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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군의 종군 강제 위안부 피해자들의 증언 · 사진들 4

위안부 증언·사진

by tl3659\0\0 2017. 5. 12. 0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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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순덕, 일본군의 종군 강제 위안부 피해자 ’ 할머님의 그림 - 버섯 공출 

 

일본군의 종군 강제 위안부 피해자들의 증언 · 사진들 4

 

 

 

 

 

생각에 잠겨 있는, 일본군의 종군 강제 위안부 피해자인 한 할머님

 

2,006 9 14, 서울 일본 대사관 앞에서 열린 미국 하원의 ‘ 일본군

위안부 결의안 ’ 채택을 환영하며, 일본 정부에게 결의안

수용을 촉구하는 기자 회견에서, 한 위안부

할머님이 생각에 잠겨 있다.

 

· 우에 있는 막사에서, 일본군을 맞이했었.

 

일본군 고급 간부는, 어린 소녀들을 위안부로 배정했었다.

 

강제로 추행당한 후, 무차별 사살된 여인들

 

강제 위안부 징집에 거부하며, 살려 달라고 빌고 있는 우리 조선 처녀들

 

 

종군 강제 위안부 국제 학술대회

 

일본군의 성노예 피해자(위안부) 문제에 대한 실상을 파악하고, 가능한 대응책 등을 논의하는

국제 학술대회가 2,008 7 4로스앤젤레스 캘리포니아 주립대(UCLA)

에서 개막된 가운데, 이막달 할머님이 증언하고 있다.

 

 

민족 시인과 종군 강제 위안부 피해 할머님

 

2,006 6 18 오후 경기도 광주시 나눔의 집에서 열린, 창작 21 작가회 주최

통일문학 축제 현장에서, 민족문학 작가회의 고문 이기형(89 · 故 몽양

여운형 선생의 비서) 시인과, 일본군의 종군 강제 위안부 피

해자인 김군자(80) 할머님이 나란히 섰다.

 

뒤쪽 걸개 그림에 적힌 시 ‘ 한은 구천에 사모쳐 ’ 는,

이 詩人이 할머님들을 위해 지었다.

 

 

일본군의 종군 강제 위안부 피해자인, 신도 할머님

16, 꽃다운 나이에 전장에 나가면 밥 걱정 없이 살 수 있다던

일본인의 말을 믿고 만주를 거쳐 장안까지 .

 

일본군의 전장을 전전하며, 강제로 위안부 생활을 하셨던 송신도 할머님.

 

 

 

신도 할머님은, 1,922年 충남 유성에서 태어나셨었다.

 

16살에, 일본군에 끌려가 중국의 한 위안소에서 영문도 모른 채 ‘ 종군 강제 위안부 ’ 가 됐었다.

일본군의 ‘ 명령 ’ 을 거부할 때는, 어김없이 욕설과 구타가 쏟아졌었다.

해방 뒤 일본으로 건너가, 1,993年부터 2,003年까지 10年 동안 일본 정부를

상대로 사죄와 보상을 요구하며, 기나긴 법정 투쟁을 계속하셨었다.

 

재판에서 패소한 뒤, “ 비록 일본에 졌지만, 내 마음은 지지 않았다 ” 라며

“ 전쟁은, 다시 일어나면 안된다 ” 라고 일갈하셨었다.

 

 

2,004年, 종군 강제 위안부 수요집회의 모습

 

사과 없는 13 , 215 129명 생존.

여성부에 등록한 위안부 할머님 215명 가운데, 13年이

지난 지금 129명만 살아 계신다.

 

올 해도, 7명이나 돌아가셨다.

현재 두 명의 할머님은, 위독한 상태다.

내년이면, 얼마나 많은 분들이 돌아가실지 알 수 없다.

 

일본군의 종군 강제 위안부 피해자인, 신도 할머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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