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윈 폴리오(Twin Folio) - 하얀 손수건 · ’90
원곡 : 나나 무스꾸리(Nana Mouskouri) - Me t’ aspro mou mantili
작곡 : 마노스 하지다키스
번안 : 조영호
편곡 : 김인배
헤어지자 보내온, 그녀의 편지속에
곱게 접어 함께 부친
하얀 손수건.
고향을 떠나올 때, 언덕에 홀로 서서
눈물로 흔들어 주던
하얀 손수건.
그 때의 눈물자국, 사라져 버리고
흐르는 내 눈물이
그 위를 적시네.
트윈 폴리오, 송창식과 윤형주의 만남
송창식과 윤형주로 이루어진 트윈폴리오는, 포크음악을 대학생과 일반 대중에게 널리
알리는데 지대한 공헌을 했었던 한국 포크의 선구자라고 할 수 있다.
송창식과 윤형주 이 두 사람은, 음악에 대한 정열은 비슷했었지만
가정 환경과 성격 · 외모 등은 전혀 대조적이었었다.
윤형주는, 영문학 박사인 아버지와 성악가인 어머니와의 사이에서 태어
났었을 뿐만 아니라 시인故 윤동주의 6촌 동생이기도 한 부유한 집안에서 잘 생긴 모범생으로 자라났었다.
경희대학교 의대 교수였었던, 아버지의 가업을 잇기 위해 연세대학교 의대에 진학할 때까
진, 그의 길은 의료인이 되는 게 아주 당연하게만 보였었다.
그러나 대학교 2학년 때부터, 노래를 부르기 시작해 송창식을 만나게 됐었다.
송창식은,
등록금이 없어 서울 예술고등학교를 중퇴한 뒤 대학교를 떠돌던 노숙자였었다.홍익대학교에서 노래를 부르던, 그를 본 무교동의 음악 감상실인 ‘ 쎄시봉 ’
의 사장 아들이, 그 곳에서 노래를 부르게 했었다고 한다.
이 전혀 대조적인 두 사람과, 베이스 기타를 치던 ‘ 이익균 ’ 이 뭉쳐 ‘ 트리오 세시봉 ’ 을 만들
었었지만, 이익균이 군에 간 후 다시 두 사람이 ‘ 트윈 폴리오 ’ 를 결성했었
는데, 바로 그 때가 1968年의 일이었었다고 한다.
이 두 사람은, 데뷔 때부터 폭발적인 인기를 끌어 1969年 ‘ 하얀 손수건 · 웨딩케익 · 축
제의 노래 ’ 등 번안곡들이 들어 있는 독집 앨범을 냈었다.
해서 이들은,
당시로서는 보기 드물게 자가용을 몰고 다닐 정도의 인기 가수가 됐었다.
그러나 트윈 폴리오는 1969年 12月,
22개월이라는 아주 짧은 활동을 마감하곤 해체됐었다.이후, 윤형주는 솔로 가수 활동을 하다가 현재는 광고 기획사 대표이사
이며 송창식은, 계속해서 가수 활동을 하고 있다.
그리고 트윈 폴리오의 음악은, 아직도 많은 사람들에게
불리우며 사랑받고 있다.
해바라기 - 어서 말을 해 (0) | 2015.01.22 |
---|---|
윤형주 - 바보 (0) | 2015.01.21 |
트윈 폴리오(Twin Folio) - 웨딩케익 (0) | 2015.01.21 |
샌드 페블즈(Sand Pebbles) 6기 - 나, 어떡해? (0) | 2015.01.18 |
러브 홀릭스(Love Holics) - One love (0) | 2015.01.17 |