)에서 망명 투사들이 발간하는

의 탐방원()으로 활약하는 한편 동료들

에게 國 사상을 고취하는데 진력했었다.

 

1,909, 동지 11명과 죽음으로써 구국 투쟁을 벌일 것을 손가락을 끊어 맹세했었다.

그 해 10, 침략의 원흉인 亡 이토 히로부미(文)러시아 코코프 체프와 회담

하기 위해 만주 하얼빈에 온다는 소식을 듣곤, 그를 사살하기로 결심하고, 동지였었던

우덕순()과 상의하여 승낙을 얻곤, 동지 조도선()과 통역 유동

하()와 함께 이강()의 후원을 받아 행동에 나섰었다.

 

1,90910 26日 일본인으로 가장, 하얼빈 역에 잠입하여 역전에서 러시아군의 군례를 받는

亡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하곤, 하얼빈 총영사 가와카미 도시히코(彦) · 궁내대신

비서관 모리 타이지로(· 만철이사(滿) · 다나카 세이타로(

)에게 중상을 입히곤, 현장에서 러시아 경찰한테 체포됐었다.

 

 

 

사진=안중근의사기념사업회

일본의 공작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한, 故 안중근 의사

 

 

일본 관동 대학살, 1,923

 

1,923, 일본 관동 일원에 대지진이 발생하여 10여만 명이 사망했었다

민심이 극에 달하자, 일본 정부는 한국인 폭동설을 조작

· 포시켜, 한국교포 약 5천여 명을 피살했었다.

몽둥이 · 죽창 등으로.

 

 

체포된 독립군은, 결국 처형을 당했었

칼로 목을 칠 때 넘어가지 않도록, 팔을 묶어 뒤에서 당기고 있다

일본인 칼에, 목이 떨어지는 순간을 촬영한 것이다.

 

 

일본군들은, 포로가 된 민간인과 독립군들을 사정없이 목을

잘라서 담장 밑에 상품처럼 진열해 놓고 있다.

 

생매장되고 있는 양민들

 

 

일본군인들이, 처형하기 전 목에 수건을 감아놓은 ,

목을 치기 전 잘린 몸통에서 품어나오는 피를

위해, 수건을 얹어놓은 것이다.

 

 

 

너무나도 억울한 죽음

잡아온 양민들을, 표적삼아 사격 연습을 하고 있다.

 

 

난징대학살 때의, 잔혹한 살육 장면

옷이 벗겨진 여인은, 온 몸이 상처 투성이다

목은 잘라져 있고, 얼굴 모습은 등 뒤로 돌려져 있다.

 

 

광복 독립군과 독립 투사 · 양민들이, 잔학한 일본군에 붙잡혀 온 집결장이다

일본인에 체포돼, 어디론가 이동하기 위해 대기해 있다

손을 뒤로 묶인 채, 소리없이 침묵하고 있다

1,928, 이 때부터 일본군은 악랄하고도 잔혹한 살육의 강도를 높였었다.

 

관련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