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 앙리 드 툴루즈 로트렉의 그림들 2
故 앙리 드 툴루즈 로트렉
화가 · 도안가 · 그래픽아트 미술가 · 삽화가 · 석판화 화가였었던, 故 앙리 드 툴루즈 로트렉은
유년 시절에 겪은 신체장애로 미술계에서 가장 잘 알려진 인물 중 한 명이 됐었다.
그는, 툴루즈 근처 알비에서 프랑스 백작의 아들로 태어났었다.
두 다리가 부러지는 사고를 당한 이후에, 다리의 성장이 멈춰버렸
고, 이를 제외한 신체 부위는 정상적으로 발육했었다.
해서 결국 그는, 툴루즈 로트렉의 키는 ‘ 난쟁이 화가 ’ 라고 일컬어질 만큼 작을
수밖에 없었고, 이 때문에 그는 수많은 풍자만화의 소재가 되곤 했었다.
부유하고 · 괴팍스러운 그의 아버지는, 어릴 때부터 화가가 되고 싶어 했었던 故 앙리 드
툴루즈 로트렉의 파리에서의 학비를 지원해 줬고, 작업실도 얻어 주었었다.
해서 故 앙리 드 툴루즈 로트렉은, 물랭 루주와 다른 밤업소에 가서 매일
밤 스케치를 하면서 보냈고, 곧 몽마르트르에서 유명해졌었다.
그는, 자주 가던 밤업소들의 광고 포스터를 정기적으로 그려주었었다.
또한 그는, 여자들을 좋아하여 매춘업소에서 많은 시간들을 보냈었다.
그러나 그는 매춘부들과 단지 잠자리를 같이하는 것만이 아니라, 이들
의 친구가 됐었고, 매춘부들을 그림의 모델로 삼기도 했었다.
故 툴루즈 로트렉의 작품으로는, 자유분방한 삶의 즐거움을 묘사한 ‘ 물
랭루주에서 : 춤 · 1,890 ’ 과 레즈비언을 그린 ‘ 입맞춤 · 1,892 ’
그리고 부드러운 이미지의 ‘ 두 친구 · 1,894 ’ 등이 있다.
그는 많은 그림을 마분지에다 그렸었고, 독특한 선과 색을 창조하기 위해 특별히 희
석시킨 유화물감 또는 구아슈나 템페라 물감을 혼합한 물감을 사용했었다.
그의 작품 덕분에, 故 잔 아브릴과 故 라 굴뤼같은 무
용수들의 이름이 오늘날까지도 알려지고 있다.
故 툴루즈 로트렉은, 故 폴 고갱과 故 프란시스코 고야 그리고 故 에드가 드가로부터
색채의 사용법 · 생기 넘치는 양식 · 주제 선정 문제 등의 영향을 받았었다.
故 앙리 드 툴루즈 로트렉은, 자신의 모델이자 연인이었던 故 쉬잔 발라
동을 포함하여, 다른 화가들을 개인적으로 가르치기도 했었다.
故 앙리 드 툴루즈 로트렉은, 알코올 중독자였고 · 매독에도 걸려 고생했었다.
해서 그는, 알코올 중독과 매독으로 인해 깊은 침체기에 빠져들었
었고, 서른여섯 살이라는 젊은 나이로 생을 마감했었다.
난쟁이 화가, 故 로트렉
유곽의 여인
1,894年 · 개인 소장
라모르의 특실에서 · In a private room at the Rat mort
1,899 ~ 1,900年 · 故 툴루즈 로트렉 미술관 소장
바
1,898年 · 취리히 쿤스트 하우스 소장
두 친구 · The Two Friends
1,894年 · 테이트 갤러리 소장
뚱뚱한 마리 앙리
1,884年 · 폰 데어 하이트 미술관 소장
물랭루주에서, 춤추는 두 여인
1,892年 · 판지에 유채 · 80 x 93cm 나로드니 미술관 소장
물랭가의 살롱
1,894年 · 故 앙리 드 툴루즈 로트렉 미술관 소장
라미에서
1,891年 · 앙리 드 툴루즈 로트렉의 보스턴 미술관 소장
4두 마차를 모는 故 알퐁스 드 툴루즈 로트렉 백작
1,881年 · 파리 프티팔레 미술관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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