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31 수용소 때의, 특별관리반장
731 부대 때의, 생체 실험 사진들 3
관동군 731 부대
亡 이시이 시로가, 처음 사령관으로 부임한 1,930年代 후반까지만 해도 731부대는, 즉
관동군 방역급수부는 평범한 방역 및 급수 전문 부대였었다고 한다.
사실 전쟁, 특히 현대전에서 보급 문제는 전쟁의 성패를 가르는 매우 중요한 요소이
며, 그 중에서도 식량과 급수 문제는 절대 간단히 해결되지 않는 문제이다.
현지 약탈을 통한 보급 조달을 현실화하려 한 개막장 일본군이지만, 일단 이들도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부대를 설립할 수밖에 없었던 거였었다.
물론 그럼에도, 일제의 병참을 운영하는 수준은 매우 떨어져서 중국처럼 물이
좋지 않은 곳에서 싸운 결과, 이곳에서 잃은 병사는 역대 일본군이
치른 모든 전쟁의 전사자보다도 더 많았었다고 한다.
그리고 亡 이시이가 군의관으로서 올린 최초의 업적은, 바로 1,920 ~ 30年代 기준으로 대형의
설비가 필요했었던 정수기를 대형과 동일한 성능을 지니면서도, 야전에서 간단히
운용할 수 있는 소형의 정수기를 일본 내 기술 수준으로 만든 거였었다.
심지어 그 성능을 증명하기 위해 그는, 장군들이 보는 앞에서 자신
의 소변을 정수해서 직접 마시기까지 했었다고 한다.
그리고 사실 일본군의 방역급수부 자체가, 다른 지역에 설치된 모든 방역급수부를 포
함해서 생물학 및 화학전 연구 기능을 포함하고 있었으나, 관동군 방역급수
부는 전장이 전장이라 현장에 물 공급하는 것만으로도 바빠서, 그
쪽 실험을 제대로 할 정신머리도 없는 상태였던 곳이다.
그러던 곳이 1,941年 이후엔 바뀌었는데, 그것이 민간인을 대상으
로 한 생체실험을 자행하는 부대가 되어버린 거였었다.
물론 실전 테스트 임무를 받은 방역급수부는 몇 곳 더 있었으나, 실질적으로 개발 및 야외
임상실험(즉, 실전 테스트) 이전 기초 실험장으로 활용된 곳은 이곳 뿐이였었다.
헌데 당시 연구원들은 실험 대상을 ‘ 마루타 ’ 라고 명명했었으며, 그들이 지르는 일
체의 비명이나 신음은 깡그리 무시하라는 세뇌를 받았었다고 한다.
세뇌 과정 중 가장 엽기적인 것은, 마루타로 잡혀온 이들 중 가장 반항이 심한
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