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밖으로?
감옥에서 형기를 마치고 나와 자유를 얻은 시민, 혹은 오랜 병치레나 장애 문제, 자
발적 은둔 등으로 바깥세상 경험을 못 하던 이가 비로소 태양과 구름과 비를
마주할 때, 흔히 ´ 세상 밖으로 나오다 · 나온다 · 나왔다 '라고 한다.
이 표현은, 과거 어느 시점에 기자나 방송 작가가 쓴 비유적 표현이 퍼진 게 아닌가
짐작한다. 그러나 ´ 세상 '을 일그러진 대상으로 본 출발부터 잘못됐다.
' 세상 ' 자체를 기본값으로 봐야 긍정적이고, 일반적 통념에도
맞는다. 사람들이 자유롭게 삶을 누리고 법과 질서가
제대로 돌아가는 사회 시스템, 그런 세상.
이제 죄인도 · 장애인도 · 병자도 · 은둔자도, 바로 그런 세상 ' 안으로 ' 들어가 살아
야 할 것 아니겠는가? 헌데 ' 세상 밖으로 나간다 ' 고? 그것은 ' 적응 ' 이
아니고 ' 일탈 ' 이다. 범법을 계획하거나, 공간의 범위를 넓히면
지구 또는 태양계를 떠나겠다는 얘기다. 그 뜻이 아니라
면 ' 세상 속으로 ' 로 바루어야 마땅하다.
옥석구분?
'주식 종목, 옥석구분이 힘들다 ´ .
'개봉하는 영화가 많아 옥석구분이 어렵다 ´ .
위와 같은 표현이 흔히 쓰이는 걸 보면, 많은 사람이 옥석(玉石)을 구
분(區分)으로 알고 있는 듯하다. 옥석은 구분(區分)할 수 없
다. ' 옥석구분(玉石俱焚) '은 전혀 다른 뜻이다.
이는 중국 고서 ' 서경(書經) '에 나오는 말로, 이때의 옥석구분
은 옥(玉)과 돌(石)을 구분한다는 게 아니라, 옥이든 돌이든
모두 〈구 · 俱〉며, 불태운다는 〈분 · 焚)의 의미다.
곧 착하고 옳은 사람이나, 나쁘고 그릇된 사
람이나 다 재앙을 받는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좋은 것과 나쁜 것을 가린다는 의미를 표현할 땐 ' 옥석을
구분하다 ' 가 아니라 ' 옥석을 가린다 ' 라고 하면 된다.
해서 ' 주식 종목, 옥석구분이 힘들다(X) ' .
' 주식 종목, 옥석을 가리기가 힘들다(○) ' .
' 개봉하는 영화가 많아 옥석구분이 어렵다(X) ' .
' 개봉하는 영화가 많아 옥석을 가리기가 어렵다(○) ' .
유명세
유명세는 ' 有名稅 ' 이지 ' 有名勢 ' 가 아니다.
유명해서 생기는 기세가 아니라, 유명해서 치르는 불편 · 부담 등을
세금(稅金)에 빗댄 것이다. 따라서 유명세 다음에 ' 타다 ·
얻다 ' 등은 올 수 없다. 유명세는 ' 치르는 ' 것이다.
해서 '유명세를 얻다(X) '.
'유명세를 타다(X) ' .
' 유명세를 치르다(○) ' .
일파만파를 낳다?
일파만파(一波萬波)는 하나의 물결이 연쇄적으로 많은 물결을 일으킨
다는 뜻으로, 잇따라 일어나는 사건의 비유로 많이 쓰인다.
말하자면, 연결 · 진행 · 과정이지 상태 · 완료 · 종결이 아니다.
' 낳다 ' 는 후자에 가까우므로 여기에선 어색하다.
물론 명사지만, 부사어 형태로 이음 · 연결 · 확장의 분위기를 풍겨야 자연스럽다.
해서 ' 일파만파(로) 번지다 ' 거나 ' 일파만파(로) 퍼지다 ' 혹은
' 일파만파다 ' 로 맺음말 형태로 쓰는 게 훨씬 낫다.
즉 ' 일파만파를 낳다(X) ' .
' 일파만파(로) 번지다 · 일파만파(로) 퍼지다 · 일파만파다(○) ' .
겹치는 말
' 깊은 숙고(熟考) ' 는, 겹치는 말이다.
숙(熟)이 ' 깊다 ' 는 의미이므로, 숙고는 곧 깊이 생각한다는 말이다.
' 깊은 생각 '이면 족하다.
유사한 예를 몇 개 더 추리면 아래와 같다.
' 약 ○○ 곳 정도 ⇒ 약 ○○ 곳, 또는 ○○ 정도 ' .
' 약 ' 에 정도의 의미가 담겨 있다.
둘 중 하나는 빼야 한다.
' 오래된 숙원 ⇒ 오래된 염원 ' .
이미 숙(宿)에 ' 오래되다 ' 의 의미가 들어 있다.
' 검정색 ⇒ 검은색 ' .
' 검정 ' 자체가, 검은 빛깔이다.
색은 군더더기다.
노랑 · 파랑 · 빨강도 마찬가지다.
' 미리 예고 ⇒ 예고 ' .
'예(豫)가 ' 미리 ' 의 뜻이다.
' 아직 미정 ⇒ 미정 ' .
미(未)가 ' 아직 ' 의 뜻이다.
' 여러 분들 ⇒ 여러분 ' .
' 여러 ' 에 복수의 의미가 담겨 있어 ' 들 ' 이 불필요하다.
' 머리가 하얗게 세다 ⇒ 머리가 세다 ' .
' 세다' 에 ' 하얗게 되다 ' 의 의미가 이미 들어 있다.
이 밖에도 ' 아직 미지수 · 근거 없는 낭설 · 방학 기간 동안 · 불조심 유의
· 결실을 맺다 · 격세지감을 느끼다 · 수혜를 받다 · 피해를 입다 ·
미리 예상하다 · 갑자기 졸도하다 · 푸른 창공 · ~ 를(을)
타고 있던 승객 ' 등이 의미가 중복되는 사례다.
' 아직 미지수 ⇒ 미지수 · 근거 없는 낭설 ⇒ 낭설 · 방학 기간 동안 ⇒ 방학 동안 · 불
조심 유의 ⇒ 불조심(화재 유의) · 결실을 맺다 ⇒ 결실을 보다 · 격세지감을 느
끼다 ⇒ 격세지감이다(격세지감이 들다) · 수혜를 받다 ⇒ 혜택을 받다 ·
피해를 입다 ⇒ 피해를 보다 · 미리 예상하다 ⇒ 예상하다 ·
갑자기 졸도하다 ⇒ 졸도하다 · 푸른 창공 ⇒ 창공
(푸른 하늘) · 000를(을) 타고 있던 승객
⇒ 000를(을) 타고 있던 손님 ' .
강성곤 : 현 KBS 한국어진흥원 운영위원 · 전 KBS 아나운서 · 방송통신심의
위원회 언어특위 위원 · 가천대 특임교수.
* 더 자세한 내용은 강성곤 위원의 저서 : 정확한 말 · 세련된 말 · 배려의 말
이나 한국어 발음 실용 소사전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sev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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